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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법소녀 카나
게시물ID : animation_234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림자문
추천 : 2
조회수 : 26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02 15:41:18
마법소녀 카나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초 겨울의 늦은 시각에 어울리지 않는, 마치 신기루와도 같은 모습으로.
하지만 그녀에게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거대한 인간 시루같은 홍대 거리건만, 눈에 띄지 않을래야 띄지 않을 수 없는 트윈테일의 머리칼에 고귀함 마저 느껴지는 털 케이프를 두른 그녀는 말그대로 환영처럼 홀로 그렇게 서있었다.
" 이제 곧..."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난잡하게 울리고 있던 공기를 마비시켰다. 침묵, 시커먼 밤 하늘과 마찬가지로 모든 소리가 정지했다.
그리고 소리는 움직임을, 움직임은 시간을, 시간은 현실을 붙잡아간다.
굉음이 울려퍼지며 태산 만한 검은 그림자가 우뚝 솓아난 것은 금발의 소녀가 허공에서 별 모양의 지팡이를 꺼낸 것과 동시였다.
소녀는 빛과 함께 나타난 지팡이를 하늘 위로 치켜 올렸다. 흡사 운석처럼 낙하하는 검은 그림자의 일격이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 막혀 저지 당했다.
"스타 더스트..."
지팡이의 별 문양이 소녀의 목소리에 반응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별모양의 가루가 시간을 잃은 인파로 퍼져가는 동안 그림자의 공격이 거세졌다. 양팔을 이용해 더욱 세차게 몰아치는 공격에 허공에는 불길한 어둠의 금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듯 그림자는 끔찍한 소리로 포효했다.
"무진장 시끄럽다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소녀는 눈썹을 찌푸릴 뿐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높게 치켜 올린 지팡이의 빛나는 별, 허공의 어둠의 금, 그 둘의 의미를 전부 알고 있는 소녀는 단지 짧은 영창 끝을 이어갈 뿐이다.
소녀의 입이 움직임과 동시에 거리의 수많은 인파가 밝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수백의 사람들이 온몸으로 빛나는 거리는 그 누군가가 본다한들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것은 거대하고도 불길하고도 검은 그림자의 괴물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그 기이한 광경에서 태연히 본분을 다 하는 것은 별의 지팡이의 주인인 소녀, 하나 뿐이었다.
"익스플로젼!"
영창의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명령의 단어를 외치며 소녀는 하늘을 향한 지팡이를 정면으로 가리켰다. 그 행동과 동시에 그동안 밝게 빛나고 있던 인파의 등불이 반응했다.
사람들은 그 의미 그대로 폭발했다.
어른도, 어린이도, 노인도.
남자고, 여자고, 중성이고.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흑인이든.
머리 하나와 몸통 하나, 팔 두개와 다리 두개가 있는 형상의 생물체는 모두 폭발했다.
새하얀 빛이 멈춰버린 홍대를 엄청난 기세로 집어삼켰다. 그 중심에 있는 소녀도, 검은 그림자도 탐욕스럽게 덮쳐갔다. 그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처절하고도 꺼름칙한 그림자의 비명 소리 뿐. 한순간에 폭사한 수천명의 절규는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후로 빛이 사그라든 것은 수초 후의 일이었다. 강렬한 빛을 피해 눈을 감고 있던 소녀는 지팡이를 땅에 내려놓으며 피로가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한건."
경쾌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자신이 실행한 행동의 광경을 만족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바다.
흡사 붉고 흉측한 바다였다.
시간은 언젠가 다시 흐르고 있다.
전광판의 화면도 움직이고 있다.
허공에 발을 잡혀 있던 눈송이도 붉게 물들어 흩날리고 있다.
이전과 다른 것이라면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소녀 하나 뿐이라는 점과 바닥과 벽에 가득 칠해진 피와 살의 현장.
홍대 거리의 모든 인간을 폭사 시킨 소녀는 거리의 cctv를 향해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며 입을 열었다.
"세계는 마법소녀 세요가 지켜줄께!"

짧은 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상이 폐쇄회로에 잡힌 영상입니다."
검은색 슈트 차림의 남성은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보고를 마쳤다. 슈트와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칼의 사내는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갈피를 못잡고 있는 눈동자의 초점은 그의 동요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아있는 이는 더이상 그런 반응을 놓칠만큼 어리숙하지 않았다.
다리를 모으고 앉아 정자세로 자료를 보던, 10대 중반의 금발 머리 소녀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경호를 맡고 요원들의 얼굴이 굳어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필름이 끊어진 듯 한순간에 피바다로 변하는 것은 확실히 시간 결계네요. 그녀가 틀림없어요."
소녀는 자신이 판단한 사실을 서투른 표준어로 확인했다. 모처럼 서울로 이사 온 김에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귀여워 보였지만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그것을 의식하는 것은 소녀 당사자로, 말없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마법소녀의 일은 같은 마법소녀가 처리하겠습니다. 이번 일에 서포트는 필요없어요."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소녀는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털 망토를 어깨에 걸쳤다. 제자리를 찾은 갈색 망토에 대 마법 결계를 대신하는 소용돌이의 문양이 빛을 내며 세겨졌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리며 반론하려는 요원들에게 등 돌린 소녀는 단지 손을 들어 저지했다. 확고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을 가다듬은 그녀는 10대 중반의 소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장이 담긴 음성으로 다시 한번 고했다.
"마법소녀의 과오는 마법소녀가. 저 마법소녀 카나가 처리할 문제입니다."
소녀, 별 모양의 오브제가 장식 된 지팡이를 든 금발의 마법소녀는 단지 그 말을 남긴 채 사무실의 문을 열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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