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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로드(나눔받은 책)
게시물ID : readers_229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4
조회수 : 39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1/29 22:05:41
*블로그에 먼저 쓴 글이라 경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KakaoTalk_20151118_184028603.jpg

남자는 자신의 물건을 훔쳐간 도둑을 향해 총을 겨눴다.
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불안한 눈길로 훔쳐볼 뿐.
이윽고 남자는 도둑에게 옷과 신발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누더기와 다름없는 옷을 입고 있던 도둑은 양손을 든 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소설 '로드'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기억으로는 어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봤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 장면이 영화의 어디 쯤에 해당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붕괴된 세계에 항상 생각하던 나는 카메라가 비추는 무채색의 화면으로부터 어떤 신탁을 받은 듯 했다.

시간이 흘러 내 자신 이외에 다른 것을 돌아볼 여력이 조금 생겼을 때, 생면부지의 고마운 사람이 기억 속에서 여전히 떠돌고 있던 이름을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사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짧은 한 장면만으로도 영화와 그 원작이 되는 소설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버지, 아들 혹은 그에 상응하는 관계를 가진 남자와 아이.
텁수룩한 머리, 길게 자란 수염.
온몸에 재를 칠한 것 같은 무채색의 인물들.

모히칸 헤어를 한 악당들이나, 사람의 살점을 찾아 헤메는 시체들이 나오는 세상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결과적으로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라는 점은 같았지만, 어떤 것이 가장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다른 해답을 보여줄 것 같았다.

어쨌든,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 생각이 절반은 맞았고 절반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이야기는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세계를 지키고 싶었다.
그것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둘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그렇지만 남자는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생명을 깎아서라도 어떤 '선(善)'이 세계를 구원할 때까지 지켜내야만 했다.
멀어져가는 것처럼 보이던 세계는, 결국 남자의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결국 세계는 두 가지 모습을 함께 가진 채 스스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제법 오랜 시간 틈틈이 읽었고, 중후반부터 끝까지는 단번에 읽어내려갔다.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와 동시에 하나의 신념을 지켜내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얼핏 지루하게 반복되는 그들의 생활은 다채로운 비유와 은유의 향연 위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반복되는 여정에서 남자와 세계의 관계가 변화하는 모습은 더더욱 부각된다.

역자의 후기에 따르면, 저자인 코맥 매카시는 일흔의 나이에 열 살난 아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호텔의 방 안, 아들이 곤히 잠들어 있던 침대를 뒤로 한 채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던 그는 불현듯 세계의 멸망과 남겨진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듬어 낸 것이 이 책이었다.
그 이야기를 보고 난 후, 결국 이야기라는 것은 짜내고 짜내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 상념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좋은 이야기꾼,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닐런지.

마지막으로 남자가 바닷가에서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파도를 표현한 구절 하나를 적어본다.

- 모래에 잠자리를 만들고 누워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긴 전율과 와해.

내 평생 이런 은유를 글에 적어넣을 수 있을까.

* (닉언죄) 그런너님, 책 잘 읽었습니다. 마션도 읽다가 때려쳤는데, 로드는 정말 잘 읽히더군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책 나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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