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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응원이 저질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게시물ID : sisa_226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람의근돌
추천 : 12/3
조회수 : 63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6/06/17 17:25:54
불과 4년전, 우리는 외신들을 경악케한 엄청난 숫자의 길거리 응원과 그를 능가하는 깔끔한 시민의식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습은 4년전과 비교해볼때 같은 장소에 같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온갖 지저분하고 저질스런 추태를 보이고 있다. 여기까지는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이 다 아는 사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기업탓이라는 둥, 애들이 철없는 탓이라는 둥, 정부 탓이라는 둥...

그러나, 이런 사태의 원인은 보다 본질적인 곳에 있다고 봐야한다. 그 원인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공동체와 나의 동일시 현상'에 기반하고 있다. 요거에 밑줄 치고 들어가자. 결론을 간단히 얘기하면 공공의 것을 내 것으로 생각하되, 그게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인식하면 철저히 거부감을 나타내는 게 한국인의 특징이란거다. 

그 왜 이건희가 서울시에 음악당을 5천억짜리 낸다고 치자. 다들 자기일처럼 좋아한다. 어차피 안가거나 가도 돈 내고 갈거면서. 서울시가 받아도 내가 받은 것 같으니 좋아서 그러는 거다. 그런데 만약 그 음악당 이름이 이건희 음악당이라고 하자. 그럼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난리친다. 재수없다고. 줬지만 그건 이건희꺼 아니냐고 느끼기 때문이다. 요런 원리를 기억하고 아래 글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즉, 한국인들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국가 전체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려서부터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기도 했고, 역사적으로도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이리저리 치인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보니, 국가가 약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뼈속깊이 이해하고 있는 민족이다. 이런 까닭에 평소에는 지역별, 계층별, 연령별로 나뉘어져 찌그락짜그락해도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순식간에 뭉칠줄 안다. IMF시절의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이는 국가의 위기를 나의 위기로 심각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좋게 말하면 주인정신이 아주 투철하다.

이것은 위기 뿐 아니라, 국가적 영광에도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즉, 좋은 일도 내 일처럼 생각한다. 내 일이기 때문에 매우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그 기쁨의 크기도 다른 민족보다 훨씬 크다. 자발적으로 움직인 예로는 숱하게 많다. 88 올림픽 시절의 홀짝제 운행에서는 위반자를 거의 찾기 힘들었고, 지난 2002년의 자발적 뒷정리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에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무언의 공감대마저 형성되어 있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솔직히 우리 민족이 윗사람 말 잘듣는 민족이던가? 잘 듣기는 고사하고 서로 잘났다고 설쳐대기 일쑤며, 심지어 대통령도 동네 아저씨 알듯하는게 우리네 일상이다. 이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정부가 아무리 홍보해봐야, 한국인은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관심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을듯한 일사불란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줬던게 한국인들이었다. 바로,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WBC든 그 모든 것들이 국가의 일이지만, 곧 내 자신의 일로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이번에 2006년 월드컵 거리응원이 개판이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에게 전혀 '나의 일'이 아닌, '남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 전에 월드컵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다. 황선홍 선수가 골을 넣든 말든, 이태리를 기적적으로 역전승하든 말든 사실 우리 삶에 직접적 영향을 없다. 그럼에도 기뻐했다. 그리고 그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모두의 자유였고, 모두에게 허용된 일이었다. 그렇기에 누가 모이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서울광장으로, 각 도시 중심가로 모였고, 그렇게 난리를 치고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쓰레기 자기가 알아서 가져갔다. 당연했다. 서울 광장은 곧 우리 집이었고, 우리 집 쓰레기는 우리가 버려야지 누가 버려주나.

그런데, 그게 남의 것이 되어버렸다. 서울 광장도, 상암 구장도 모두가 남의 것이 되어버렸다. 기업들은 자제한다고 자제한 거라지만,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서울 광장은, 예전에 빨간 옷만 입으면 누구가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예전의 우리집 앞마당이 아니었다. 옷도, 노래도, 응원도 모두 누군가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왠지 낄수 없을 듯한 낯설고도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검은 옷 입은 진행 요원들과 물건파는 장사치들이 설치는 서울 광장에 우리는 고객일 뿐이지 결코 주인이 될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다 알겠지만, 이번 월드컵은 각 학교나 교회, 지자체 등에서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월드컵 경기를 상영할수가 없게 됐다. 상영하려면 무슨 협회인가에 5천만원을 중계료로 내야한다. 이 때문에 무더기로 집단 시청이 취소됐다. TV가 구려서 인근 숭실대나 총신대에서 토고 전을 보려던 내 작은 소망은 여지없이 깨졌다.(필자, 사당동 산다. 옥탑방 자취생은 왠지 슬프다..ㅠㅠ) 서울 광장 가보면 장사치들이 설쳐대고, 오손도손 학교에서 주민들끼리 모여 월드컵 응원할 권리마저 뺏긴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나는, 길거리 응원이 개판이 된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2002년에 우리는 주인이었지만, 오늘은 고객이다. 고객들에게 왜 시민의식을 요구하는가? 매장에 떨어진 쓰레기는 매장 직원들이 치울 일이지 고객들의 의무가 아니다. 

이런 판을 만든 것은 월드컵으로 돈 좀 벌어보겠다는 천박한 장사치들과, 그 장사치들의 떡값에 홀랑 넘어가버린 머리 텅빈 서울시 관계자들이 양대 공공의 적인 것이다. (띠바, 그 쓰레기 애꿏은 환경미화원분들만 고생시키지 말고 손전화 장사꾼 새끼들 니들이 와서 직접 치우라고...)

여기까지가 옥탑방 고릴라가 분석한 내용이다. 만일 내 생각이 맞다면, 이제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존대어로 글 쓰는 버릇이 없어서 그냥 반말로 쓴 거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리플은 꼭 존대어로 달께요. ㅎㅎ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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