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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독박 육아 체험 -하-
게시물ID : baby_225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rithmetic
추천 : 37
조회수 : 1237회
댓글수 : 33개
등록시간 : 2017/11/16 16:46:58
1시

한시다. 낮잠은 세시간 이상 재우지 마라는 마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이를 깨우러 들어갔다.
아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다. 따뜻하게 잘 자는거 같다. 아이를 흔들어 깨우니 안일어난다.
이런건 날 닮은것 같다. 들쳐앉고 둥가둥가하며 깨웠다. 짜증을 내며 일어난다. 이런건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일어나자 마자 첫마디가 '까까' 다. 과자에 마약을 탄건가 의심이 든다.
배가 고플수도 있겠다 싶어 분유를 타러 갔다. 보온병의 물이 조금 뜨거운듯 싶지만 알맞게 식어있다.
이번에는 물먼저 넣어야지. 이유식 안먹이고 먹이는거니 양도 평소랑 같게. 지킬건 다 지킨것 같다.
방으로 돌아와보니 까꿍책을 거꾸로 들고 책장을 넘기고 있다.
13개월에 책장을 넘길줄 아는 아니가 별로 없다고 하는데 내새끼가 천재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지능은 분명 나에게서 물려받은 지능이라 확신이 들었다.

다행히 온도가 좋은지 잘 받아먹었다. 쭉쭉 빨아먹는걸 보니 내 배가 다 부르다.
갑자기 와이프가 잠결로 한마디를 했다.
"이유식을 먹여야지..."
아...

몇일전 이제 분유 횟수를 줄이고 이유식 횟수를 늘리자는 와이프 말이 떠올랐다.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 방 구석에서 분유를 마저 먹였다. 빨고 있는 젓병을 빼면 필시 짜증을 부릴게 뻔하다.
한방울도 남김없이 분유를 다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아이를 다시 핑크퐁과 합체 시키고 주방으로 갔다.

분유 때문에 이유식을 안먹을거 같아 궁리 끝에 평소 사과를 많이 좋아하는 아이의 식성을 고려해서
이유식 조금 + 갈은 사과 조합을 주기로 했다. 내가 사과를 먹고 싶어서 사과를 준비한건 절대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사과 1/4쪽을 갈아 이유식에 넣고 아이를 주었다. 조금 먹다가 안먹는다. 편식을 안하는 아이라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먹어보니 맛이 없다. 이유식 재료와 사과가 궁합이 안맞는거 같다. 더군다나 따뜻한 사과라니. 그럴만 하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더 먹이니 몇 숟갈 더 먹긴했다. 나머지는 와이프 몰래 버렸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이에게 책 읽어주고 노래 불러주다보니 2시가 다 되어갔다.

2시

어제 밤 와이프가 "낮에 할거 없으면 키카 새로 생긴데 있던데 거기 대리고 갔다 와봐" 라고 한말이 생각 났다.
왠지 키카 대리고 가면 저글링 같은 조카들을 피시방에만 대리고 가면 평화가 찾아오듯 나에게 평화가 찾아올거 같았다.
아이 옷을 갈아입혔다.
신기하게 옷 벗길땐 세상 무너지듯 우는 아이가 입힐때는 잘 협조해 준다.
자기 소매에서 손이 튀어나오는게 신기한듯 두 손을 번갈아 가면서 구경한다.
이쪽 양말을 신기고 저쪽 양말을 신기면 이쪽 양말을 벗어 던진다. 몇번의 실랑이 끝에 양말을 다 신기고 모자까지 씌었다.
출발 준비 완료. 아니지.

기저귀. 물티슈, 턱밭이, 분유통, 젓병, 까까, 여벌 바지. 여벌 양말. 음......

출발 준비완료.

네비를 찍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
카시트에 앉는걸 싫어하는 아이라 가는 동안 내내 노래를 불러주었다.
핑크퐁과 사운드북 노래들을 불러주다보니 아이가 생기기전에는 잊고 지냈던 동요들을 많이 알게되었다.
무반주로 20여곡을 메들리로 불러대는 내가 대견하다.

키카 도착.
새로생긴곳이라 그런지 인테리어도 화사하고 삐까번쩍했다.
13개월이라고 하니 원래 12개월 이상은 요금을 받는데 무료로 들여보내주셨다.
좋은 사장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를 시킬려고 했는데 라떼를 시켰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새로 생긴데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시간이면 아이들은 거의 다 어린이집에 있을 시간인것 같았다.
우리 아이 말고 한 아이가 더 있었다.

