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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병도 옹호자들
게시물ID : history_234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aram1111
추천 : 7/15
조회수 : 601회
댓글수 : 23개
등록시간 : 2015/10/02 12:52:17
          
 
19193.1 운동이후, 한민족의 저력에 긴장한 일본 제국주의는
민족정기 말살을 위한 방법으로 조선사편수회를 기획합니다.
 
그리고 19258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는데,
조선사편수회의 회장은 당시 일제 권력의 2인자였던 정무총감이었고,
경찰을 비롯한 관공서에 협조를 명령했습니다.
 
조선사편수회가 가지는 특이한 편제는,
수사관과 수사관보라는 직책입니다.
학술연구에 걸맞지 않은 이 편제는 강제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제 수색과 압수로
한민족의 고문서와 기록들을 수탈합니다.
당시 3명의 수사관과 4명의 수사관보가 있었는데,
이병도는 4명 중의 하나인 편찬관련 수사관보였습니다.
 
그들은 강제 수탈한 문서와 기록 중, 한민족을 고양하는 내용이나.
자신들의 역사왜곡에 걸림돌이 되는 기록들을 무단파기 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 그들의 입맛에 맞는 고문서, 61,469,
고기록 3,576 점이 남겨졌는데, 조선사편수회가 말살한
문서와 기록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잔존수량의 3배 이상인,
20만권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초기, 21개월간 수사관보를 지낸 이병도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조선사편찬회가 추진하던 식민사관 형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역사기술적인 면을 보면, 이병도는 직책상 누구보다도 많은 한국 고대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왕검 BC 2,333년을 BC 1,000으로 축소 시켰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명시된 초기 기록을 한국에서 교차기록이 없다하여 불신하고, 중국과 일본의 것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습니다.
 
그 결과, 온조가 마한을 정벌했음에도, 그 것을 부정하여, 임라일보부설을 뒷받침 했습니다. 백제의 국력을 낮잡아보고 풍납토성의 중요성을 무시해, 결국 아파트 공사에 수많은 유물이 훼손되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식민사학은 규정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핵심적인 것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기위해, 한민족의 역사를 낮잡아보고, 한민족의 영토를 축소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병도는 바로 이런 활동을 했던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병도가 식민사학자라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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