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베스트로 올라온 글 하나를 봤습니다. 이게 뭔가 싶어 읽어봤는데, 헐. 에센티님 관련 글이군요. 저도 여자로써 그런 말 들었다면 상대방이 정말 저질스럽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을 테고, 말을 한 본인이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갖고 말을 했던 간에 불쾌했을겁니다. 분명히 에센티님은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존재합니다. 이 내용을 들은 어떤 분께서는 이 글을 올렸습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갑니다. 93년생이면 고등학생이시군요. 당사자분은 중학생이라고 하셨죠? 21살인 저도 스물일곱에게는 함부로 못 대합니다. 불쾌하다고 따지는것도 사실상 힘듭니다. 하물며 글쓴이와 당사자는 어떨까요? 상대방이 저질스럽다는 것을 뛰어넘어 상대방은 그저 머나먼 '어른'으로 보입니다. 본인과는 상대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글쓴이가 선택한 것이 바로 여기였을 겝니다. 본인의 분노가 가시지 않고, 여전히 박성열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화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에, 진실을 알리고 싶고, 분노를 좀 가라앉히고 싶었을 겁니다. 십분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정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뭔가 하나 어긋났습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이 박성열이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주 조각조각의 단편적 지식만 알고 있을 뿐이죠. 이 상황에서, 제 3자가 이 글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요? 자아분열증에 걸리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순수하기도 하고, 비열하기도 하고, 정열적이기도 하고, 때론 끊임없이 나쁜 인간일 수도 있습니다. 즉 오늘 보여지는 모습 자체가 내 모습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귈 때도 오래 사귀어봐야 제대로 그 사람이 어떤지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도 여러분도 박성열씨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냥 만화를 그리면서 이런 저런 활동을 했던, 그런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성격은 어떤지 잘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 글을 접했을 때,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박성열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자신이 모르는 그 빈 공간이, '성추행'이라는 단어로 주홍글씨처럼 채워집니다. 실제로 이 사람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성추행을 한 저질스러운 새끼'가 되는 겁니다.
작성자님은 이것을 간과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전후좌우에 대해 알아 볼 기회를 스스로 내던지고, '결과'라는 그 단편적인 것 하나만으로 사람 하나를 끝없이 깝니다. 형법에도, '고의'와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똑같은 살인의 결과라 할 지라도 '과실치사'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즉 같은 결과라도 경우를 따져서 죄의 형량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비약을 해 보자면, 박성열씨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많은 역경을 거치고 살아 오신 분인데, 그 '인생의 공백기'라고 할 수도 있는 시간에 겪을, 실제로 남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신 채 살아오다 이번에 뒤통수 맞고 깨달으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앞뒤 따져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파만파 퍼져 버린다면, 아예 '소명의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마따나 어떤 말을 하든지 변명이 되어 버리며,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면 꿀리는 게 있으니 가만히 있는 게 되어 버립니다. 글 하나에 박성열이라는 사람을 궁지로 내 몰고 있는 것입니다.
박성열씨를 옹호하고자 하는 마음은 단 1g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잘못이 존재하고, 본인도 그 잘못을 스스로 시인했습니다. 다만 일단은 시인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 말이 거짓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의 시인에 대한 파급 효과를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작은 집단에서 '죄송합니다' 한 것과는 아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약 대충 사과만 하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면 당연히 자신의 인생 자체가 매장당할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을 겁니다. 따라서 그것이 거짓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정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무언가의 잘못을 했다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맞습니다. 박성열씨에게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자숙을 하는게 옳습니다. 다만 이런 단편적인 것 하나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 자체가 소명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짓밟히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것이 아니니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만약 '그럼 살인자에게도 소명 기회가 필요한 것이냐'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전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까 위에도 말씀드렸듯이 과실치사와 고의적인 살인은 다릅니다. 또한 자신이 고의로 잘못을 저질렀다 할 지라도, 자신이 스스로 이것이 잘못했다고 반성해야 할 기회는 분명히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 진정으로 반성했다면, 우리 사회는 그것을 받아 주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사연을 여기에 올리기 참 민망스럽습니다만 제게도 청소년 시절을 정말 상처로 얼룩지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제 소중한 인생의 시간들이 송두리째 짓밟히고 멍으로 얼룩졌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하루하루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먹한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람이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 일에 분명 후회를 하고 뉘우쳤으며, 더 이상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도 또한 살아가면서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 횡설수설해서 죄송합니다. 박성열씨를 용서하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 일로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도 또한 이런 일로 사람을 불쾌하게 한 적이 한번도 없었노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