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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억하자,
게시물ID : soju_228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수없다,
추천 : 3
조회수 : 23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27 17:21:53

 

 

 

  생은 흘러가고, 오늘 분 바람과 빗방울에 떨어진 목숨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내일은 언제나 안개속에 몸을 감추고

  세상은 몇 개의 겹을 가진 채 나뉘었으나 나뉘지 않은 듯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바람이 부는 도시의 대로와 이면도로와 복잡하게 얽힌 골목을 지나 멀리 걸어갔다.

  이 세계의 끝에 연해 있는 그곳은 황무지. 너르디 너른.

 

  그 황무지 사이로 바람이 불고 해가 쨍쨍 부서질 듯 내리쬐기도 하지만 그 사이로 아주 드물게 사람들이 지나간다. 인간은 없다. 그들은 서로를 간섭하지도 않은 채 서로를 비껴 걸어간다.

  나무 그늘에 누워 쉬고 있는 사람도 있고, 자기 머리 위로 구름을 몰고 다니는 사람도 있으며, 어디로 이어진지도 모를 끈을 하늘 높이 날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서로는 일방적 요구에 의해 상대를 붙잡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의 요구에 맞았을 때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서거나 한동안 함께 걷기도 한다.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황무지 여기저기 흩어진 풀들이 아우성이다.

  바람은 차가운 명징으로 불고 별들은 하 많이 떠 있으며 시야는 너르디 너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낮에도, 밤에도 어디든 날아다니고 있으며, 미네르바는 초승달에 걸터앉아 리라를 켜고 있다. 초승달인데도 밤은 보름보다 환하다.

  그림자도 자를 듯한 달빛이 머릿속까지 차갑게, 명징하게 해주고, 사람들은 여전히 걷거나 앉아 있거나 나무 아래 누워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어떠한 구분이나 제약도 없이 살고 있다.  

 

  문득 돌아온 길을 본다. 나는 아직 저쪽 세상으로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뿌연 스모그와 복잡하게 얽히고, 한 번 잘못 들어서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로 놓인 눈 앞의 세계는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나를 압박한다.

 

  하지만 나는 그 세계로 다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칠비칠 걸으며 내가 봤던, 그리고 가야 할 곳을 나는 각인한다. 지금 걸었던 길 따위는 잊어도 상관 없다. 길이란 어느 곳에선가 끝나기 마련이다. 모든 길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은 아니며, 내가 걷고 있는 이 세상 역시 모든 길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길들이 자신들조차 자신이 어떤 길인지 모를 만큼 얽혀 있기에 끝나지 않는 길이라 생각하게 될 뿐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탁하고 습한 바람이 살갗을 적시고 머리 속도 한 여름 땡볕에 질척하게 녹아 흐르는 아스팔트 마냥 생각들은 서로 엉겨붙는다. 하지만 나는 조급해 하지 않는다.

 

  언젠가 가게 될, 언젠가 부수게 될 나와, 또 어디선가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발들을 알고 또 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화려한 껍데기를 뒤집어 쓸 수록 나는 내가 만났던 그 세계가 더욱 더 황폐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오늘이 아니라고 내일도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의지만 변하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자기가 마음 속에 의지하고 있는 세계를 잃어버렸을 때이다  헤겔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최우선에 있으며 가장 근본이 되고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의지'이다. 
그 이후에 방법론이 존재하게 되며, 방법론은 가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 오호호호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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