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에드먼드 핼리는 금성의 움직임을 통해서 태양계의 모든 천체들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보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죽은뒤 20년후 1761년 드디어 금성이 태양을 지나갔다. 그 시기에 유럽의 모든 과학계는 금성을 관측하려 세계 각지에 관측대를 보냈다. 그것은 과학 분야에서 역사상 최초의 국제 협력 사업이었지만 거의 모든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세계각지의 관측대가 질병에걸리고 장비가 부서지고 조난 전쟁등으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경우로 프랑스의 기욤 르장티가 꼽힌다. 기욤은 정확한 관측을 위해 금성이 태양을 통과하기 1년 전부터 인도로 출발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악조건때문에 금성이 통과하는 날 그는 바다 위에 배를 타고 있었다. 출렁이는 배위에서는 연속적인 관측이 불가능했으므로 그는 1년동안 기다려온 관측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인도에 도착해서 다음 금성의 통과일까지 무려 8년을 인도에서 기다렸다. 8년동안 기욤은 인도에 최고급 관측대를 세우고 장비를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모든 것을 준비해왔다. 드디어 금성이 다시 지나가는 1769년 6월 4일. 날씨는 맑았지만 금성이 태양을 통과하려던 순간 구름이 끼여 태양과 금성을 3시간동안 가리고 있었다. 너무나 화가 났던 기욤은 바로 장비를 챙겨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항구로 향했다. 하지만 항구로 향하는 도중 이질에 걸려 1년간을 앓아 누웠다. 결국 기욤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친몸으로 배를 탔다. 하지만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기욤을 싦고서 고향으로 가던 배는 허리케인에 의해서 난파되어버렸다. 결국 구조되어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을때 그의 가족은 기욤의 사망신고를 하고 그의 재산을 모두 나누어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있었다. - 출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68~69P 매끄러운 연결을 위해 약간 편집했습니다.; 밑에는 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