키카에서 아이가 자꾸 나보고 엄마라고 불렀다. 아빠라는 말을 할줄 알고 집에서도 자주 엄마라고 하지만
밖에 나와서 엄마라고 부르면 느낌이 이상하다. 혹시 편부모 가정이라 오해를 살수도 있을거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어
주위 사람들 들리게 큰 소리로 "엄마는 집에 있잖아 '아빠'라고 해야지~" 라고 말했다.

옆에 아이랑 같이 온 엄마가 말을 걸었다. 엄마는 집에 있나봐요? 라고 물었다.
"네.. 하루 제가 봐주기로 약속을 해서.."
하하하 좋은 아빠네요 라고 아이 엄마가 말해줬다.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몇개월이냐 물어서 13개월이라고 이야기 했다.
13개월 치고 말도 잘하고 애교도 많다고 했다. 다 날 닮아서 그런거라 말해주고 싶었다.
자기 아이는 15개월 인데 말도 잘 안하고 잘 안웃는다고 했다. 우쭐했다. 하지만 난 예의범절을 잘 아는 시민이라 그런 내색은 안했다.

15개월 아이가 우리 아이 탱탱공을 자꾸 빼앗어 간다. 뒤뚱뒤뚱 걸어와서 빼앗아 가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 걸음마가 서툴다.
한 두발짝 때는게 고작이다. 빼앗기고 눈만 꿈뻑꿈뻑 한다. 속상하다. 15개월 아기가 흘린 공을 몰래 가져와서 다시 쥐어주면
다시 와서 빼앗아 간다. 서럽다. 어디가서 맞고 다니는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아이를 들쳐앉고 윗층 블럭놀이 하는데로 갔다. 와이프가 다른 키카에서 잘 가지고 놀아서 사줬다는 과일블럭이 있다.
이건 집에 있으니 다른걸 가지고 놀자고 자꾸 꼬셔도 그걸 가지고 논다. 덕분에 수박만 100번 쪼개준것 같다.
15개월 아이가 다시 옆에 왔다. 짱구같이 생긴게 자꾸 우리 아이를 괴롭히는것 같다. 

아이 엄마가 옆에와서 사과를 하고 대리고 간다.
내가 쓸데없이 예민한건가 싶어서 미안해 졌다. 나 어릴적에 여자아이들 고무줄 끊고 다닌 기억이 났다.
다시 아이가 옆에 오면 같이 놀게 해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있다가 아이엄마랑 짱구가 집에 간다고 한다. 나한테 재미있게 놀다 가라고 하는데
괜시리 미안하다. 다음에 또 놀자고 우리 아이한테 말하는데 내가 "네~" 라고 대답해 줬다.
왠지 짱구가 좀 더 크면 같이 또봇 가지고 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딸이라 같이 로봇가지고 못놀거 같아 항상 아쉽다.

밑에 층의 편백나무 놀이터로 내려왔다. 각설탕만한 크기의 편백나무 조각을 자꾸 입으로 가져갈려는 아이를 말리느라
혼났다. 역시 나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혼자 노니깐 재미가 별로 없는것 같다.
개월수도 있고 해서 미끄럼틀이나 트렘벌린 같은 위험한것도 탈수가 없다.
블럭놀이 걸음마놀이 공놀이 같은것만 했다. 슬슬 지겨워졌다.

시계를 보니 4시가 다되어간다. 집에 가야겠다.

맘씨 좋은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가는 내내 짱구한테 잘해주지 못한게 내심 맘에 걸렸다.
다음에 만나면 잘해주고 공도 빼앗지 말아야겠다.

4시.

집에오니 와이프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왜 나와있냐 물어보니 배고파서 나왓다고 한다.
밥을 줄까 물어보니 먹었다고 했다. 뭘 먹었냐고 물어보니 피자를 시켜 먹었다고 한다.
서러웠다. 나도 피자 좋아하는데. 몇조각 남겨놨다고 해서 마음이 풀렸다. 밤에 먹어야지.

키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짱구가 미웠다고 말하니 와이프가 웃는다.
애들은 다 그런다고 그랬다. 내가 바보같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부모가 되어봐야 진짜 사람이 되는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온 아이가 다시 타요 드럼을 치기 시작한다.
저 지치지 않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하다. 난 이미 방전 상태인데.
같이 드럼을 치자고 자꾸 부른다.
같이 드럼을 치는데 스틱으로 드럼을 치는게 아니라 내 손을 막 친다.
내가 아프다고 아야 그러는 모습을 보고 깔깔 거린다. 저런 성격은 분명 엄마를 닮은것이라 생각이 든다.

