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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향긋한 스무살의 붉은 장미는 없지만
게시물ID : gomin_2328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화백자
추천 : 0
조회수 : 51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11/10 04:44:36

의지박약에 머저리나 다름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행복해!'
라고 느끼는 것을 부정하고 
'난 죽지도 못하는 쓰레기, 그렇게 살아가는 머저리'
라는 사실을 어떤 일에 대입해 가며 살았던 때였죠.

바로 스무살 때.

나는 뭔가 다르다, 남들과는 다르다고 믿었습니다.
없어져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주민등록증을 분실하면 그 누구도 나를 모를.
나 자신도 나를 부정하고 싶은.
잃을 것도 없었고, 아무래도 좋은 삶을 살 때였죠.
어떻게 망가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때 어린 남자를 하나 만났습니다.
담배를 피우게 만들어 준 [생명의 은인]이죠. 
그 개자식이 문득 생각나는군요.

그 개자식을 만난 암캐인 제게 그 개자식이 담배를 물리려고 꺼낸 이야기를 각색해서 전합니다.

 한 연인이 있더랍니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남자가 주머니에서 미스 시가렛을 꺼내더랍니다.
여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 더러운 입술로 하이얀 피부에 앙큼하게 문신을 한 미스 시가렛을 
거침없이 탐하더랍니다.
"오빠 그러지 마..."
여자의 만류가 그에게는 흥분제라도 되었던지, 
그는 서둘러 그의 무자비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허리띠를 푼 게 아니라
주머니에서 불씨를 꺼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미스 시가렛에게 화장이라는 끔찍한 사형을 명하더랍니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타오르는 그녀를 싸이코패스처럼 능욕하는 동안 여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죠.
남자가 미스 시가렛의 영혼을 뿜어내며 광기어린 눈동자로 여자를 노려보곤 입을 열었습니다.

"날 사랑한다면 너의 목숨도 이 여자처럼 줘."

울상짖던 여자의 구슬같은 눈동자에서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가녀린 손가락이, 서서히, 불에 타들어가며 절규하는 미스 시가렛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암울하고 참담하며 비참하고 끔찍한 혐오스러운 일생을 빨리 끝내주었답니다.
연인이 쿨럭거리며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던 남자는 연인의 손에서 그녀를 나꿔채서
바닥에 거칠게 던지고 어리석은 짐승에게 농락당해 비참한 꼴이 된 그녀를 
발로 짓밟고 으깨어 완전히 숨통을 끊은 뒤,
여자의 허리를 감싸고 격하게 키스를 하더랍니다.

"내 꿈이 담배맛 나는 키스를 해 보는 거였다. 니가 내 꿈을 이뤄줬다."


끝.

"나도 담배맛 나는 키스 해 보고 싶다."
그 개자식은 그랬고, 저는 못할 거 없지. 했더랬지요.



으레 말하는 거 있잖아요, 왜.

"욕하는 여자 싫어."라며 여자를 질책하는 애인 때문에 욕을 그만두게 됐다는 여자처럼
"담배 피는 여자 섹시해"라며 제게 담배를 권한 애인 때문에 담배를 피우게 된 거였죠.

전 그 전까지는 담배 자체를 혐오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뭐라하든 제 스무살은 제 인생의 바닥을 때린 순간이었고 
전 제 자존심을 그 머저리같은 제의에 순순히 포기할 수 있었죠.
아직도 말붜뤄 뤠드 한 모금에 비틀대다 바닥에 토한 게 생각나네요.

 나이도 어린 놈한테 구타도 당했습니다.
어릴 때 부터 맞는 데에는 익숙해서 애인한테 맞아서 귀가 먹먹해지고 코피가 터지고
멍이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무섭지는 않았어요. 다만 제가 비참하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죠.
전 맞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사람을 때리거나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비 오는 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신촌에서 뺨을 맞고 입속이 터지던 순간.
장대비가 어깨를 때리고 두드려 부수고 쪼개던 그 순간.
제 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저를 사랑하는 제가
고개를 들고 나타나더군요.

그리고 얼마 후 전 그 후레자식의 귀쌰대기를 까고 무릎으로 계란을 찍어 올리고
헤어졌습니다.


그 뒤로도 오랜시간 후유증이 계속 되긴 했습니다만
저를 사랑하는 제 자신의 오른손을 제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암담했던 스무살의 기억.
이제 그 불쌍하고 가녀린 저를 안아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생각하려는데 저를 저주하고 비난하고 괴롭히는 또 다른 제가 그걸 자꾸 막아서네요.
그리고 저를 보면서 소리 칩니다.

"쓰레기"


친구가 그러더군요.
태어나길 수건이나 예쁜 옷으로 태어났어도
걸레가 되면 걸레일 뿐이라고.

그게 제 인생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도 그 말을 인용해서 제가 저를 괴롭히네요.
그리고 과거는 흘러간 것이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임에도
미래로 휘말려 들어가서 현실의 저에게 자꾸만 부딪쳐 오네요.
부모님이 주신 튼튼한 뼈와 균형잡힌 하반신 덕분에 균형을 잡아내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그 미래류에 탑승한 과거가 점점 거세지네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아직 스무살이 안 된 분들... 
여러분의 스무살은 산뜻한 붉은 장미이길 바란다는 겁니다.



전 서른살로 미룰래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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