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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15분
게시물ID : art_23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8비트
추천 : 1
조회수 : 50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12/26 19:35:47
방이 너무 더워서, 민준은 창문을 열었다. 티비에서 오늘 황사가 분다고 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집안이 더운 공기로 가득했고, 그는 더위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무엇보다 지금 방안을 채우고 있는 기운을 바꾸고 싶었다. 그 기운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쉬우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말한다면 스스로가 초라해질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방안에 들어온 북풍이 바라보고 있었다. 북풍은 광활한 대륙에서부터 남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방으로 잠시 들어왔다. 북풍은 자신에게 붙어있던 먼지를 그의 방안에 제멋대로 털어버리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여느 다른 집을 들렸을 때처럼, 방을 둘러보았다. 책상 한쪽으로는 컴퓨터가, 책상의 끝에는 작은 책장이 벽에 붙어 있었다. 옷가지가 두서없이 의자와 침대에 널려있어서, 그의 방이 더 좁아보였다. 북풍은 방의 주인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세밀하게 바라보았다. 민준은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는 헛웃음 지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지독하게 외로운 모양이야' 민준은 그 생각을 떠올리고는 이내 후회하였다. 언제나 그 생각에 그는 괴로웠다. 세상과 유리된 감각, 혼자라는 것,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지만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외로움도 담담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외로움에 몸서리쳤다. 여태껏 가지지 못했던 감정과 변화된 자신에 대한 생각이 그를 괴롭게 했다. 민준은 핸드폰을 열어서 지난 문자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그녀가 보낸 문자였다. 그는 그녀에게서 온 문자를 따로 모아두었다. 그녀의 문자를 읽고 또 다시 읽었다. 문자를 다 읽고 나서도 그의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채워지지 못하고 마음의 조각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북풍은 그의 어깨너머에서 그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같은 번호의 메시지로 차 있었다. 여느 연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말들이었다. 북풍은 그 메시지들이 가끔씩 공원 의자에 앉아 속삭이는 남녀의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면 두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기에 그는 민준이 이해가지 않았다. 북풍은 다시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가에서는 민준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겨우 씻어낸 몸이 더러워지는 게 싫었던 북풍은, 그가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민준은 담배를 다 피우고 닫았다. 나갈 갈이 막히게 된 북풍은, 별수 없이 민준의 방에 당분간 남기로 했다. 오후 4시 36분이 되면 어김없이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민준은 조금이라도 늦으면 메세지가 사라지기라도 하듯 달려와서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4시 51분이 되면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북풍이 그동안 민준의 방에서 머무르며 알아낸 사실이었다. 매일 4시 36분에 같은 사람에게서 문자가 온다. 때로는 민준이 먼저 보내기도 하는것 같다. 북풍은 잘 몰랐지만 사실은 민준이 먼저 그녀에게 보낸다. 그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먼저 보내게 된다.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 참지 못한다. 간혹은 그것이 성공할 뻔 했지만 4시 37분이 되면 그는 극도로 불안해하며 38분이 되면 그는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그녀는 답은 평상시와 똑같다. 사랑에도 엄연히 약자가 존재한다. 더 많이 사랑하고 먼저 빠지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연애로 불러야 할까? 이런 의문과 하루의 15분을 1초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를 그렇게 만든다. 민준은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준은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목소리가 듣고 싶네" 북풍은 전화기를 든 민준과 마주섰다.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간 많은 곳을 다닌 북풍은 그 목소리가 여름을 몰아내는 가을비처럼 느껴졌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 방의 주인을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얼마든지 민준의 방을 나갈 수 있었지만 북풍은 그러지 않았다. 저 남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주인공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아마도 방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하필이면 4시 36분에서 51분 사이야?" 민준은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 그녀가 사귀자고 했을 때, 그는 교통사고가 난 듯 놀랐다. 이어서 그녀는 '하루에 15분만 사귀자'고 말했다. 그는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그렇기에 그 15분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그의 하루가 그 15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생활은 15분의 대화를 위한 주제를 찾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그녀와의 15분이 가장 소중하며, 그 15분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왜 그런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는 2시가 지나면 힐끔힐끔 시계를 보기 시작했고, 3시가 넘어가면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4시가 되면 시간이 멈췄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는지 확인 하곤 했다. 그러나 심장에 손을 올릴 필요는 없었다. 시계 바늘이 4시를 통과하면 그의 심장은 이미 초침보다 두 배는 빠르게 뛰곤 했다. 그저 재미로 시작한 일이기에, 그는 자신의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가장 나른한 시간이니까 누군가가 그리운 시간이기도 하고" 그녀의 말을 민준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저 그녀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존재라는 사실은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기에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누구나가 그런 존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위해 무엇을 혹은 누군가를 이용한다. 이용당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그는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절대로 해피앤딩이 될 수 없다.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한다. 이어질 이야기에서 자신은 지금보다 더하게 만신창이가 될지 다. 그렇기에 지금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었다. "이제 그만두자" "시시해졌어? 그럼 그러지 뭐 난 재미있었는데" "그래 시시해졌어" "알았어" 민준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핸드폰은 이미 통화는 끊어졌다. 북풍은 조용히 그의 방을 나갔다. 오래간만에 하늘을 날자, 기분이 좋았다. 방안에서는 민준이 꺼진 전화기에 대고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지만, 북풍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남으로 날아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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