손에 멍이들거 같아서 걸음마 수레(?)를 옆에 가져다 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돌 전에 걷는다는데...
운동신경 둔한건 아빠를 닮은건가? 괜시리 미안해 진다.
아이는 수레를 밀고 난 엉금엉금 옆에서 기면서 수레가 확 앞으로 나가지 않게 잡아준다.
30분 정도 왔다갔다 하니 무릅이 너무 아프다.옷을 걷어보니 피부가 까져 있다.
내 아이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아프지만 참아본다.

5시 50분.
지진이 났다. 주방에서 아기 이유식을 댑히던 내가 놀라 거실로 뛰어왔다.
와이프도 소파에서 밀린 드라마 다시보기를 시청중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는 우리가 놀라서 그런지 우리 모습을 보고 놀라하는것 같다.
아이를 안고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데 다행히 흔들림이 없다.
뉴스를 보니 포항이 진원지라고 한다.
강원도에 살아서 큰 위험은 없는것 같다. 포항에 사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모두 별일은 없는듯하다.

뉴스 속보를 보면서 이유식을 먹였다.
키카에서 많은 에너지를 써서 그런가 이유식을 잘 받아 먹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와이프가 웃으며 '프로 아빠 다됬네"라고 칭찬해줬다.
이 정도 쯤이야 라고 대답을 했지만 아침나절에 한 실수들이 생각나 좀 찔렸다.

뉴스에서 지진 속보가 계속 나왔다.
고향이 포항이고 익숙한 동네가 많이 망가진 모습으로 나오니 마음이 아팠다.
핑크퐁좀 보여주고 뉴스를 볼려고 하니 와이프가 혼을 낸다.

쏘서랑 에듀테이블은 이제 흥미가 별로 없는것 같다. 몇번 흔들고 만지더니 예전만큼 흥을 내며 가지고 놀지 않는다.
이제 누굴 물려주던가 방구석에 정리해놔야겠다.
신기하게 러닝홈은 아직 잘 가지고 논다. 누르면 노래 나오고 열고 닫으면 옆에서 까꿍이라고 내가 호응을 해줘서 그런가보다

요즘 펜에 흥미를 많이 느끼는것 같다.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사줬다. 한장을 찢어서 그려보라고 줬다.
알수없는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의 그림 같다. 여러 색을 써보라고 권하지만 초록색만 쓴다. 초록색을 좋아하나보다.
분명 아이는 뭔가를 그렸겠지만 내 식견이 짧아 이해할수 없는것일거다.
한장을 빼곡히 그리고 흥미를 잃은 아이가 다시 과일블럭으로 돌아갔다.
난 종이 옆으로 삐져나와 바닥에 묻은 크래파스 자국을 걸래로 지웠다.
잘 지워져서 다행이다. 요즘 크레파스들은 좋은건가보다.

8시
이제 슬슬 아기 잘 준비를 해야겠다. 내가 피곤해서 그런건 절대 아니다. 아닐꺼다.

신나게 놀았으니 씼자. 아이 옷을 벗기는데 역시나 운다. 서럽게 운다. 누가 잡아먹냐..?
아.. 물을 안받아놨네. 다시 입히고 아기 욕조에 물을 받는다. 수온을 세심하게 체크한다.
뜨거운가? 차가운가? 뭐 이정도면 되겠지.

다시 벗긴다. 다시 운다. 짜증나지만 웃어준다. 아이앞에서 짜증내면 아이 얼굴이 짜증상으로 바뀐다고 한다.
다행이 잘 웃어줘서 아이가 웃는상이다. 못생긴 아빠얼굴 물려줬으니 인상이라도 웃는상이어야지...

물속에 들어가니 운다. 온도가 문제인가? 혹시 몰라서 물에 뜨는 장난감 몇개를 가져와서 띄워줬다.
안울고 잘논다. 덕분에 수월하게 씼길수 있다. 사람은 역시 머리를 써야한다.
그런데 안나올려고 한다. 물에서 건지니 운다. 자꾸 장난감을 안놓을려고 한다. 난감하다.
강제로 장난감을 뺐으니 뒤로 발랑 넘어갈려고 한다. 위험하다. 결국 오리 장난감을 꼭쥐고 행궜다.
몸을 닦고 옷을 입을때 까지 오리 장난감을 손에서 안놓쳤다.

