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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면서도 어색한 인사만 나누게 되는 사이가 있습니다. 바로 119 구급대원과 의료진 사이입니다. 지금 있는 병원처럼 환자가 한꺼번에 밀려들지 않아 좀 여유롭게 진료를 볼 수 있는 환경에서는, 구급대원과 함께 방금 싣고 온 환자 상태에 대해 얘기도 나누고 요즘 근황도 묻는 등 나쁘지 않은 관계로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구급대원이 와서 의료진을 찾는 것은, 그냥 둬도 바빠서 미칠 것 같은 꽉 찬 응급실에 중환자 하나가 더 왔다는 뜻입니다. 이는 지금 보고 있는 환자를 놓고 중환자부터 빨리 봐야 한다는 뜻인 까닭에, 마냥 웃으며 인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어느 날 아침, 119 구급대원 옷을 입은 환자가 급히 카트에 실려 들어왔습니다. 얼굴을 보니 좀 아까 응급실에 환자를 내려놓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돌아섰던 구급대원이었습니다. 응급실에 환자를 내려놓자마자 다른 출동이 생겨 급히 사이렌을 켜고 이동하던 중 다른 차량과 부딪히는 큰 사고가 났던 모양이었습니다.
현장에서 구조에 참여했던 다른 구급대원의 말에 따르면, 환자는 구겨진 차량에 눌려 목이 심하게 꺾여 있었고 분해 작업을 통해 어렵게 구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응급실 도착 당시 환자의 의식은 떨어지고 팔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심히 걱정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긴급히 진행한 경추 CT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경추 골절 및 척수손상이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머리 손상이 심하지 않고 심폐기능이 유지되어 생명은 건졌지만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사지마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적극적인 스테로이드 치료와 응급 수술이 결정되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후유증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결국 좀 아까까지 다른 환자를 구조하던 손, 그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로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애쓰다 발생한 한 구급대원의 안타까운 상황에 의료진들이 머리를 모아 봤지만 더는 해 줄 수 있는 응급치료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신부와 결혼 준비에 한창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다들 잔인한 현실에 눈물지을 뿐이었습니다.
원래 중환자실은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의 치료가 이뤄지는 특수한 공간인지라 하루 두 번 짧은 면회시간에만 가족과의 만남이 이뤄집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선 보호자가 환자 곁에 계속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을 약속한 예비신부가 사고를 당한 구급대원의 곁을 지킬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 주기로 했습니다. 아니, 그것 외엔 달리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슬픈, 그런 상황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응급실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응급실 안의 상황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놓여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응급실 안에서 근무 중일 때엔 그런 바깥 상황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생해서 현장에서부터 환자를 만나 초기 처치를 하고 응급실로 이송해 온 구급대원에게, 왜 제대로 처치하지 못했나, 왜 제대로 환자 인계를 하지 못하나 하고 화를 내게 되기도 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다시 되돌려 그 입장을 생각해보니 괜스레 미안해집니다.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인데, 서로 미워하며 힘들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여유를 가지고 한발 물러나 본다면 그 미움이 좀 줄어들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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