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지방에서 오셨는지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던 두분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터미널이라 휴가나온 군인들이 많이 지나다녔는데 그런 군인들의 모습을 보시더니 본인들의
군생활 얘기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나또한 그분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역시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똑같은건지 서로 군생활할때의 고충으로 열변을 토하시던 아저씨들의
대화주제는 어느덧 요즘군대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나가던 군인들의 모습들을 보고서는
"역시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으야~ 우리땨먄 혀도 죄다 꾸질꾸질한 깨구리였는디 옷도 좋아버린게~"
"그라제~ 아주 삐까뻔쩍 해부러~ 그냥 입고 돌아다녀도 되겄어."
"그려~ 저 봐봐. 저 모자도 요번에 다 중절모로 바뀐겨~"
"긍게~ 중절모로 바뀌니까 아따 미군같고 멋있네잉~"
한참을 집중하던 나는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응? 중절모? 신사들이 쓴다는 그거?
베레모아니었나?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걸 겨우 틀어막았지만 아저씨들은 본인들의 대화에
이상한 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내 머리속에서 멋쟁이 노신사들이 군복을 입고 중절모를 쓴 채 점호를 받는 모습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소대장 아침부터 구보라니. 자네 너무 무례한거 아닌가? 그런것 보단 오늘 아침 메뉴나 말해보게.'
'국이 좀 싱겁군. 취사병 자네 이것밖에 안되나?'
'오늘 후식은 우유대신 다른걸로 부탁하고 싶군. 난 얼그레이로.'
이런 쓸데없는 상상들이 내 머리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했고 난 혼자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들은 날 이상한 눈으로 보더니 자리를 피해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아저씨들의 대화에 너무 집중한 덕분에 나는 집에가는 버스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사병들 모자를 중절모로 바꾸자고 국방부에 꼭 한번 건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