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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우리는 현대판 노예인지도 모른다.
게시물ID : sisa_230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핫돌이
추천 : 6
조회수 : 33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6/07/14 13:58:16
2004년 초, 졸업 바로 전부터 나는 00뉴스라는 2류 잡지사에서 인턴 비슷하게 잠깐 일을 했던 적이 있다. 나중에 써먹을 경력이나 쌓자는 심산이었고, 그곳에 드나드는 어린 언론인 지망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의 목표도 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하는 것이었다. 그 대부분은 여자였는데, 보통은 기자나 아나운서를 지망했고 그 중에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굉장히 미인인 처자도 있었다. 그녀의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보며 사회가 공인한 엘리트 미녀도 무뇌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가끔 TV에서 보는데(직접 보면 3배 더 이쁘다), 그 무늬만 요란한 바보가 무책임하게 갈겨쓰고 도망쳐 놓은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마감 몇 시간 전까지 수습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속에서 욕이 나온다.

신간이 출간되면 나타나 그걸 커리어용으로 정성껏 스크랩하던 걸 생각하면 정말... 제발 이쁜 척은 해도 되지만, 지적인 척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여자다. 게다가 그녀는 일정수준 이상의 영향력을 지닌 언론인(물론 남자 언론인)들을 은근하게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대단한 선수였다. 갑자기 생각하니까 또 재수가 없어진다. 눈부신 미인도 상종하기 싫어질 수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여하튼, 당시 나를 제외한 모든 인턴(내지는 수습)이 여자였던 그 무리 중에서 나만 선배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선배들을 군대식으로 존중해주고, 노가다도 함께 하고, 3~4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도 꼬박꼬박 참석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비공인 정식 멤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진기자인 동기와 조를 이뤄 정식 취재기자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보수적인 잡지사에서 취재기자의 일이란 정치적인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사를 쓰거나 정치인들과 무슨무슨 사장님들과의 인터뷰, 혹은 시사적인 이른바 <책상기사>를 쓰는 것이다. 한국일보 출신 편집부장-일명 ‘데스크’-의 총애를 받아 나름 굵직한 인터뷰에 쫓아다니다가 정치적인 인지도가 꽤 높은 민주당 국회의원을 단독 인터뷰하게 되었다. 당초 그 귀 밝은 양반은 우리 잡지사의 소문난 예쁜 여기자를 원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아나운서가 되는 데 한물 간 민주당의 국회의원 아저씨는 그닥 필요가 없었던 미래의 아나운서는 예상대로 ‘바쁘다’며 잠수를 탔고, 여차저차해서 내가 한 번 해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던 것이다.

약속시간에 맞춰 국회의원의 사무실 건물에 도착했지만 그 양반은 없었고 전화를 하자 그곳으로 가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답이 왔다. 뭐, 기다려야 했다. 사진기자 동기와 담배를 피우고 있으려니 <여기 VIP가 타고 있다>는 전형적인 포스를 발산하는 국산 검은색 고급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딱 봐도 의원이 타고 있는 차였다. 당연하겠지만 뒷문 대신 앞문이 황급히 열렸다. 운전사가 VIP의 문을 대신 열어주는 건 일반적인 관례니까.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운전기사 아저씨는 차를 끼고 빠른 걸음으로 빙 돌다가 보도블럭의 턱에 걸려서 넘어져 버린 것이다. 갑자기 휙 하고 넘어진 거였다. 아마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아프게 넘어진 게 그분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요란한 소리로 다치는 것은 그렇게 아프지 않을 때가 많다. 정말 아프게 다칠 때는 오히려 콤팩트하고 절묘한 소리가 난다. 그 기사분이 넘어졌을 때는 아주 적절한 음량의 <빠직>하는 소리가 났다. 그 관절의 연골 으깨지는 소리... 상체가 수직낙하해서, 양 팔꿈치와 무릎을 동시에 돌바닥에 찧은 것이다. 비명도 없었다. 정말 아프면 소리가 나오다 되들어가는 법이다.

정말 아팠을 것이고 또 그래 보였지만, 당사자에게는 죄송하게도 그 엽기적으로 넘어지는 모습에 우리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런데 정말 아팠나 보다. 기사분은 사지를 바들바들 떨며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사실 반백의 머리에 선량하게 생긴 그 나이든 분을 어서 부축해 드리는 게 도리였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 지도 궁금했고, 또 그때는 순진해서인지 뒷좌석의 의원이 뭔가를 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 분은 계속 일어나려고 했지만, 사지에 힘이 풀려서인지 잘 되지 않았다. 당연한 건지 놀라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짙은 선탠을 한 차창 사이로 희미하게 보니 의원은 아주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마치 직접 차 문을 열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그런 분위기였다. 다친 기사분은 그냥 누워서 도움을 기다려도 되련만, 기어코 당장이라도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간신히 간신히 일어서는 그 동작이 <주온>에 나오는 각기춤 추는 여자귀신하고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우리는 또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그 웃음은 와이셔츠의 한 쪽 팔꿈치 부분에 피가 배어 있는 것을 보고 쑥 들어갔다. 그렇게 일어나야 했던 이유는 한시라도 빨리 의원의 차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였다. 

