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희망의 1인 시위 후기 - 900일 동안의 1인 시위를 회고하며
게시물ID : sisa_1473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지프스
추천 : 11/2
조회수 : 60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12/14 02:23:04
을지로입구역 - 시지프스(Sisyphus) =============================================================== 오늘은 제가 1인 시위를 시작한지 정확히 900일 째가 되는 날입니다. 1인 시위 1000이를 달성하게 되는 날인 2012년 3월 22일까지 앞으로 100일이 남았습니다. 3월 22일(목)이면 4월 11일 총선을 앞둔 때이니 투표독려 운동이 매우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제가 1인 시위 1000일을 달성한 후, 2012년 3월 24일 토요일에 그동안 제 1인 시위를 지켜보며 응원해 주셨던 분들이 모두 나서서, 1000명이 하루 동안 만이라도 1000곳에서 투표독려 1인 시위를 함께 하는 기적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인 시위 카페(http://cafe.daum.net/1protest )에 <1000곳 1인 시위 약속>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2012년 3월 24일 토요일에 1000곳 1인 시위에 동참해주실 분께서는 부디 이 게시판에 참여 의사를 남겨주세요^^ 오늘도 을지로입구역에서 한미FTA 심판 2012년 4월 11일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독려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1인 시위를 시작한지 정확히 900일이 되는 날입니다. 1인 시위를 처음 시작한 2009년 6월 27일로부터 무려 9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부터 시작해서 조중동광고불매운동과 900일에 달하는 1인 시위에 이르기까지... MB가 집권한 지난 4년 동안 제 삶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 나날이었 것 같습니다. 투표를 꼬박꼬박 하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정치적인 활동을 해본적이 없는 평범한 30대 초반의 남성이 왜 MB정권이 집권한 뒤부터 직자생활과 투쟁을 함께 병행하면서 힘든 삶을 자초하게 된 것일까요? 2008년 5월 2일 처음으로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계속해서 꾸준히 촛불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촛불을 들고 모인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저의 상식은 MB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MB의 태도에 분노한 국민들이 2008년 5월 24일부터 가두시위를 시작 했습니다. 그때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에게 경찰은 당연히 폭력을 휘둘러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경찰은 평화롭게 앉아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에게 방패를 휘둘렀습니다. 그 폭력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도한 순간, 제가 믿어왔던 상식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저는 상식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5월 24일 새벽에 종로 1가 도로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다가 한 시민이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쓰러진 후, 그날 저녁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가두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신촌 오거리에서 경찰은 또 다시 몽둥이로 시민들을 두들겨 팼습니다. 그 광경에 분노한 시민들은 다음날 종로 1가에서 다시 가두시위를 벌였으며, 이날은 일본에서 취재를 나왔던 NHK 기자를 비롯하여, 칼라TV 중개를 하던 진중권 교수님과 그밖의 수많은 촛불시민들이 경찰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쓰러졌습니다. 가스통을 들거나 몽둥이를 든 것도 아닌, 단지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이 정부가 한달 내내 자신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자 도로로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몽둥이를 휘둘러 폭력으로 이를 다스리려 한 모습에 저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이 분노했습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그저 국민들의 권리를 대행하는 역할에 불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MB는 자신이 대통령이 아닌 왕이라도 된 것처럼 국민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故 김대중 대통령님의 국민의 정부와 故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보였던 태도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10년 동안의 민주주의를 체험했던 국민들은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권력을 휘둘러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른 다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정권의 개가 되어 진실을 왜곡하는 거짓 된 언론인 조중동을 바로잡기 위해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매일 새벽,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조선일보의 광고 리스트를 정리해 언소주와 아고라에 올렸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에 동참하면서 총 72면에 달했던 조선일보가 48면으로 대폭 줄어들고 대기업의 광고가 지면에서 몽땅 사라지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법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MB로부터 지시를 받은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이 검찰에 직접 명령을 내려서 아무런 고발자도 없는 상태에서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에 대한 법적인 탄압을 가하면서 저는 기소를 당하게 됩니다. 단지 불매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출국금지를 당하고, 회사와 집에 압수수색이 들어오고, 검찰처 특수부에서 2박 3일 동안 조사를 받고, 사전구속영장을 받아 유치장 신세를 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MB의 끄나플인 신영철 대법관에 의해 사건을 배당받은 판사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불매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제가 징역 3년을 구형 했습니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에게도 징역 3년은 구형하지 않는 법인데, 경찰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불매운동을 벌였다는 죄로 제게 살인범 보다도 더 큰 징역 3년을 구형한 것입니다. 이런 부조리함이 계속 되는 상황 속에서 저는 잠시 공권력의 횡포에 의해 그만 쫄아서 움츠러들고 말았습니다. 촛불집회에 나가는 숫자가 줄어들고, 점점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피로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에 앞장섰다가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은 제게 사람들은 민주주의 투사 혹은 영웅적인 행동이라 치켜세웠지만, 이런 것들이 제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압수수색과 계속 되는 재판으로 인해 직장생활이 위태로웠으며, 공권력의 횡포로 인한 불이익 때문에 괴로울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잠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고 혼자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방관하며 쉬었을 뿐인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만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조금 마음 편하자고 방관하고 침묵하면 정말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제가 방관하지 않고 직접 나서서 무언가 행동을 취한다고 해서 직접적인 변화가 생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만 계속한 채 입으로만 편히 상식을 파괴하는 MB정부를 욕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나를 지지한다고. 