요즘들어 남자친구와 언짢은 대화가 오갈 때가 많다.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래된 커플이라.. 평소에는 대화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장난치고.. 필요한 이야기만 하고.. 진지한 대화같은 건 거의 없다. 그런데 가끔 진지한 대화가 이어질 때가 생기고 그러면 둘 사이에 의견이 항상 달라서 그저 이야기만 할 뿐인데도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기분도 나빠진다. 대화의 소재는 항상 다르고(정치,문화에서 주변사람들에 대한 서로의 시각, 그리고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점들까지) 그 어떤것이든... 이야기가 길어지면 거의 의견의 일치를 보기어렵고.. 서로 간에 문제점을 이야기하게 되면 백프로 싸우는 분위기까지 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남자친구는 성격상 화가 나더라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반면에 나는 흥분하면 목소리가 커지는 타입이다. 그래서 내가 소리를 높여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남자친구는 늘 내게 '넌 지금 너무 흥분해서 내가 뭐라고 한들 이해도 안되고 알아듣지도 못해.' 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내가 점점 목소리가 고조되는 이유는 내가 차분하게 계속 설명을 해도 남자친구가 내 의도를 하나도 파악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예를 들면,가장 최근에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문제는 부동산이었다. 전세 재계약 날짜가 다가오는데 처음 이 집을 연결시켜준 부동산에서 자꾸만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 이 집을 소개시켜준 부동산업자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주인 대신에 집에 대한 여러가지 일들을 세세하게 신경을 써 주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은 있지만 사실 이번이 벌써 세번째 연장계약이라 부동산에 복비를 또 주기가 너무 아까워서 이번에 주인과 직접 계약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겠다고 부동산업자에게 이야기를 하기가 좀 껄끄럽고, 또 혹시 법적으로 처음 소개해준 부동산에 계속 중개비를 내는게 맞는지.. 확신이 없다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남자친구에게 니가 부동산에 가서 주인과 직접 계약하기로 했다고 말 좀 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더니.. 본인이 계약 당사자도 아닌데 어떻게 자기가 가서 이야기를 하느냐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아니다 괜찮다 당사자 아니라도 한국은 그래도 남자가 나서서 이야기하면 잘 들어주고.. 한다. 니가 좀 말해주면 좋겠다. 본인이 와야 한다고 하면 같이 가면 되지 않느냐..' 했는데.. 자꾸만 남자친구는 자기가 가는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거고, 되지도 않을꺼란말만 되풀이하는 거다. 한참을 그렇게 실갱이 하고 나니.. 나는 갑자기 너무 서러워졌다. 보통 남자친구 같으면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본인이 나서서 해주겠다. 같이 가주겠다.. 할텐데.. 계속 못 가는 이유만 줄줄이 대고 있으니 나한테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있기라도 한건지.. 섭섭한 마음이 하늘 끝까지 치솟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거 그냥 한번 가주겠다고 대답하는게 그렇게 힘드느냐.. 왜 해주겠단 말을 끝까지 안하느냐' 하며 우니까.. 자기가 언제 안 해주겠다고 했냐며 오히려 반문한다. 사람이 부탁을 했을때 긍정의 대답은 하지 않고 할수 없는 이유만 계속 이야기하면 거절이라고 생각하지 누가 긍정이라고 알아듣겠는가.. 그런데 자기는 안 해주겠다는 말 한 적없다고. 해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럼 내가 30분을 넘게 부탁하는데 왜 해주겠다고 말 안했느냐고 하니.. 내가 부탁한 적이 없단다. 자기는 설명을 들은 거고.. 법적이 부분까지 내가 설명을 했으니, 당연히 법적으로 자기는 그 일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되는 이유를 나에게 설명한 거란다. 난 하지만 분명히 부동산에 이야기 좀 해주면 안되느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내가 부탁한 적이 없다니.. 아무리 한국말이 아 다르고 어 달라도 어떻게 그게 물어본거지 부탁한거냐라고.. 나에게 반문할 수 있나.. 사람이.. 특히 5년을 넘게 함께한 사람이 하는 말의 의도를 어떻게 이렇게 이해하지 못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기계가 아니고서야 문맥상 내가 부탁한다는 걸 모를 수가 없는상황 아닌가? 그냥 상황이 극으로 치닫으니까 말꼬리나 잡아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도 늘어놓고 싶은건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이 사건 이후로도 우리는 서너차례 더 싸우는데 그때마다 이와 비슷하게 내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하고 내 마음을 이야기해도 남자친구는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어느날 남자친구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아.. 그래? 근데 난 예전부터 정치에 관심없었고.. 그래서 정치에 관심가지려고 대학교때 일부러 신방과 수업도 많이 듣고.. 정치학도 듣고 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난 정치 모르겠다.' 했더니 남자친구가 '지금이야 니가 정치 몰라도 사람들이랑 어울리는데 문제 없지만 나이들어서 정치 모르면 넌 사람들이랑 대화도 안되고 사람들이 무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길래.. 내가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다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무식한 거고.. 편견에 빠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랑 어울릴 일 없을꺼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람을 생각하자면 내가 책 안 읽는 사람은 다 무식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않느냐?' 했더니(제가 책읽기를 좋아하는 편임) '책 안 읽는 사람이 다 무식하다고?너 진짜 그렇게 생각하냐?그건 정치랑 다른거지~ 그건 무식한 거 아니지.'하며 콧방귀를 꼈다.(실제로 코웃음을 쳤음.) 그 순간 갑자기 화가 확 올랐다. 결국 남자친구 자신은 정치를 잘 알고 있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본인도 정치를 모르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다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흥분해서 '너 그러지마. 정치모르는 사람 다 무식한거 아니다.난 니가 그런 편견 가진 사람되는 거 진짜 싫어'하며 소리쳤더니, 자기가 언제 그런 말 했냐고 한다. 금방까지 거의 이십분을 이야기해놓고.. 본인은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하고, 그런 생각가진 사람이 많다라고 말한 거였단다. 나보고 나혼자 흥분해서 자기말을 곡해해서 듣는 거란다. 처음 대화의 시작이 내게 정치에 관심 좀 가져라 였고, 내가 정치를 포기한 이유도 이야기 해 줬는데.. 이십분을 넘게 계속 정치를 모르는게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한 것이.. 그럼 대체 무슨 의도였다는 말인가.. 어쨌든 본인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내게 그렇게 이야기 한 적도 없다고 하길래.. 결국은 내가 '넌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대화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고, 그렇게 들렸으면 니가 그렇게 오해할 만큼 이야기를 한 거다. 그리고 그러하다면 너에게 그런 의도없었다. 미안하다. 사과하면 그뿐인데.. 왜 날 말도 제대로 못 알아먹고 화만내는 바보 취급을 하느냐'말하고 대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돌이켜생각해봐도.. 정치모르면 무식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 한 것이 확실한데.. 왜 끝까지 그런적 없다고 하면서.. 부동산때도 그렇고 이때도 그렇고.. 나만 혼자 사람 말 못 알아먹고 화내는 바보로 몰아버리는 걸까. 나 말귀 못 알아먹는 이해력 부족한 사람 아니다. 남자친구랑 나.. 사실 사귀는 한 3년은 거의 싸운적도 없고, 싸웠다고 해도 서로간에 이렇게 대화가 평행상태로 엇갈린 적도 없다. 정말 최근 일년.. 미치겠다..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뭐가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