옷을 다 입히고 마지막으로 먹일 분유를 조금 타서 오니 오리는 저 방구석에 던져버리고
사운드북을 거꾸로 들고 누르고 있다. 하... 너에게 오리는 그런존재였니?

사운드북과 1단계 책들을 총 20권 정도 침대위에 펼쳐놓고 차례대로 죽 읽어주었다.
거의 매일한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다.

동생한테 페이스톡을 걸었다. 동생도 아이가 하나, 나도 하나, 동생의 아이와 내 아이가 자매처럼 여기면서 커갔으면 좋겠다.
다행히 조카가 내 아이를 많이 좋아해주는것 같아 다행이다. 나중에 커서 같이 배낭여행도 다니고 그랬으면 좋겠다.

9시

슬슬 재워야 한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침대 옆 램프를 켰다. 분유를 먹이면서 자라 자라 자라 주문을 외웠다.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잘자라 우리 아기 자라 자라 자라...
분유를 잘 먹다가 갑자기 자기 손가락을 쪽쪽 빤다. '지지' 하면서 손가락을 빼주니
침이 흥건한 검지 손가락이 빠져나온다. 그런데 나보고 빨아보라는듯이 손가락을 쭉 내민다.
안빨고 멀뚱하게 있자 "이거~ 이거~ " 하면서 재촉을 한다.
와이프가 텔레파시로 시킨거 같다. 대충 빠는 척을 하고 다시 젖병을 물려줄려고 하니 손으로 탁 쳐낸다.
그리고 다시 이거~ 이거~ 라고 말한다.
아..... 영혼을 담은 리엑션으로 "아이 맛있어~!" 라고 말하며 박수를 쳐준다.
아이는 만족한듯 깔깔 웃으며 젖병을 다시 빤다.
어디서 저런게 튀어나왔나 싶다.
나중에 청학동에 몇달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젖병은 바닥을 향해가는데 아이의 눈은 아직 초롱초롱하다.
타이밍을 잘못 잡은듯하다. 아직 먹이면 안되는 거였는데.
다행히 1/4 정도 남겼다.
남은걸 다시 적절한 타이밍 때 먹여야겠다.

다시 책을 읽어주고 노래 불러주며 침대위에서 놀아줬다.
아 즐겁다. 라고 스스로에게 세뇌를 시켰다.

휴대폰을 얼핏 보니 9시반이 훌쩍 넘었다.
다행히 아이도 좀 피곤해 하는듯하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젖병을 다시 물리니 먹는다. 다행이다.
남은 분유를 다 빨기전에 눈을 감는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이제 퇴근인가.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아이를 살며시 눞히고 침대위에 흐트러진 책들을 정리하고 아이한테 방해되는게 있는지
방안을 둘러본 후 방 밖으로 나왔다.

와이프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깨우니 "아가야는?" 하고 묻는다.
"대전은요?" 라고 말한 그 누군가와 오버랩이 된다.
그만큼 밉다는거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무릅도 아픈데 꿀잠을 자고 있다니..

하지만 난 관대하다. 그리고 뱉은 말도 있고 해서 웃으며 자기도 얼른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와이프가 수고했다고 토닥여줬다. 뿌듯했다. 역시 난 좋은 남편이다.

10시
배가고팟다. 생각해보니 저녁을 안먹은거 같다. 아니 안먹었다.
남은 피자가 생각이 났다.
하이네켄 한병과 미지근한 피자 세조각이 저녁이다. 행복하다.
역시 느끼하고 짠게 제일이다.

어깨에 허연 얼룩이 묻어있다.
분명 아가야 콧물이거나 입가에 묻은 음식이나 침이 묻은 것일거다.
평소 와이프 옷에도 묻어 있던게 생각이 났다.
가끔 칠칠치 못하게 묻히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하고 반성해야겠다 생각했다.

최대한 천천히 피자를 먹었다.
오롯이 혼자만의 만찬을 빨리 끝내고 싶진 않았다.
맥주의 맛과 피자의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음....기분이 좋다. 자유가 느껴졌다. 필시 오늘 하루종일 와이프도 이런 기분이었을거다.
자주 이런 기분을 선물해주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다.

피곤하지만 11시까지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
시덥잖은 티비 연예 프로 재방을 보면서 낄낄거렸다.

11시.
씻고 잘준비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낮에 빨아둔 빨래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 방안이 포근하다.
사랑하는 두 여인이 자고 있다. 아름답다.
나도 자야겠다.
오늘 하루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노릇 하느라 고생한 내 자신이 대견하다.
출처 어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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