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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이상한여자
게시물ID : panic_227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식물의파
추천 : 10
조회수 : 8418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1/12/28 12:24:41
이것은 일말의 거짓도 없는 100% 실화에 근간을 둔 이야기임을 밝힌다.

 

지난해 여름 주말.

홍대에서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개버릇 남 못준다고, 친구들 보내고 방황하고 있었다. 

술한잔 더하고 싶은데 먹기 싫다는 사람 붙잡고 더 마셔달라고 떼쓰는거 내스타일 아니니까.

먹고 싶은 사람을 찾아보는거다. 홍대에서 집에 가다가 원피스 입은 여자를 봤다. 

밀짚모자? 같은것도 쓰고 있었고,

조명도 그랬고 날이 어둡기도 했고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원피스에 밀짚모자, 말투는 좀 허스키했고, 

마른듯하면서 키는 나보다좀 작았다.

 

별얘기도 안하고 번호를 따고, 이후 몇번 이야기 주고받고 통화도 몇번했다.

한이야기는 사는곳,(안산에 산다는데. 그시간에 왜 홍대에서 혼자 돌아다녔을까.. 

의문이 생겼지만 ,워낙 홍대라는 공간이 자유분방하고

벼라별 인간군상 말종들이 많기에 그리 특이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었다.) 

일을 하다가 그만둔 상태고, 특별히 이상한점은 없었다.

그렇게 몇번을 통화하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말투가 좀 노티난다 정도? 

먹고싶은게 많다 정도?

 솔직히 여자가 식성 좋으면 그것도 나름대로 보기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

대략 약속을 잡았는데, 저녁시간에 만나서 간단히 술을 한잔하려고 했다.

자기도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고, 그 약속 끝나고 저녁에 만나자고 해놓고는 당일날

  한사코 점심에 일찍 만나자는 거다. 

 

알았다 그러도록 하자고 약속을 다시 홍대에서 잡고 4번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원피스, 핑크색 원피스에 까만피부에 화장은 연극배우 화장이다.. 

그다지 특이하지 않은 인상인데 복장이 부담스럽다.

내가 소화할수 없을거 같은 사람이다. 만나자마자 하는말이 배고프다고 

고기먹고 싶다고 가자고 (배고프다는 이야기만 거짓말 안하고 20번은 한다..)

그 외에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없는건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초반에 대화를 시도하면서 뭔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듯한 느낌. 뭐라고 형용할수는 없는데

기분이 불쾌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예를들어 친구들과 약속도 거짓말인거 같았고,

얘기 들어보니 2년전에 알바를 한달 했는데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란다 셋이서 만나기로 했는데

둘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만나게 됐단다. 2년전에 한달 알바 같이한 친구두명을

 안산에서 홍대로 만나러 왔다가

바람맞은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얘 표정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표정이 아니다. 

아마 자기 멋대로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아놓고, 

다들 펑크내서 정말로 의아한 표정이라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왜 혼자 약속잡고 혼자 상상하고 혼자 결론내는 스타일 말이다..

 

여튼 그럴수도 있다는 가능성만 남겨놓고 최대한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노력했다.

 

문득

예전에 완전체라는 여성 분석을 한 글이 떠올랐다. 윈도우가 깔리긴 했는데 대충깔린느낌 이랄까..

근데 딱 그거였다. 

 

 

식당은 일단 친구들과 자주가던 고기집으로 가서 고기를 시켰다. 3인분.(양 많이 주기로 유명한집이다.) 

내가 커피부터 한잔하자고 했는데 

 

이애 고기먹고 싶다고 한사코 낮 2시반에 고기집에 가고싶다고 우기는거다.

보통 여자 만날때 기가 센편이라으로 내가 하고싶은데로 하는데. 이건 기고 자시고

공포? 가 나를 압도 해서 리드할수가 없었다. 

리드라는 남자 여자의 관례를 넘어서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였다.

강자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미지에 대한 공포...

 어쩔수 없다. 이미 나는 발을 디뎠고, 돌아올수 없는 강을건너버렸다. 

안산에서 홍대까지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온애를 무시하고 집에 갈수가 없었다. 보기보다 마음약한 나다.

가뜩이나 점심 먹은지 오래돼지 않아서 고기 시켜서 굽기만 하고 있는데..

그러고 있는데...

 

얘가.. 생고기를 먹는다. 지는 익었다고 하는데 살짝 익히더니 

 

그냥 먹는다. 돼지고기를 .. 소고기로 따져도 거의 육회수준으로 대펴서 먹는다..

 

혀를 날름거린다. 

 

혀가 가늘고 길다.......혀가 가늘고 길다......

 

가방에서 휴지를 꺼낸다 말려서 눌려있는 두루마리 휴지다.... 두루마리 휴지다...

 

다른표현이 따로 생각이 안나고 그자리에 앉아서

 난 물만 가끔 마시고 (물외에는 입도 안댔다. 식욕자체가 안생겼다.)

 

 억지로 정말 억지로 몇마디 물어보고 창밖만 보고 

무서워서 차마 걔를 처다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생고기를 3인분을 혼자 다 먹는다.

종업원과 옆테이블 여자가 힐끔 쳐다본다. 난 태연한척 했다. 

가시방석에 앉아서 주변사람들 의식 하면서 걔가 빨리 다 처먹기만을 기다렸다. 

 

왜 그냥 도망 안갔냐고? 그 자리에 앉아서 걔랑 대화 몇마디 해보고 생고기 먹는거 

보고 있으면 도망도 못간다. 무서워서

 

뭐가 무섭냐고? 대략 내 느낌이 말해주기를 

내 전화 번호 바꾸기 전까지 스토킹 당할것 같았고 먹다 말고 다짜고짜 소리지를거 같았고,

뭔가 불안하고 두려운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속에 스쳐지나갔다. 

이애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을수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좋게 말해서 좋게 보내야 한다. - 내 무의식이 이렇게 나한테 말해주고 있었다.

 그 공포의 생고기 쇼를 참아내고,

 

 묵묵히 빌지를 들고 말했다.

"나먼저 계산하고 나가있을께"

빌지를 들고 계산하고 나가서 기다렸다. 

 

그리고 말없이 걸었다. 천천히. 생고기녀가 어느새 내 뒤에 와서 말한다.

"커피한잔 할래?"

커피는 무슨... 너무 무섭다. 

20대 후반남자가 실생활에서 공포란걸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경험은 어릴때 동네 형들이 삥뜯을때나 느끼는 감정이지.

이런 신랄하고 뼈끝까지 시리게 만드는 공포는 별로 느낄수가 없는거다.

최대한 연기를 했다. 급한 약속이 생겨서 가봐야 한다고 미안하다.. 담에보자.

"왜 담에봐?"

"급한약속이 생겨서 가봐야돼 미안해"

"급한약속?"

"응 급한약속"

 

혀를 내민다. 길고 가는 혀 (사실 생고기보다 저게 더 무서웠다.)

"으음~ 알았어."

하더니,

인사도 없이 휙돌아서 바로 지하철 아래로 내려간다.

 

 

 

 

하아.. 전신에 힘이 풀리고, 긴장감이 사라진다. 무언가 날 지켜줄 사람이 간절했다.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만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좀 진정된다.

 

신기하고 무서운 경험.

 

내 이상형이 처음보는여자인데,

낯선 여자는 무서운 여자일수도 있다는 경험.

뼈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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