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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밤에 웃으려 들어왔다가 로스쿨생 베스트 글 보고 잠이 안와 끼적이
게시물ID : bestofbest_2249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초긍정맨
추천 : 330
조회수 : 27858회
댓글수 : 142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5/12/07 11:23:35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2/06 04: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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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는 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공부하던 곳은 학교 건물 꼭대기층. 고시생들과 로스쿨생의 열람실이 공존하던 장소였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집안 사정때문에 고시 공부를 접어야 하나 고민하며 휴게실로 나가 현미녹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로스쿨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분명 공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로스쿨 2년차라던 학생들은 법학부 2학년이라면 충분히 알 법한 내용을 두고 무엇이 맞다 틀리다 하며 서로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로스쿨생이라면 그정도 내용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졸업을 1년여 앞둔 그들이 기초적인 법학 지식조차 습득하지 못하고 있나 싶었다. 문득 '로스쿨은 이론보다는 실무 중심이기 때문에 3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이론을 모두 익히는 것은 쉽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던 게 기억이 나서 그런가보다 싶었다.

현미녹차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 안으로 털어넘긴 뒤 나는 다시 열람실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했다.


오후6시가 되자 어김없이 로스쿨생들은 열람실을 벗어났다. 그중 몇몇은 데이트를 하러, 또 다른 몇몇은 술을 마시러 간다고 했다. 열람실에 남아 공부를 하고 있는 로스쿨생은 전체의 1/10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여유있게 공부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당시 나는 오전 2시에 잠들어 오전 6시에 기상하고, 아침밥 먹으러 가면서 공부하고, 밥 먹으면서 공부하고, 씻으면서 외우고, 열람실 가면서 공부하고, 열람실 가서 공부하고, 점심 먹으러 가면서 공부하고, 점심 먹으면서 공부하고, 다시 열람실 가면서 공부하고, 화장실 가면서 공부하고, 다시 저녁 먹으러 가면서 공부하고, 저녁 먹으면서 공부하고, 열람실 가면서 공부하고, 밤 12시 되면 열람실 난방이 꺼지기 때문에 담요를 둘러싸고 공부하고, 오전2시가 되면 경비실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외우고, 잠들면서는 그날 공부한 거 되새기면서 잠들었는데 말이다. 로스쿨이라는 곳은 참 변호사가 되기 편한 곳이 아닌가 싶었다.

다음날 또 휴게실에서 현미녹차를 마시고 있는데, 이번에도 로스쿨생들이 들어와 이번에는 서로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로스쿨을 나와도 사시생들과 비교되기 때문에 로펌에 들어가기 너무 힘들다는 게 그 내용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공부도 안 하는데 당연히 비교돼야 하는 거 아닌가.' 그때 고시반 최고참인 형님이 휴게실에 들어와 믹스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꼭 로스쿨이 나쁜 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 형님은 가정도 있으신 분이 20년째 고시공부중이신데, 로스쿨이 정착되면 적어도 저렇게 고생하는 분은 안 생길 것이 아닌가 싶었다. 로스쿨이 생겨서 단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포기할 사람이 빠르게 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닐까.


그후 난 1년 반만에 고시를 그만뒀다. 악화되는 가정 형편도 그 이유였고, 그나마 이런 형편의 나에게 기회를 주었던 사법고시가 선발하는 고시생의 수를 급격히 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내가 변호사 자격증이 없어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법적 문제를 대변해주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쓸 유용한 법적 지식은 챙겼고 주변 사람에게도 기초적인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미련없이 그 자리를 털고 떠날 수 있었다. 또 만약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다툴 일이 생긴다고 해도 웬만해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그들은 법적 지식이 아닌 그들의 상식이 소송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나는 대륙법 계열에서 법적 지식이 결여된 상식이 얼마나 안 통할지를 알고 있었다. 


