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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나라 터키
게시물ID : humorbest_231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훈스
추천 : 62
조회수 : 1645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1/24 00:31:10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1/22 23:37:39
웃대에서 퍼왔습니다.
전 국민이 읽어봤야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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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창피한 자화상(터키를 아십니까?) 

미국은 한국을 공산당의 마수에서 구해준 은혜의 나라입니다. 
최근 들어 미국의 자국이기주의로 반미감정이 일어났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인에게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정서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방위전략측면에서 우리를 도운 것일 뿐 
순수하게 자유와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운 것이 아닌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착각 속에서 미국을 대해왔습니다. 

터키라는 나라는 자국의 이익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이득도 없는 한국에 오직 인류애로서 미국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했고 
터키가 보낸 군대는 모두 차출이 아닌 자원병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터키는 지금까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며 
한국이 잘살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습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겠지요. 한국에게 터키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 
입니다. 

한국 사람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관심을 갖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이기적(?)습관에 젖어있기에 그런 게 아닐 
런지??? 

우리가 월남에 파병을 한 것이 터키와 같이 조건 없는 파병이었습니까? 
우리의 국익을 위한 파병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지진참사가 나서 구호성금을 모을 때 
도 
피해자 가운데 한국인이 있으면 온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진이 났나보다 하고 지나쳐 버리죠. 
불매운동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의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국을 위한 군복무도 기피하는 풍조에서 터키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터키는 한국 전쟁 당시 우리를 위해 싸워준 민족입니다. 
저들이 피 흘렸고 죽었으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를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50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 민족을 사랑했었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저들의 짝사랑을 외면했고 그 실제를 몰랐습니다. 
88 올림픽 때에는 “형제의 나라에서 올림픽을 한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하면서 24시간 내내 TV 방송을 하기도 했고, 
국제 대회 때마다 한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남서울 은혜교회 사이트에서) 


터어키 국민은 한국 동란 시 참전으로 맺은 인연으로 인하여, 
한국인을 코렐리(Koreli)라고 부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문제 발생시 적극 도와주려 함. (에주투어 터키 현지정보에서) 


터키는 6.25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16개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하여 
그 용맹성을 떨치며 한국을 피로써 도와주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관계로 인해 터키는 한국에 대해 깊은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터키는 이러한 우호 협력의 관계를 보다 심화시키고자 
양국간 상호 상대방 명칭을 딴 공원을 조성하기로 하여 
앙카라의 구 터미널(기차역 근처)앞에 한국공원이 한국 정부에 의해 1973년 
한국 참전 전사자를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한국에도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옆에 앙카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앙카라 여행 
사이트에서) 


이 모든 일 보다도 나를 많이 깨우친 일은 "한국전참전용사"와의 만남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기까지 그분들께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리셨을 지. 
배로 28일이 걸리는 먼 이국까지 와, 목숨을 걸고 싸우신 그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총 19 분을 뵈었는데 그 중 7분은 돌아가셨다(이 분 가정에선 부인과 아들을 만났다) 

대부분 그리 넉넉한 생활을 하고 계시진 않았다. 
아직도 맘 한구석이 서늘한 것은 그 때문일까. 
짤막한 만남이었지만 우리를 바라 불 때의 시선 하나 하나와 그 눈빛에서 
어떤 공감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50년이나 흘러 이제야 찾아온 송구함을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까. 
우리가 잊혀진, 잊고 싶어서 잊어버린 기억을 기어이 다시 꺼내고 오기만 한 건 아닌 
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인천, 부산, 대구, 대전, 수원, 군우리를 기억하고 계셨다. 

6만6천이라는 터키군 그들이 강한 신념으로 
한국인과 영광을 위해 가장 용맹하게 싸웠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방문만으로도 고마워하시고 반가워하셨던 그분들.. 
그 분 마음속에 한국은 항상 형제의 나라(Brother Country)였다. 
(최민지씨의 터키 자원 봉사기중 발췌) 


그리고 한국과 터키사이의 관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6.25와 터키 대지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6.25때 미군다음으로 터키 군인들이 많이 참전을 하였습니다. 
터키도 의무 복무기간이 18개월 정도 되기 때문에 
한국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은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1996년 혹은 1997년경에 
터키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국이 보여준 성의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을 하곤 합니다. (김관훈씨의 터키 여행기중) 


