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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2.6 만성복통 그리고 의료전달체계
게시물ID : readers_225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16
조회수 : 105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1/10 1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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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응급실이야기 연재중인 최석재 입니다
병원에 와서 진료받을 때 이 짧은 시간동안
정말 의사선생님이 내 상태를 다 파악한 게 맞을까?
그런 고민 해보신 적 있으시죠?
3일 대기 3분 진료, 심한 경우 3개월 대기 3분 진료의 현실인데요
여기에는 환자 보호자께 다 말씀드리지 못하는
의료보험체계의 심각한 왜곡이 숨어있습니다.
만성적인 복통으로 내원했던 할머니 얘기로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를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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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2.5 보호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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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인 복통으로 내원한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보통 응급실은 혼잡하고 중한 환자가 많이 있기 때문에, 검사에 별 이상이 없는 위험해 보이지 않은 환자는 간단하게 결과를 설명하고 환자의 증상이 호전됐다고 하면 다음날 외래로 방문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의 복통



아침에 출근해보니 복통으로 방문한 70대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방문해 아침까지 혈액검사와 수액치료를 받았고, 진찰과 문진, 혈액검사 결과에 특이 소견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증상이 호전됐는지 물어보니 아직 배꼽주위 통증이 남아있다 하였습니다.


진통제를 더 사용할까 CT를 찍어 다른 이상을 확인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 증상이 어떤지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할머니의 복통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수 년 전부터 복통이 지속되고 식사만 하면 불편하고 체해서, 1개월 전 내과의원에서 위, 장 내시경을 확인했고 복부 CT도 확인했으나 이상이 없었다는 얘기를 하십니다. 이제 MRI를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번에는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물어보셨습니다.


"할아버지, 배는 장이 계속 움직여서 필요하면 CT로 확인해야지 MRI는 못 찍어요."


그래도 아직 검사가 부족했다 생각하시는지 계속 다른 검사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럼 입원해서 금식하고 며칠 지켜보자 하니 이번엔 할머니께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입원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한참을 이런 대치가 계속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이젠 할머니 속이 아닌 내 속이 부글대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검사 다 하신 것 같으니까
입원해서 금식하고 지켜보시거나 약 드시고 외래에서 보시거나
딱 결정을 해주세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차갑게 얘기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하신지 선뜻 결정을 못 하셨습니다. 마침 다른 침상에 환자도 없고 여유 있는 아침시간이라 이번엔 내 마음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 그동안 여기저기서 검사 많이 받으셨는데
아직 궁금하신 게 많으신가 봐요
오늘 환자 없을 때 오셨으니 이 기회에 자세히 다 물어보세요



그리고는 아예 옆 침상에 걸터앉아 자세히 할머니 얘기를 들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할머니는 복통의 원인을 찾으려 CT 등 검사결과를 가지고 대학병원 소화기내과에 갔으나 검사 결과도 자세히 보지 않고 입원할 필요 없다며 부랴부랴 돌려보낸 교수님 얘기를 시작으로 그 동안 병원에 방문하면서 섭섭했던 이야기를 30여분에 걸쳐 줄줄 쏟아내시기 시작했습니다.


"대학병원은 환자도 많고 바빠서 자세히 설명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CT 검사는 직접 안보셨어도 판독 결과지 보신 거니까 걱정 마세요. 다 확인하신 거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다 듣고 나니 요즘 혼자 지내시며 우울감이 심해 매일 수면제를 먹고 지내고 계신 외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할머니, 요즘 잠은 잘 주무세요?



그랬더니 이번엔 밤마다 속이 답답하고 열불나고 등 뒤에서 바람이 드는 것 같다, 원래 본인은 외향적인 성격인데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돈만 아끼는 할아버지 때문에 힘들고 잠도 못 잔다는 등 한바탕 섭섭한 얘기를 풀어내셨습니다.


"할머니, 남자들 중에 사근사근하고 표현 잘하고 이벤트도 잘하는 남자는 몇 없어요, 저도 그래서 와이프랑 자주 싸워요."


할머니는 맘이 좀 풀어지셨는지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집 앞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입원할까 고민하십니다.


"할머니, 제가 할머니 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스트레스가 많으셔서 소위 화병으로 배가 아픈 걸 수도 있겠어요. 진정되는 약이랑 소화제 해서 3일치 드릴 테니까 약 드셔보시고 월요일 내과로 나와 보시는 게 어떻겠어요?"


할머니는 입원 안 해도 되겠냐며 좋아하십니다.




꼭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는 환자가 아니라도 주위에는 현대 생활을 하면서 발생한 우울감, 소위 화병 환자들이 많습니다. 충분히 긴 문진을 한다면 파악할 수 있겠지만, 하루 백 명에 가까운 환자를 봐야 하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의 의사에게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할 겁니다.


그래서 환자나 의사나 결국 여러 가지 검사에만 의존하게 됩니다. 모든 비싼 검사를 다 마치고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환자는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그 분야 전문의가 있다는 더 큰 대학병원을 방문합니다.


3분 진료에 예외일 수 없는 대학병원에서도 이 상황은 마찬가지로 이어집니다. 긴 시간 기다려 겨우 만난 교수님으로부터도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하고 좀 더 지켜보잔 얘기만 듣게 되는 것이죠. 결국 실망한 환자와 가족으로부터 '너무도 바쁜 의사들은 약 먹고 지켜보자는 소리밖에 안 한다'는 오해를 사게 됩니다.


진주의료원 사태로 촉발되어 최근 화두가 된, 공공의료를 폐업의 위기로 몰아넣은 의료보험 수가 문제를 포함해, 결국 돌고 돌아 꼬여버린 대한민국의 의료 전달체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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