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마지막을 보내던 요즘. 얼떨결에 최종합격을 했습니다. 이름 들으면 다들 아는 출판산데 교과서, 학습서 등을 만드는 곳입니다.
출판사 지원을 계속 했지만 순수문학쪽이었지 교육출판은 생각도 안했었는데 그래서 면접장소에서도 지원자들 사이에서 혼자 번민에 빠져 '내가 여기 왜 있지'라며 면접질문에도 맘대로 답하고 나를 표현하라고 하자 '미숫가루'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고 전공평가 시험도 맘대로 쳤습니다. 국어과 지원이라 홍길동전이 나왔더군요. 문제를 만들어라 해서 '길동은 좌절하고 있다' 멋진 보기를 적어줬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오더군요. 최종합격 하셨다고요. 그 쟁쟁한 지원자들은 도대체? 그리고 난 왜?
연봉은 사실 출판업계 초봉이 다들 그렇듯 열악합니다. 백수 기간 1년의 정산이 한순간에 이뤄지더군요.
작년(2010) 방송일을 시작하며 서울 땅을 밟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조연출로 시작했는데 수습 70만원!! 방세 빼니 하루 2만원의 수입이 남더군요. 결국 4개월만에 그만두고 이리저리 방황하다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서울은 가진 자에게는 기회의 도시지만 저에게는 춥고 배고픈 곳이었어요. 자다가 이유없이 깨면 깊은 절망이 방 가득히 나를 누르고 있더군요. 부산쪽 국립대를 나왔지만 서울에서의 미디어계 취업은 험난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차를 타고 내려오던 도중.. 아시는 목사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 행정 자리가 있다고요. 의료 경영이 앞으로 나쁘지 않은 전망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거기는 제 상황 상 이력서를 넣으면 합격입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이뤄지네요. 그것도 번갯불에 콩 굽듯 한번에 몰아닥칩니다. 그간 오전에 도서관을 다니고 오후에 과외를 몰아하며 버텼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교육 출판과 의료 행정. 너무 다른 길이 제 앞에 펼쳐졌어요. 첫 연봉은 비슷한 두 직장. 한 곳은 타지 서울. 한 곳은 고향 부산. 홀로 사시는 노모가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책이, 글이 좋습니다. 제 나이가 되면 아시겠지만 그 선택이 인생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이미 '방송'을 한번 버렸고 지금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혼자 고민하며 주저리를 떨었네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이 길로 가라. 자유의지는 때로는 너무 가혹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