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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4.2 엄마는 아플 겨를이 없다
게시물ID : readers_227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19
조회수 : 121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1/18 01: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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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응급실에서 다양한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직접 겪어 본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특별한 감정으로 진료를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어린아이들이 아파서 올 때엔 더 마음이 쓰이게 되지요.


이 글을 쓰기 조금 전 저녁 시간, 한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응급실 문밖에서 들려왔습니다. 이제 20개월 남짓한 아이였습니다. 상태를 확인해 보니, 한쪽 손등 전체가 붉게 부어올라 있고 수포가 졌다가 터져서 피부가 물러져 있었습니다. 엄마 얘기론 정수기를 만지고 놀다 뜨거운 물이 나오면서 손을 빨리 빼지 못해 심하게 데었다고 합니다. 통증과 두려움으로 자지러지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화상 처치를 하고 있으려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게는 두 번의 화상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 살 때 삼촌과 함께 컵라면을 먹는다고 서투른 젓가락질을 하다가 양쪽 대퇴부를 크게 데었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생 때 뜨겁게 달궈진 자동차 라디에이터 뚜껑을 멋모르고 열었다가 오른쪽 팔 전체가 수포로 뒤덮였던 기억입니다.


다행히 대학생 때엔 병원 가까이에서 지냈던 덕에 매일 화상연고를 바르고 관리해 흉터가 생기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는 매번 자전거를 타고 노느라 화상 부위에 감아 둔 붕대가 흘러내려서 그런지 흉터가 심하게 남고 말았습니다. 이런 기억이 있다 보니 어린아이가 화상을 입어 응급실을 방문하면 행여 저처럼 흉이 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붕대를 감아 주고 나서도 아이가 놀다 보면 흘러내리지 않을까 추가 조치를 하곤 합니다.


컵라면 국물에 심하게 데었던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이전엔 미처 몰랐던 부모의 마음이 내 아이가 아파 본 이후로는 좀 더 남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씩 겪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하루는 집에서 잘 놀던 아이에게 갑자기 경련이 발생했습니다. 119 구급대를 통해 근처 응급실에 방문했고 이후 아이는 열이 오르면서 한차례 더 경련을 해 소아과 병동으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더 이상의 경련은 없어 단순한 열성경련으로 진단받고 3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응급실에서 놀란 엄마 아빠를 진정시키는 입장이었음에도 제가 직접 보호자가 되어 보니 적잖이 당황이 되더군요. 이제는 응급실에서 열성경련 환아와 당황한 보호자를 보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져, 진료 중 제 아이가 입원했던 얘기를 하면서 안심시키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 아이가 아파보니 다른 아이들의 아픔이 남일같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 아빠의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만, 아이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엄마가 아프면 그것도 참 큰 문제입니다.


밤늦은 시각,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 환자가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들어왔고 침상에 엎드려 계속해서 구토를 했습니다. 위쪽 복부 통증을 심하게 호소하는 환자를 애써 진정시켜 진찰해 보니, 오른쪽 윗배를 누를 때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습니다. 황달은 없었지만 열이 있어 간염이나 간담도 질환이 의심되는 상태였습니다. 정확한 진단은 혈액검사로 확인하기로 하고 먼저 진토제와 수액치료를 처방했습니다.


같이 온 남편은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차트를 보니 엄마는 30대 초반, 아기는 생후 7개월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 7개월 때와 비교해 보니 반이나 겨우 넘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체중... 엄마의 남루한 행색과 아빠의 어둔한 말투가 아기가 속한 가정환경의 어려움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1시간여 뒤 나온 혈액검사 결과는 급격한 간수치 상승 소견. 다른 담도 관련 수치들이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급성 간염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기는 계속 엄마 품에 안겨 젖 달라고 울고 있었지만 간염이 의심되는 상황이니 젖을 물리라고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분유를 가져왔냐고 물으니 7개월인 그때까지 다른 분유나 이유식은 전혀 먹이지 않고 모유만 먹였다고 했습니다.


보통 소아과에서 권장하는 바에 따르면, 6개월 이후엔 이유식을 시작하라고 되어 있지만 발육이 좋은 요즘 아기들은 빠르면 4~5개월에도 미음이나 죽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환자의 아기가 더 왜소해 보였나 싶었습니다.


간수치가 높아 입원해서 금식과 수액치료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더니 환자는 집에 아이가 둘이 더 있다며 입원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남편이 돌봐 주셔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라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럼 다른 친지에게 부탁드려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마저도 도움 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환자는 구역질이 계속되어 엎드린 자세로 괴로워했습니다.


이 엄마 환자는 금식과 수액치료가 꼭 필요했습니다


진토제를 두 종류나 사용했음에도 별 호전이 없는데 어떻게 집에 가서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요? 게다가 급성 간염이면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 전염 우려도 있었습니다. 급성 간염 중 A형인지 B형인지 늦은 밤이라서 감별도 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젖 달라고 보채는 아기를 위해 소아과 병동에 연락해서 분유를 한 병 얻어 왔습니다. 원체 엄마 젖만 먹던 아기인 데다 낯선 환경에서 계속 울고 보채다 보니 어렵게 구해 온 분유는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엄마도 없는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


아빠가 포대기로 등에 업고 달래 보았지만 배가 고파서인지 잠이 와서인지 자꾸 울기만 했습니다. 결국 도저히 입원할 상황이 안 된다며 아픈 배를 쥐고 응급실 밖을 나서는 환자의 뒷 모습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어떤 이들에겐 왜 이리도 멀어보이는 걸까요


저성장 시대가 오면서 외벌이로는 한 가정이 유지되지 않는 요즘입니다. 이제 어느덧 아이는 어린이집이 키우고 엄마와 아빠는 일터로 나가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몸이 아파도 마음껏 아플 여유도 없는 엄마의 아픔은, 아마 이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가족이 모두 건강해야 겨우 생활이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생활에 병마의 고통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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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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