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게 '멧돌리언'님이 링크하신 자료를 더 많은 분이 볼 수 있길 바라며 이렇게 퍼 올립니다.> 사진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에, 전남의 치안 총 책임자인 전라남도 치안국장입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군 병력 투입을 요청하라는 강요, 협박 그리고 발포명령을 끝내 거부하셨답니다. 이로 인해 5월26일 직위해제 당한 그는, 보안사 동빙고 분실로 끌려가 10여일간 온갖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결국 1988년 10월10일 광주의 한을 품은 채 생을 마감하셨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 안병하 전남경찰국장님께서는 신군부로부터 경찰력만으로 치안유지가 어려우므로 군 투입을 요청하도록 강요를 받았으나 경찰력만으로도 치안유지가 충분하며 군이 투입될 경우 오히려 시민들을 자극하여 사태가 악화될 것으로 판단하여 이를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계엄 하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신군부의 무력사용 등 강경 진압 압력과 서슬 퍼런 협박성 지시를 거부하고 오히려 경찰관들에게 총기 휴대를 금지하고 무기 회수 명령을 내려 시민보호와 안전에 혼신의 노력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병하 경찰국장은 발포 명령을 지시받던 순간 4·19 때 경찰이 국민을 향해 발사한 총탄이 가져온 불행을 떠올리고 경찰이 더는 역사의 죄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신군부에 적극 협조한다면 출세가 보장되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닥칠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알았음에도 안병하 경찰국장은 결국 쉽지 않은 정의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또한 공수부대의 시민들에 대한 발포 및 잔인한 폭력진압에 분개하여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돕거나 편의 제공을 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신군부의 미움을 사 강제 해임되고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여 그 후유증으로 1988년 타계하셨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유언으로 신 군부에 동조하지 않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으며, 언젠가는 역사가 나를 알아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며, 가족들 모두 국립묘지로 나를 반기러 오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는 말씀을 남겼다고 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과 경찰은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았고 상호 협력하였으며, 경찰에 희생된 시민들이 전혀 없었고, 경찰 또한 시민들로부터 공격당한 사실이 없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