대통령에게 있어서 침묵하는 사람은 불만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때문에 직접 나서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대통령에게 있어서 침묵하는 사람은 모두 현재 상태에 만족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대통령의 지지자로 인식 될 뿐입니다. 인터넷에서 입으로만 떠드는 것으로는 이 침묵하는 다수의 범주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저는 비록 '투표권'을 제외하곤 아무런 권력도 지니지 못한 일개 국민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래도 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해서 '행동'으로 불의에 맞서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2009년 6월 27일에 시작한 1인 시위입니다. 처음 1인 시위를 시작할 때는, 제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하게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 직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느끼는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제가 1인 시위를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제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져서 20여명의 사람이 모여 각각 서로 다른 지하철 역에서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故 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 이후, 1인 시위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나오지 않기 시작했으며, 결국에는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저 혼자 뿐인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1인 시위를 시작한지 약 150여일 가량 지났을 때, 이런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고민했습니다. 1인 시위를 포기 할 것인가? 아니면 1인 시위를 계속 할 것인가? 1인 시위는 매우 외롭고 힘든 싸움입니다. 대규모 인원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내는 집회와는 달리, 혼자서 피켓을 든 채 조용히 서있어야 하는 고행의 시간입니다. 1인 시위는 피켓을 들고 계속 서있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 뿐안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힘이 듭니다. 머리 속에서 계속 '이렇게 1인 시위를 하는 게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일까?'하는 물음과 '이렇게 길바닥에서 지금 내가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인 시위를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너무나도 크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포기하고 방관할 때, 故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와 같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을 또 다시 보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꼭 네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나설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나서지 말아라. 너 하나쯤 빠진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1인 시위를 하면서 점점 행동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저는 느꼈습니다. "나조차도 나서지 않으면 정말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나조차도 빠지게 되면 정말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서 큰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나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계속 싸워서 포기했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서 싸울 수 있도록 힘을 내자!" 그래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 바로 1인 시위를 딱 1000일 동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1인 시위에 동참해 달라고 아무리 사람들에게 호소를 해도 사람들은 입으로만 "수고하십니다."라고 말할 뿐, 절대 동참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동참해 주고 행동에 나선다면 불의 앞에 침묵과 방관이 일상화 되어 버린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불의 앞에 직접 '행동'에 나서는 분위기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 끝에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설득의 방법이 바로 1000일 동안 1인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아고라와 오유 등 각종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을 통해 제가 하는1인 시위를 계속 알려서 아직도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1명이 1000일 동안 포기하지 않고 1인 시위를 계속 할테니, 1000일이 되면 이제 1000명이 단 하루 동안 만이라도 1000곳에서 동시에 1인 시위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인 시위를 비롯한 '행동'은 처음 시작할때 수많은 망설임 때문에 힘들 뿐, 막상 한 번 시작해 보면 다시 행동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처음'이라는 높은 벽만 넘게 된다면 '다시'라는 낮은 허들을 사람들이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 하나가 많이 힘들고 고생스럽겠지만, 1000일 동안 꾸준히 노력해서 사람들을 설득해 1000명이 '행동'에 나서게 한다면, 그 1000명 중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행동에 나서게 되고, 그들의 행동을 본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처음' 행동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침묵'하던 사회가 점점 '행동'하는 세상으로 변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꿈꿔봅니다. 지금 이 후기를 읽고 계시는 분들의 단 하루 중 1시간 가량을 행동 하도록 설득 하기 위해 제가 지난 900일 동안 계속 1인 시위를 해온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1명의 1000보 전진에도 가치가 있겠지만, 1000명의 1보 전진에 더욱 커다란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1명의 1000보 전진이 1000명의 1보 전진을 만들어 낼 수 있길 희망합니다. 2012년 3월 24일 토요일에 1000명의 시민들이 1000곳에서 1인 시위를 통해 2012년 4월 11일의 투표독려 운동에 앞장서서, 2012년 총선에서 투표율 80%의 대기록이 달성 되길 희망합니다. 행동과 참여만이 민주주의를 꽃피게 할 수 있습니다. 피를 마시며 성장해온 민주주의가 더 이상 피를 마시지 않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행동과 참여라는 이름의 거름으로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게 만들 수 있길 희망합니다. 1인 시위 800일 기념 동영상 1인 시위 800일 기념 동영상 1인 시위 700일 기념 동영상 1인 시위 600일 기념 동영상 1인 시위 500일 기념 동영상 1인 시위 400일 기념 동영상 1인 시위 300일 기념 동영상 1인 시위 200일 기념 동영상 1인 시위 100일 기념 동영상 http://cafe.daum.net/1protest (1인 시위 카페)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