간혹 주변에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해 나에게 연락해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난 그 이후 따로 법을 접한 적은 없다. 오유에 들어오는 것도 베스트 게시물의 유머자료를 보는 게 전부인데, 로스쿨에 관련된 글이 있길래 읽어봤다가 공감하지 못하겠는 부분이 너무 많아 잠이 확 달아났기 때문에 내 느낌을 어디에 끼적여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자게에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었던 부분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기본3법(헌법, 민법, 형법)과 후4법(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행정법, 상법)의 원리를 몰라 패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인데, 분명 그 사람은 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소송의 절차와 주장 방법을 익히는 것과, 해당 법의 원리를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법의 원리를 안다고 하려면 그 법의 제정 취지와 목적, 그로 인해 뿌리를 내리는 법조항의 관계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상위법, 하위법과의 연관성도 모두 알아야 한다. 그 법에 대한 기본서(다수설 입장, 소수설 입장에 대한 기본서 따로)를 모두 이해했다면 시비를 걸지 않겠지만, 법적 지식이 사시출신보다 부족할 거라고 단정하는 로스쿨생이 그정도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도 수차례 변호사들과 소송을 다퉈 승소를 해왔지만, 나더러 해당 법을 아냐고 묻는다면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로스쿨의 장점이 있다면

1. 다수의 변호사 양성으로 인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특권 계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과

2. 다양한 분야의 전문 변호사를 양성함으로써 특수 분야의 소송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인데


1번은 변호사시험을 통해 변호사를 1500명 뽑는 현실과, 또 그중 다수가 공기업 등에 변호사 外 직종으로 취업하는 상황으로 미루어봤을 때 그 효과를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듯하고

2번은 과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3년의 로스쿨 과정동안 한국의 변호사로서 활동할 만한 법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느냐는 문제를 낳기 때문에(그리고 개인적으로 로스쿨 출신 변호사 중에 그러한 역량을 가지는 사람은 기존에 고시 준비를 했던 자들과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들 외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쯤 되니 내가 왜 이런 글을 장황하게 쓰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모 공기업에서 일할 때 어디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몇급으로 취직했다는 얘기를 듣고 로스쿨생들 힘든가보구나..싶었는데

베스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니 어이가 없어진다.

무슨 사시 준비를 엄청 비싼 귀족코스로 서술해놓지를 않나,
(지금 사시 인원을 심하게 적게 뽑아서 경쟁이 심해져 그렇지, 1000명 뽑을 때에는 사시 준비하는 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도 않았다. 적게 들면 적게 들었지. 그렇게 따지면 사시가 돈 많이 들게 된 건 로스쿨 탓인가?)

사시가 없어져야 정의가 바로서는 것처럼 주장하지를 않나,
(사시에 기수문화가 있고 또 그게 굉장히 엄격한 건 알지만, 로스쿨이라고 해서 그런 게 없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주지. 오히려 로스쿨이야말로 자소서에 점수를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입학에 있어 입학담당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사법고시보다 현저히 높고, 그 자의적인 판단에는 출신 학교의 영향이 크다는 건 로스쿨 입시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부분일텐데. 그렇게 변호사 되는 사람이 자기 출신학교에 대해 아무런 애착을 안 갖게 될까)

사시가 무슨 지엽적인 판례 한 두개 더 아는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하지를 않나,
(사실관계 파악이나 증거 확보는 의뢰인(Client)의 기여도에 따라 차이가 나는 거고, 변호사가 국제탐정교육을 이수하지 않는 한 나서서 증거자료 수집하러 다니지도 않을 건데 왜 사법고시 출신은 그런 걸 못하고 로스쿨 출신은 그런 걸 잘하는 듯이 표현해놨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실제적인 경우 의뢰인은 법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필요한 자료와 필요하지 않은 자료를 모두 내놓게 되고, 변호사는 그중 필요한 자료를 선정해 소송에 사용하게 되며, 이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지는 결국 법적 지식이 보유된 자가 판단할 문제가 된다. 그런데 법적 지식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한 사시가 로스쿨을 실력으로 이길 확률이 높은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이상한 말로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


정말 나도 이 외에 드리고 싶은 말씀 너무 많은데, 진짜 다 쓰다간 나 혼자 화만 나고 잠만 못잘 것 같아 그냥 줄이고 싶다. 

그럴싸한 글로 자신의 욕심을 정당화시키기에는 국민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걸 모르는 건가. 해당 글의 댓글 추천수만 봐도 그정도는 눈치채겠다. 

지금이야 로스쿨 생긴 학교에 법대가 없어져서 주변이 다 법알못으로 보여 그러는가 싶은데, 법조계 외에도 나처럼 법학 전공하고 사시 공부하다가 그만 둔 사람 상당히 많다. 나같은 사람들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전혀 신경쓰지도 않는 건가? 아니면 정치인들처럼 자신을 지지하고 자신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 건가.  

에이씨.
출처 대뇌의 뉴런이 엄청나게 번쩍이게 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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