신계륜 의원은 5월 8일 오후 Tomur-Bayer 주한 터키대사와 만찬을 하며 
양국 관심사에 대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Tomur-Bayer대사는 
99년 터키 대지진때 국민 성금을 모아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신계륜 의원도 6.25 전쟁 시 파병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을 전했다. 
Tomur-Bayer 대사는 한국에 오기전 중국에서 5년 동안 지낸 경험을 설명하고, 
신계륜 의원이 "중국인과 한국인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하고 묻자 
Tomur-Bayer 대사는 
"중국인들은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해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한국인들은 친구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어 너무나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국회의원 신계륜 사이트에서) 


한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터키 국가대표 코칭스태프가 언론과 팬들의 무관심에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기까지 했 
다. 
터키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평가전 당일 대부분 사람들이 TV로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일찍 귀가한 탓에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주요 시내가 마치 한산했다고 한다. 
이튿날 주요 일간지들은 평가전 결과를 1면에 보도할 만큼 비중을 뒀고 
터키 국민 대부분이 한국팀의 높은 기량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대사관은 터키에서 월드컵의 열기를 지피고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지난 25일 이스탄불에서 `월드컵기념 한국 전통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희철 서기관은 
"당일 객석을 가득 메운 터키 사람들이 사물놀이와 전통 춤 등에 매료됐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도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인명피해를 본 터키는 
한국과 피로 맺어진 우방이어서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국민 대부분이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는 상태. 
때문에 대사관측은 월드컵 본선에서 터키를 응원하기 위해 
인터넷(cafe.daum.net)에 `터키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홈페이지를 개 
설했다. 


27일 한국과 평가전을 가진 터키는 우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나라다. 
6ㆍ25 전쟁 당시 한국을 돕겠다고 1만4936명의 병력을 파견한 우리의 혈맹이다. 
어찌 보면 오늘날 우리가 월드컵 개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혈맹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터키가 당시 참전을 결정하고 병력을 모집한 과정의 얘기는 참으로 감동적이 
다. 
당초 터키는 한국전쟁에 5000명 정도의 병력을 보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모병결과 1만5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자원을 했다고 한다. 
상당수 자원자들이 동양의 자그마한 나라가 전쟁으로 공산화될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 
를 듣고 
너도 나도 `한국행`을 자원했다는 것이다.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생존해 있는 터키의 참전용사나 
그들의 후손들은 이름 앞에 `코넬리(한국인)`라는 표기를 하고 있단다. 
우리는 이러한 터키인들의 `한국사랑`을 모른 채 
그저 우리가 잘나서 이 만큼의 부를 누리고 산다고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스포츠 조선에서) 


1950년 한국전쟁 때 터키는 1만5,000여명의 병력을 보내 우리나라를 도왔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이었고, 전사자만도 1,000명이 넘었다. 
50대 이상 장ㆍ노년 세대는 `토이기 병사`라는 말이 귀에 익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터키에 이 은혜를 갚지 못했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정부가 감사의 뜻을 표한 일이 없다. 
유럽이나 중동지역을 무수히 드나든 대통령이나 총리 외무장관 등이 
중도에 한번쯤 들러 볼만도 한데…. 


■ 1999년 8월 터키 대지진으로 수만 명이 죽고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정부는 
7만 달러를 재난 복구 지원금 조로 보냈다. 
이 돈을 받아 든 현지 공관장은 얼굴이 뜨거워 터키정부에 전달하지 못했다 한다. 
넌지시 알아보니 가난한 방글라데시도 10만 달러를 보내 왔더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부끄러워 한 정신과 의사 등이 중심이 되어 모금한 100만 달러가 
도착한 뒤에야 정부 지원금과 함께 전달해 겨우 체면을 차렸다. 
7만 달러면 돈 얻으러 오는 가난한 나라 정상들에게 주는 용돈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보다 적은 돈을 6ㆍ25 참전국에 원조금으로 보내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으니 이런 망신이 없다. 
당국자들은 예산사정 타령이지만, 그 항목을 늘리자는 목소리는 그 뒤에도 들어본 일 
이 없다.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성 지역사업 예산 한 항목만 줄여도 그런 망신은 면했을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나라의 국민이 외국에 그런 대접을 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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