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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도 아니고, 세로 창살이 쳐진 문이 들어서기에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열고 나니
아담한 실내에서 나이 지긋한 주인어른이 맞이 한다.
"식사 되나요?"
"예, 어서오세요."
"저 1인분도 되나요?"
"네"
내가 앉은 맞은 편에는 노신사 세 분이 소줏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복국을 시킨 뒤 잠시 후 주인 아주머니가 반찬을 내왔다.
가게가 작아서 종업원을 두지 않고 두 분이서 직접 하시는 듯 하다. 주방이 벽없이 열려 있어 두 분이 음식 준비하는 걸 다 볼 수 있었다.
복지리국은 바로 나왔다.
밑반찬은
시금치 무침, 콩나물 무침, 김치, 톳나물 무침, 깍뚜기, 멸치 젓갈이다. 간촐하지만 맛들이 하나같이 깔금하다.
김치는 약간 신 김치였는데 입맛에 오히려 맞았다.
그리고 복지리국,
냄비에 담겨 나왔는데 솔직히 비주얼적으로는 그냥저냥 했다.
국물을 떠서 한 입 넣었다.
사실 맛집 기행에서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일 텐데
국물을 입에 넣었을 때의 느낌은,
"적당한 간에 적당하게 우러난 적당한 지리국이구나."하는 것이었다.
졸복이라 푸짐하지도 않고, 고기 양이 많지도 않다.
맛도 무릎을 치면서 탄식하게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어쩌면 9천원이라는 가격이 약간 비싸다는 느낌이 들 정도?
하지만 왠 일일까?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항상 가성비를 따지는 처지지만 아까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최고는 아니지만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끓여 담아 낸 국물맛과 정갈한 반찬,
그리고 훤히 뚫린 주방에서 역할을 나눠 따박따박 자기 일을 묵묵히 하시는 두 분 노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하며,
혼자 회 1인분(8000원)을 시켜 놓고 소주 한 잔을 하고 계신 중절모 노신사와 함께 있는 즐거움하며,
건너편에서 아까부터 쭈욱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신 세 분 노신사의 이야기를 훔쳐 듣는 즐거움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밑반찬으로 나온 멸치젓갈이 맛있었다는 말도 남기고 싶다.
간혹 깔금한 안주에 소주 한 잔이 생각날 때 찾아 올까싶어 계산 할 때 물어 보았다.
"아주머니, 저녁 몇시까지 하세요?"
"8시에 닫아요.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
"저녁에 술 한잔 하려고 했는데..."
"한 잔 하려면 일찍 와요."
아주머니께서 웃으셨다.
기분좋은 곳에 기분좋은 손님들을 남겨 놓은 채 가게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깐 뒤를 돌아본다.
아마 몇 번 또 올 것 같다.
아마 그때 난 적당한 숙취와 알콜의 흔적을 끌고 오겠지.
아니면 아예 8000원 1인분 회에 소주 한 잔 하려고 혁띠를 반 쯤 풀고 오든가.
연어처럼.
왼쪽이 '통영항여객선터미널', 오른쪽 골목에 '수정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오늘도 마무리는
내 마음대로 아지트로 정해버린 공간,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 '바다봄' 4층이다.
*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개인 별점 : ★★★★★★★☆☆☆ (10개 만점)
- 'si'를 쓰는 마음이 'chunji'에 가득하기를, sichunji.
#덧붙임 : 메뉴판 올리는 것을 까먹었어요. (격려와 덕담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