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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의 컬러 사진들
게시물ID : humorbest_2325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D-VIRUS
추천 : 110
조회수 : 5423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5/11 03:15:56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5/11 01:35:05



인민군 포로들의 숙소.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춘몽이었을까
?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흡사 무슨 공장을 연상케 한다.
수만 명의 포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




여유를 되ㅊㅏㅊ은 인민군 여자 포로가 미소를 짖고 있다




아직도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민군 포로.
탁발승처럼 모포를 가슴에 두른 것이 인상적이다.



수용소 연병장에 모여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포로들.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
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칼 등을 들고 있다.




가슴에 태극기와 양 팔뚝에 멸공,애국 이라는 글씨를 새긴 반공 포로.
밤마다 親共(친공)포로와 反共(반공)포로들의 살육전에

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나고,
운이 다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돌아갔다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한 지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포로수용소 내에서 친공 포로들이 제작해 걸어 놓은 선동 포스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6.25 직후 사진

.. 이 사진들은 알바니아 태생으로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한국전쟁을 취재한 미국의
저명한 사진가 디미트리 보리아(1902~1990)가 駐日 美극동사령부 사진반에서 일할때
한반도 각지를 돌며 촬영한 것입니다.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잡초보다 모질 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 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마음씨 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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