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미술을 해보겠다고 학원을 다닌지 1년도 채 되지않은 나... 처음 생각과는 달리 실력은 그리 빨리 늘지 않았다. 공부와 그림을 병행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라고 예상은 했지만 짧게는 몇년, 길게는 십년가까이... 그림으로, 조형으로, 디자인으로... 미대를 가겠다는 친구들과 경쟁하기는 너무나 힘들것이 뻔했다. 남들보다 두배, 아니 수십배는 노력해야 그 공들인 시간을 쫒아가기라도 할 것이다. 매일 늦게까지 남아 그리고 또 그렸다. 될 때까지 그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늦은시간 달빛이 들어오는 실기실은 푸른달빛과 가로등의 노을섞인 노란빛이 석고상이라 불리우는 피사체를 조금 무섭게 보이게한다. 내가 이동하는데로 따라 움직이는 눈빛들...비웃는 듯한 미소들...낮에보면 별것 아닌 피사체일 뿐이지만 밤의 조명앞에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듯 보였다.
아 이런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그리자. 그리고 또 그리자.
마음을 다잡고 오른손에 다시 연필을 쥔다. 몇시쯤이나 됐을까... 벌써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이제 학원을 비워줘야할 시간... 마음같아선 밤새 그리고 싶지만 12시가되면 경비시스템이 작동돼서 그 안에 학원을 비워줘야한다.
영선(가명)아 이제 가자. 함께남아 그림을 그리던 친구를 불렀다.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옆방에서 포스터를 그리고 있던친구를 찾아 옆방에갔지만 친구는 없었다. 아마도 불을 켜지않고있어 내가 간줄 알았나보다.
말도없이 먼저가다니 나쁜기지배.
혼자라고 생각하니 실기실의 어둠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아...그러고보니...열쇠를 영선이가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하지... 학원문 잠가야 하는데... 그러다 문득 얼마전 학원쌤이 열쇠를 안 맞기고가서 영선이가 안쪽에서 문을잠그고 창문을통해 복도로 건너간게 생각났다. 아놔...무서운데...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열쇠없다고 학원쌤보고 이 밤에 다시 학원으로 와달라고 한다면, 내일부터 야간에남아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안에서 문을 잠그고, 창틀에 걸터앉았다. 이거 잘못하면 도둑으로 몰리는거 아닌가. ㅠㅠ 하참 힘들구나. 문득 달님을 보니 환히 날 비춰주고 있었다. 오늘따라 달이 참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복돋로 넘어가야하는걸 잠시 접어두고 한쪽다리를 걸치고 앉아 달님을 쳐다보았다. 소원을빌어보자. 그래 대학에 꼭 붙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보자. 달님, 제가 XX대학에 붙어 무대미술을 배울 수 있게 해주세요. 지금보다 더 많이 노력할께요.
순간. 난 허공에 떠있었다. 어? 단지 그뿐이다. 왜인지. 무엇떄문인지, 아차 할 순간도 없이 난 그대로 떨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아...너무 아팟다. 신음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아프다는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 119에 신고를 했는지 싸이렌 소리와함께 구급대원이 왔다. 구급대원은 나에게 계속 말을 시켰다.
집은 어디니? DD 구 ㅇㅇ 동 ㅁㅁ 번지요. 전화번호는 어떻게 돼니? 000-0000 요. 어쩌다가 그랬니? 창틀에 앉아있다가요. 어디가 아프니? 이마, 팔꿈치, 왼쪽발이요. 친구는 어딨니? 읭? 친구요? 저 혼자 있었는데요. 친구가 떨어졌다고 신고가 와서 출동했단다.
4개월간 병원에 입원해있는동안 영선이는 한번도 문병을 오지 않았다. 15년이 지난 지금 묻는다. 영선아 왜그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