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주방용 전기제품 A/S 하는 일이라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제대로 참석한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긴 해도 서울 쪽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다음날 아침에 회사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반드시 참석했죠. 뭐 요새는 서울 갈 일이 별로 없어서 천안역 앞 집회라도 간혹 이나마 참석합니다. 준비된 피켓도 없었고, 성격 자체가 워낙 소극적인지라 대놓고 목소리도 못 내지르고 뛰어 다니지도 않고 단지 사람들 모여 앉아있는데서 같이 구호나 맞춰 주는게 전부였을 뿐입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지쳐갑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요새 회사에 일이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나가도 제 시간에 회사에 도착하는 때가 거의 없습니다.
보통 때는 하루에 한 예닐곱 군데 처리하면 끝날 일이 거의 두배는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오늘도 너무 피곤해서 고속도로 위에서 졸음운전 하다가 몇 번은 사고낼 뻔 한 것 같습니다. 그냥 지금 숨 쉬고 기숙사 방에서 이불 위에 주저 앉아 글 써재끼고 있으니 살아있는 갑죠.
이런 상황에서 저녁 늦게까지 촛불집회 참석한다고 차가운 길거리에 궁뎅이 붙이고 앉아 있는거 솔직히 너무 힘듭니다.
나 하나 빠진다고 해서 뭐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좋게 회사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그냥 제 할 일만 제대로 알아서 하면 될 듯 하기도 합니다.
근데 말입니다.
두렵습니다.
지금 저같은 이런 생각 가지고 사람들 하나 하나 전부 빠져 나가면 말입니다. 저 쥐새끼 같은 분들 얼씨구나 좋다고 마음대로 해쳐먹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적어도 전 제 자식새끼 한테만은 지금 이런 나라는 보여주고 싶지가 않습니다. 아직 결혼도 안했고 결혼할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앞 날... 적어도 날지 안날지도 모르는 자식새끼 한테만은 이런 꼴 보여주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또 이런 꼴 계속 보며 늙어가다 '저 새끼들은 아직도 저 지랄이냐?' 라며 혀차다 숨 넘기기도 싫습니다.
여러분 모두 마찬가지겠죠.
하루하루 사는데 치이다 보면 너무 힘들고 괴롭고 피곤하고 성질 나빠지는게 몸으로 느껴지는거...
잘 압니다.
그런데도 하루하루 피곤에 찌든 몸 끌고 와서 이 망할 대한민국 좀 살려 보자고 제발 좀 나라 제대로 굴려가 보자고 모여서 날 밤 새서 자리 지키고 있는거...
너무 힘든거 잘 압니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납니다.
그냥 화가 납니다.
대놓고 말해서 그냥 이 짓거리 내일 당장이라도 끝내고 싶습니다.
근데 그게 안되는 군요.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얼른 이 짓거리 빨리 끝내게 머릿수라도 채우자고 참석하는 수 밖에요.
그렇다고 뻔히 제정신이 아닌 짓거린줄 아는데 그냥 윗대가리들 하는 일 알아서 잘 하겠지라며 냅두고 제 할 일만 하고 앉아 있을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