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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투신했다.
게시물ID : readers_231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맛사
추천 : 7
조회수 : 42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12 23: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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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자작 단편 소설입니다. 사실 소설 자체는 [희철][지영] 얘기가 나오기 전에 썼던 물건인데...오유에 올리는 김에 이름 좀 빌리기로...헤헷...(코쓱)
길지 않은 내용입니다만 재밌게 읽어주세용.



   *  *  *


 지영은 투신했다.

 

 지영이 뛰어내린 곳은 삼십 이 층짜리 빌딩의 옥상이었다. 옥상에는 그 흔한 펜스 하나조차 쳐있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곤 가슴께나 오는 난간이 전부였다. 지영은 홀린 듯 걸어 난간으로 향했다. 그것은 난간이 아니라 문턱이었다. 지영은 신발을 벗었다. 두 손을 짚어 문턱 위에 올라섰다. 난간 위에서는 바람이 불었다. 머리칼이 바람에 덜미를 잡혀 이리저리 흩날렸다. 지영은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미련도 망설임도 없는 걸음이었다. 두 걸음 만에 난간은 끝이 났다. 허공을 향해 딛은 세 번째 걸음은 길었다. 지금껏 살아온 그녀의 인생만큼.

 

 풍경은 빠르게 모습을 바꿨다. 지평선이 순식간에 솟구쳤다. 아래는 위가 되고 위는 아래가 되었다. 바람이 몸을 퍼 올리듯 아래서부터 불어쳤다. 곧 지영은 자신이 떨어지는지 솟아오르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허깨비 같은 잔상이 아른거리며 풍경을 흩뜨렸다. 몸이 바람을 따라 멋대로 나부꼈다. 빠르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 이 것이었을까요? 이 걸 위해서 저는 살아왔던 걸까요? 멋대로 나온 질문에 멋대로 나온 대답이 따라붙었다. 아니.

 

 지영은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안으로 지영의 인생이 흐른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별 볼일 없는 인생이다. 그 흔한 첫사랑도 없었다. 그 흔한 연인도 없었다. 웃음도 없고 눈물도 없었다. 건조하다. 언제였을까, 마지막으로 웃었던 것은. 머릿속의 영사기는 대답을 찾듯 기억을 훑어나갔다. 몇 번이고 인생을 되새김질하던 영사기는 톱니바퀴가 빠진 기계처럼 부서졌다. 지영은 웃었다. 변변찮은 추억 하나 없는 인생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지영은 있지도 않은 추억을 찾는 대신 기억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부서진 영사기에서 하나의 기억이 흘러나왔다.

 

 "죽고 싶어요." 지영은 말했다. 수화기 너머의 상담원이 대답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 말에 목구멍 안의 응어리가 모양을 갖지도 못한 채 한숨으로 흩어져 나왔다. 상담원은 잠시 기다렸다가 말했다. "혹시 이전에 자살을 시도하신 적은 있으세요?" 지영은 대답했다. “아뇨. 그냥……너무 힘들어요."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아까 내뱉은 한숨에 단어들을 모조리 빼앗긴 것만 같았다.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그럼 혹시,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거죠?" 상담원이 걱정스레 물었다. "없어요. 그런데……." 지영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공허한 공기를 삼켰다. 뜨거운 돌덩이가 목에 콱 들어찬 기분이었다. 입술이 말을 빚어내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 움찔댔다. 지영은 전화기를 붙들고 소리 없는 말을 토해냈다. 한참동안 기다린 후 상담원은 말했다. "죽지 말아 주세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지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상담원은 계속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지영은 입술을 꾹 닫았다. 목 언저리가 물에 잠기는 것 같았다. "말할 수 있게 되면 그 때 말 해 주셔도 돼요. 계속 기다릴게요." 순간 지영은 갑자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리고 지영은 전화를 끊었다옥상에 올라가기 불과 한 시간 전의 일이다.

 

 또렷한 기억이 머리를 채우자 지영은 상담원이 걱정되었다. 나를 살리는 것이 그 사람의 일이었을 텐데. 지영은 미안함을 느꼈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말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지영은 돌아갈 수 없다.

 상담원에게 전화를 했던 그 때,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단어를 고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지영은 자신을 말할 수 없었다. 상대방이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짧은 통화동안, 지영은 자신이 영영 타인을 믿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상담원의 잘못이 아니다. 때문에 지영은 미안함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피차 뛰어내릴 거였다면 애초부터 전화 따위 하지 말고 뛰어내릴 것을. 그렇다면 상담원도 무의미한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뛰어내리기 전에 다시 한 번만 전화를 걸어볼 걸. 기다리지 말라고 말해볼 걸. 이렇게 빨리 뛰어내리지 말 걸.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서야 지영은 자신이 후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은 후회였다.

 

 지영은 감았던 눈을 떴다.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긴 꿈같던 기억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멀어지고 희미한 목소리가 울렸다. '죽지 말아 주세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지영의 눈에서 눈물이 배어나왔다. '말할 수 있게 되면 그 때 말 해 주셔도 돼요. 기다릴게요.' 눈물이 얼굴을 거꾸로 타고 오른다. 이것이 현실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그 순간, 흐려진 시야 사이로 허깨비 같은 노란 빛이 나타났다. 지영은 고개를 흔들고서 그 빛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노란 빛은 거대한 트램폴린이었다. 트램폴린? 주위로는 주황 옷을 입은 구급대원들과 사람들도 보였다. 노심초사하며 올려다보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 상담원도 있었다. 구급차도 있었다. 누군가가 구급대원을 부른 것이다지영은 기뻐했다. 엄마, 저는 살 수 있는 걸까요?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걸까요? 멋대로 나온 질문에 멋대로 나온 대답이 따라붙었다. 아니.

 

 허깨비는 허깨비였다. 노란 빛은 거짓말처럼 걷어나고 아스팔트 바닥이 닥쳐들었다. 그리하여 지영은 검은 아스팔트 위에 으깨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영은 투신했고, 아래로 떨어졌고, 바닥에 부딪혔다.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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