결국 비틀거리는 동작으로 차 문이 열렸고, 중년이지만 자신의 기사보다는 젊어 보이는 의원이 쓱 내렸다. 이 양반이 기사분에게 던진 한 마디가 압권이다.

<거 왜 다치고 그래?>

식당에서 <넌 왜 콩나물만 먹냐>고 말하는 식의 아무렇지도 않는 말투였다. 그 때의 어이없음이란... 의원은 우리의 프레스 클립을 보고 <어 0기자!>하고 말을 걸었고 그렇게 join이 되었다. 우리가 <기사분이 많이 다친 것 같은데요.>라고 하자 국회의원이 한다는 말이

<어, 괜찮아.>

그러니까 마치 까짓 거, 하는 그런 투였다. 자기 자식이라도 그랬을까. 적어도 위로나 걱정의 한마디라도 해주리라 여겼던 우리로서는, 뇌가 깨끗이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당사자가 싸가지가 없어서이기 이전에, 인격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였다. 마치 조선시대의 대감과 머슴을 보는 것 같았고, 기사가 사회적으로는 자신의 아랫사람이지만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동등한 인격체라는 상식 자체가 없는 듯 보였다. 요즘 섬지역에서 착취당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취재진들이 흔히 하는 말이 <사람이 악해서라기보다는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다>는 식의 얘기다. 그 국회의원의 경우도 재수 없는 인간이기 이전에(재수도 없었다) 사고방식 자체가 봉건적이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봉건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알았다고 할까. 하지만 더 착잡했던 이유는 그 기사분도 그런 식의 관계를 당연시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학 말년에 공부한답시고 4.19 기념도서관을 들락거린 적이 있는데, 거기 출퇴근하는 국회의원에게 매일 득달같이 달려가 허리가 꺾어지게 단체인사를 하던 경비아저씨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나는 그 광경을 처음 봤을 때 무슨 임금님이 행차하는 줄 알았다. 이 경비아저씨들은 언제 왔다 언제 갈지 모르는 그 의원을 위한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데에 거의 하루 종일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갑자기 그분이 오셨을 때 차 댈 데가 없으면 그건 대역죄라는 식의 분위기였다. 그런 걸 보면 정말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거짓말처럼 권위에 순종적이라니... 저 맛에 정치인을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인터뷰는 애초에 정해진 컨셉대로 진행됐다. 그 컨셉이란 의원의 뜨거운 애국심과 국민사랑,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아 인생의 신조가 되었다는 고결한 의미의 한자 성어 등에 대한 열변을 토하면 잡지사 측에서는 그 양반의 무식이 드러나지 않게 그걸 괜찮게 갈무리하는 거였다. 그 고리타분한 잘난 척에 불과한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만화나 드라마에 풍자적으로 등장하는 권위적이고 부패한 정치인들의 모습이 과장이기는커녕 현실보다 더 양호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함께 있었던 사진기자 동기의 아버지도 대단한 부호이며 사회 고위층이다. 그 녀석이 내게, 자신의 아버지도 운전기사를 고용하지만 결코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오해할까봐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날 그 국회의원은 그 정도로 정이 떨어졌다. 그런 사람이 뜨거운 애국심이라니, 믿을 수 없다.

내가 우연히 만나본 몇몇 국회의원들을 보면, 그 양반들이 정치를 하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사회의 극진한 대접을 누리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마구 든다. 단언컨대, 이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을 평민이나 농노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떠받들어지는 것에 아주 익숙해져 있으며, 또 그것을 당연시한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공용 주차장에 마지막 남은 자리에 주차를 한 사람이, 나중에 온 국회의원이 원한다는 이유로 당장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싫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하극상이다. 그 마지막 주차를 한 사람이 젠장, 나였다. 그래서 국회의원과 길거리에서 언성 높이고 싸웠다. 왜 그때 내가 그렇게 용기백배가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양반의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어 놓고 다른 데로 쫓아낸 걸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살짝 좋아진다.(엘란트라가 체어맨을 이겼다)

어디서든지 개념이 문제다. 여자를 인격체가 아닌 몸뚱이로 보니 점령이라느니 따먹는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장애인을 인격체가 아닌 <쓸만한 생명체> 정도로 보니 가져다 써먹을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하는 일은 가치 없다. 내가 만난 몇 명의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리라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는다. 물론 정의감 넘치는 정치인들도 있겠지만, 가뭄에 콩이다. PD수첩에 나온 한미무역협정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뭘 제대로 했겠나. 덜 더러운 똥을 골라 선거를 하니, 결국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굽어보며 <다스린다>. 물론 자신들을 위해서. 섬에서 고통 받는 현대판 노예들과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 이 글은 남로당 접선특위 자유게시판에 TodayJusT 님이 쓰신 글입니다.

* 본 기사는 남로당(www.namrodang.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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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케으원 나으리가 누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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