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약이 있던 오늘.
오랜 선배님과 담소와 약간의 곡차를 나누고 돌아가는 늦은 귀가길.
전철 안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의 술주정을 들었다. 그 남자는 창밖을 보며 혼자 중얼대는 듯 하다가 갑자기 다른 승객들을 향해 고함을 쳐댔다.
'이렇게 안 살고 싶었다고! 이렇게 안 살거야! 니네 다 병신들이야! 니네 다 거짓말쟁이들이라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던 내게도 분명하게 들렸다. 어떻게든 걸어왔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절규.
승무원이 달려와 제지하는 듯 했지만, 나를 포함한 다른 승객 모두 그 취객의 목소리를 들었다. 모두 같은 생각일까. 객실의 공기가 차갑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
이봐, 친구.
선택했잖아.
선택한거야.
누구도 너에게 강요한 적 없어.
네가 선택한거야.
너의 마음의 짐을 직접 들어주진 못하지만...
같이 가자.
우리 모두 같이 가는거야.
당장 내일 무슨일이 일어날 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단 같이 가자.
같이 걸으면 좀 낫잖아.
내일도, 모레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나와 같은 열차를 타고 다닐 나의 '동료'야.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