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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지영]
게시물ID : readers_229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른영혼
추천 : 2
조회수 : 2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02 11: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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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철은 믿고 있었다.

자신은 곧죽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날씨가 궂어진 겨울날, 아침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희철은 잠에서 깨어 있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꺼풀 속이 고물 영사기 같았다.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녀의 모든 것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희철은 기억들을 믿지 않으려 애쓰고 또 애썼다.

누가 자신의 머리를 열고, 기억을 관장하는 전두엽을 훼손시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희철의 머리 속에서 지영은 갈색으로 염색한 단발머리에 베이지색 스웨터,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보이는 핫팬츠를 입고 가을의 어느 들판을 뛰어놀고 있었다.

지영은 웃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영원히.

지영은 희철의 앞에 마주보고 앉아 된장찌개와 몇가지 반찬을 맛있게 먹고 있다. 지영은 맛있어 죽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지영은 희철의 어깨에 기대 TV를 보고 있었다. 흐트러진 자세가 점점 기울어 희철의 다리에 머리를 베었다. 지영의 숨소리가 나즈막히 들려오는 티비 소리보다 크게 느껴졌다.

그녀의 모든 것. 그녀와 함께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한 편의 영화가 어느 순간 필름이 뚝 끊겨버렸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죽었을까.

희철은 믿고 싶었다. 차라리 사랑이 아니었노라고.

이윽고 방 안에 아침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철만은 그때 그 시간 속에 갇혀있었다.

희철의 마음 속에 눈폭풍이 불고 있었다.

희철은 그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그녀에 대한 원망감, 부정하고 싶은 기억들 모두 

칼이 되어 그를 처절히 부수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건설해왔던 모든 것들이 전쟁터에 폭격을 맞듯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게 그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희철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자신은 곧죽어도 그녀를 사랑한 적 없었노라고.

그러나 부정하면 부정할 수록 그녀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녀와 싸우고 화해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입맞추고 만지고 함께 했던 그 사소한 것들은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희철은 믿었다.

그녀를 그렇게 사랑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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