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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독후감 (스포포함)
게시물ID : readers_230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치우
추천 : 2
조회수 : 12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04 16:42:25

꽤 오래 전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K.) 의 소설심판을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원 제목은 '소송'인데 누군가 심판으로 번역한 이후로 그렇게 굳어졌다고 하네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카프카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좀 난해한 책이다 보니 제 나름 이해한 바를 알리고 싶어서요. 혼자 끄적인 거라서 하다체인데 양해 바랍니다.


글의 주인공은 은행원 요제프 K.이다. 그는 자고 일어나니 소송의 피고인이 되었다. 그러나 글 전체를 통해 그의 죄가 무엇인지, 그러니까 소송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소송의 원고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에서 프란츠 K.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죄도 원고도 그 실체가 없지만, 소송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누구든, 무엇 때문이든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나는 무엇이든 (그것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누구에게든 소송을 걸 수 있는가? 생각해보니 안 될 것도 없다. 이점에서 소송과 고발은 다르다. 고발이란 누군가의 죄를 발견하고 그것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소송이란 누군가가 무엇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그 무엇이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해 달라고 신청하는 것이다. 판결을 통해, 피고는 무엇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의 '죄성'(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특성이라 하자)에 따라 유죄 또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가 설사 완전무결한 사람이라해도 소송은 시작될 수 있고, 시작된 이상 끝나기 전까지 그는 무죄인지 유죄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죄인지 또는 아닌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과연 믿을만한가? 이것이 프란츠 K.의 첫번째 질문이다. 그는 사회가 규정하는 죄의 절대성에 의문을 던졌다.

과연 절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가? 죄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잣대를 만든 것이 인간일진대 그의 잣대가 절대적일 수 있는가? 절대자가 아닌 인간이,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러한 프란츠 K.의 지적은인간이 죄가 있을 수 있나요?’라는 요제프 K.의 질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리고 글에서는 하급 판사만 드러날 뿐 절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최상급 판사라는 존재는 신화처럼 다뤄질 뿐이다.

인간이 만든 죄는 절대적인 죄가 아니라면, 프란츠 K.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죄는 무엇일까? 어떤 이에게는 종교적인 원죄가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무신론자에게는? 

주인공 요제프 K.는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도 아니다. 총명한 머리에 좋은 직장을 가진 사내이다. 그는 처음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분개하며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고 더 나아가 사법 시스템의 부당함을 외친다.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뿐이지 그 스스로는 당당하다. 그리고 소송 이후 그 어떤 것도 실제로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서 그는 양심의 자책이나 물질적인 피해가 없고, 소송에 대한 관심조차 시들해진다. 그러나 점차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의 소송 사실을 알고, 그가 피고인 상태라는 것이 모두에게 알려진다. 이제 그는 초조해진다. 홀로 자신의 결백함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가 자신의 결백을 선고받기 위해서는 사법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소송은 기약이 없고 그의 피고인 상태는 지속된다. 이제 그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억압에 묶여있다고 단정 짓는다. 절대 풀려날 수 없을 것이란 확신도 함께. 그는 진정한 무죄를 선고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절망한다. 결국, 그는 스스로 그 무엇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 되어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에 형벌의 집행을 자처한다. 

결말을 향해가며 보여주는 요제프 K.의 모습이 바로 프란츠 K.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죄인의 모습이 아닐까? 죄명은 (실재하지 않는 죄에 대한) 죄의식. 오랜 피고인의 상태는 타인의 의혹 눈초리를 부르고 결백을 주장하던 그 자신조차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자기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그는 결국 죽음 외에는 벗어날 수 없는 죄의식에 갇힌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프란츠 K.가 말하는 절대적인 죄가 아닐까. 실체가 없는 죄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의 죄를 누가 그에게서 벗겨줄 수 있을까? 그가 그 자신을 고발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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