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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주의]심야 시간대 코미디 프로그램의 시작
게시물ID : star_2318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돌이네
추천 : 6
조회수 : 226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6/08 00:36:45


불혹 즈음의 그림쟁이입니다.

직업 특성상 밤늦게 외로이 작업을 하면서 무심코 티비를 켜놓을 때가 많은데,

방송 3사의 토크쇼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간간히 밤 늦게 하는 개콘이나 웃찾사, 코빠와 같은 개그 프로그램들이 많은 위안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코미디와 개그를 사랑해요. 항상 국민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코미디언과 개그맨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지금이야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심야시간대에 편성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이 프로그램들을 볼 때마다 아직도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뭐가 신기하냐구요?

코미디나 개그 프로그램이 밤 10시 이후에 방영한다는 사실이요.


지금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 어리둥절한 분들도 많으실 것 같은데,

한참 '유머1번지'나 '쇼비디오 자키', '일요일밤의 대행진', '웃으면 복이와요'같은 정통 콩트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80년대 후반만 해도

이 프로그램들이 모두 일일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인 8시 이전에 모두 끝나버렸었거든요.

MBC와 KBS의 9시 뉴스가 끝나고 나면, 웃음기라고는 없는 미니시리즈나 딱딱한 시사프로그램이 이어졌죠.

그리고 딱 자정이 되면 애국가와 함께 방송 3사(MBC.KBS,EBS)는 화면조정시간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적응 안되는 일이지만, 그 때는 시대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민간 통제에 민감하던 군인출신 대통령들이 주무르던 대한민국이어서 그랬는지, 밤늦게 웃고 떠들면 혼나는 시절이었어요.

그런 딱딱한 방송 분위기는 제 기억에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밤 9시 뉴스가 끝나고 슬그머니 코미디와 토크쇼 프로그램들이 하나 둘 편성되기 시작하죠.

국민들은 9시 뉴스가 끝난 다음에도 '테레비'를 보며 웃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비로소 우리 손으로 이뤄낸 민주화, 방송 선진화의 결과였을까요?


그럴 수도 있죠. 분명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 기억엔 직접적으로 그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어떤 한 사람의 외침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故 김형곤님.

사진1.jpg



MBC의 '뽀식이' 이용식씨와 함께 양 방송사의 대표적인 뚱보 캐릭터 코미디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의 코너를 통해 '무려'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사코미디를 시도했던 이 뚱뚱한 코미디언은

이전까지 권력의 칼날을 피해 바보연기와 슬랩스틱이 만연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코미디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가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한국 코미디의 다양화 외에도 2006년 갑자기 운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펼쳤던 그의 업적 중 가장 큰 것은 '심야시간대 코미디 프로 편성'을 이뤄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했죠.


"전 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유였습니다. 전 아직도 그의 탱글탱글한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살기 힘든 세상, 삶에 치여서 지친 표정으로 잠드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잠들도록 놔둬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신념, 사명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프로의식으로 똘똘 뭉친 전문인이었지요.


어쩌면, 일개 코미디언이 혼자 이뤄낸 결과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요.

하지만 어떤 커다란 결과든 작은 시작은 분명히 있죠.

전 그 시작이 이 한 사람의 코미디언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이 꼭 세상을 다 바꿔야 할 필요는 없지요.

자신이 속한 환경부터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각자의 환경이 하나 둘 씩 바뀌다 보면 결국 세상도 바뀌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바뀐 세상은 어느 덧 아주 당연한 일상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죠ㅎㅎ  


(물론, 앞서도 말했듯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이 소위 황금시간대가 아닌 심야시간대 편성이 시청률의 저하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안타깝고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김형곤씨라도 차마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코미디 심야시간대 편성을 주창하진 않았겠지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과론이 아닌, 신념에 찬 한 사람에 의한 '변화'에 관한 것입니다.)


늦은 밤, 멍하니 개그 버라이어티 쇼를 틀어놓고 한 위대한 코미디언을 추억합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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