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영업종료하고 셔터를 내린 후 역무실에 다같이 모여서 회식을 하곤 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역무원의 경험담을 듣게 되었다.
몇년 전, 근무하던 역에서 투신자살사고가 났었는데... 시신수습을 위해 선로에 내려가 전등을 비춰보며 한참을 찾아 반토막난 시신을 발견했단다. 엎드려 있어서 얼굴을 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다. 일단 들것에 상반신을 주워 담고, 다음에 하반신을 주워 담고, 내장들을 긁어모아 담았다고 했다.
그때 내장액이 근무복에 튀어 자국이 남았는데 아무리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다며 지금 입고 있던 근무복에 남아있는 얼룩을 보여줬다.
#42 [Get Wet]
막차가 끝난 후... 만취한 여성이 일행과 함께 대합실 벤치에 뻗어 있었다.
열차운행이 종료되었으니 역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일행들이 만취 여성을 데리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도와 달란다. 부축해도 걷지 못할 정도로 인사불성이어서 결국 업고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데 근무복 바지 뒤가 축축해진 걸 느꼈다.
그 여성은 바지를 입은 채로 방뇨를 했던 것이다.
#43 [White Face]
선임이 겪었다며 말해줬던 이야기다.
야간 승강장 초소근무를 하고 있는데 초소 측면 유리창을 격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화장을 떡칠해서 얼굴이 새하얀 여자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두 주먹으로 유리창을 쾅쾅쾅 두드리며... "니가 죽였지! 니가 죽였지!"라고 외치고 있었다고 한다.
깜짝 놀란 선임은 정신없이 초소에서 뛰쳐나와 역무실로 달려올라가서 후임에게 승강장에 이상한 여자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후임과 같이 내려갔는데 그 여자는 사라졌다.
미친 여자였나 싶어서 후임을 돌려보내고 다시 초소에 앉아 근무를 하는데 몇 분 뒤에 다시 그 여자가 나타나 같은 짓을 반복했고, 선임은 겁에 질려 역무실로 도망가서 후임을 내려보냈는데 그 뒤로 다시는 그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44 [Two Face]
한 남자가 부정승차하려다 걸려서 역무실로 끌려왔다. 그 남자는 자기가 부정승차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잡아땠다.
적발했던 곳이 CCTV 사각지대였어서 물증이 없었다. 증거가 없다는 걸 알자 남자는 기고만장해졌다. 역무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후임에게 "야 차나 한 잔 타와봐라!"라며 거들먹거렸다.
다음날, 그 남자는 계단에서 여자들의 치맛속을 핸드폰으로 몰래 찍다 걸려서 역무실로 끌려왔다. 증거와 증인이 있었다.
역무실에 끌려온 그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면서 울상을 지으며 한 번만 봐달라고 무릎 꿇고 사정했다. 고소장을 작성해서 경찰에 넘겼다.
전날 그 남자가 재수없게 굴었던게 후임의 신경을 건드렸고, 그날 후임이 그 남자를 발견하자마자 뒤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잡을 수 있었다.
#45 [Ordinary Day]
누군가 승강장에서 쓰러졌다고 연락이 와서 가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진정시키고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니 뇌수술의 부작용으로 가끔씩 그렇게 쓰러진덴다.
잠시후 출동한 119 구급대원에게 아주머니를 인계하고, 다시 역무실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어떤 청년이 배가 갑자기 너무 아프다며 119를 불러달라고 찾아왔다. 119에 출동요청을 하자마자 열차사령실에서' 열차 안에 환자가 있으니 구조처리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정신없이 처리하고 그제야 숨 좀 돌리려나 했는데... 10분도 안되서 술 취한 할아버지가 열차에서 내리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주저 앉는 것이다.
거주지가 이 근방이라고 해서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라고 하고 벤치에 앉혔다. 그 할아버지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욕을 하면서 나를 때렸지만 술 취하고 늙어서 그런지 힘이 별로 실려있지 않았다.
역무실에 올라가자마자 또 열차사령실에서 '열차 안에 어떤 남자가 바지를 내리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끌어내달라'고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