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앞서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요새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는 아들이 혹시나 시위에 참여해 다치는 건 아닌지 걱정을 참 많이 하십니다. 수업시간 아버지께서 문자 한 통을 보내셨습니다.
'아들아 너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한동안 저 역시 시위를 실시간 현장중계를 보며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5월 29일 시위에 처음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점.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다.'
어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같이 시청에 나가보지 않으실래요? 사람들도 많아서 안전하고 비폭력이라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요." 오랜 통화 끝에 어머니께서는 "그래 한 번 같이 가보자꾸나"하시며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5월 31일 7시 시청 앞, 정말 수많은 사람들로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의 촛불은 서울 밤하늘의 별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올라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에도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가두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평소에 관절이 안 좋으신 어머니께서도 함께 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의외였습니다. ‘불법이라고 하던데...’라고 걱정하시던 어머니가 가두시위에 함께하시니 부모님이 자랑스러웠습니다.
10시 반이 지나고 경찰과 안국동에서 대치를 이루자 어머니께서 이만 돌아가자고 하셨습니다. 아마 혹시나 진압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셨나 봅니다. 저는 어머니를 역으로 바래다 드리고 다시 시위 장소로 향했습니다. 마치 집에 도착한 듯 거짓 통화로 안심을 시켜드린 채 다시 삼청동을 향해 달렸습니다.
6월 1일 새벽이 되자, 삼청동에서 청와대로 가는 방향에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했습니다. 경찰들은 이미 살수차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우시겠지만 물대포의 충격은 성인 남성의 정신을 잃게 할 정도입니다. 곳곳에서 물대포로 인해 저체온증 환자가 속출했습니다. 저는 살수차를 경계로 사람들과 스크랩을 짜며 전경들과 대치했습니다.
대치상황 중 한 시민이 고려대깃발을 살수차를 향해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살수차의 물대포는 정확히 그 분의 머리를 조준해 발포를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충격에 그 분은 정신을 잃었고 저와 사람들은 그 분을 응급차로 후송했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다시 대치전선으로 갔습니다.
또 다시 대치상황. 물대포가 다시 시민들의 머리를 조준했습니다. 시민들은 이번에는 물러서지않았습니다. 시민의 '비폭력'의 외침이 커지던 순간 제 뒤쪽 흰 옷을 입은 한 여성분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대치중에 일어난 일이라 시민들은 전경에게 사람이 쓰러졌다고 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환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틈이 생기자 전경들이 ‘쓸어버려’라는 함성과 함께 시민들을 밀었습니다. 제 옆의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압사 위기까지 몰렸습니다. 전경들의 주먹이 저와 시민들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여고생이 다치는 것을 막다가 옆에 있던 남자분이 경찰방패에 밀려 쓰러지셨습니다.
이어지는 도미노 작용. 그 분과 저와 여중생은 시민과 전경의 사이에서 압사를 당할 뻔했습니다. 엄살일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꺼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정말 두려웠습니다.
이러다 죽겠구나. 누가 내 손좀 잡아줘요. 제발. 숨쉬기가 힘들어요. 밀지마세요. 저희 셋은 서로를 붙들고 버텼습니다. 전경들 사이에 같힌 저희는 시민불들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공포와 슬픔. 분명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 평화적인 몸부림에 되돌아 온 메아리는 폭력이라는 악마였습니다. 아직도 제 귀엔 살려달라는 여중생의 비명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마디.
‘민주주의’ ...
대통령의 헌번으로 명시된 국민의 대표, 우리의 대표입니다. 하지만 어제 우리의 대표는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