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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animation_2346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VANGELION
추천 : 2
조회수 : 22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30 01:42:41


9
 그가 피그말리온 효과를 접했던 것은 초등학생 시절 읽었던 '좋은생각'이라는 잡지에서였다. 어머니가 좋아했던지라 언제나 그 잡지는 집구석 어딘가에든 존재하고 있었고, 이리저리 뒹굴면서 그는 그 잡지와 친해졌다. 아직도 그 자그마한 손수첩 같던 잡지를 그는 생각한다. 무신경한 방 안에서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4월호 2004년, 봄이 완연한 시절에 담겨있던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말리온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 없는, 아이를 다룰 때의 태도를 다룬 기사였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무생물이 생물로 살아나서 자신을 사랑해준다는 그 상황이, 어릴적 그에겐 인생의 최종 목표 같은 것이 되었다.

우습

그의 엄마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물어보는 그의 아들이 진지하게 피그말리온이 되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일반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이 굳이 그의 엄마가 저지른 잘못은 아니었다. 다만 실수였을 뿐. 고의성을 따지면 분명 그것은 그녀의 탓은 아니었으리.

스스로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좋은생각 잡지 표지의 만개한 벚꽃잎들을 그는 다시금 떠올린다. 사람의 피부에 흰물감을 덧칠한 듯한 화사한 분홍이 그에겐 너무나 사랑스러워 피그말리온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 의문에서 그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으나, 그다지 의미 있는 몸짓도, 고민도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확신을 모두 믿으리라 생각한다. 

살풍경한 가구들과 집안 속에 앉아있는 소녀를 바라본다. 질감은 플라스틱이다. 피그말리온의 피규어가 가장 합당한 작품의 이름이었다. 어찌되었던 피그말리온이 되길 바랐던 그는 피그말리온과 같은 위치에 올랐다.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조각, 인체 인형을 만드는 예술가. 작가님, 이라는 것이 그의 칭호였다. 그가 그 칭호를 마음에 들어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언제나 칼럼에 피그말리온을 썼고, 언제나 고대 그리스를 이야기하면서 신화와 역사가 뒤섞여 진실조차 알 수 없는 그 시대를 동경했다. 굳이 따진다면 눈앞의 그녀를 생각하며 아프로디테의 현신을 바랐다고 해야 옳겠다. 수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일컫어 예술의 신이었던 아폴론이라 했으나, 그는 그 거대한 신의 이름 따위는 필요없었다. 눈앞의 피규어라고 불려지는 그 모형을 살려내지도 못하고 있으면서도 감히


이라 불리는 게 스스로에게 웃기는 일이었고, 동시에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아폴론에겐 상당히 불경한 말이었겠으나, 그가 관심있던 것은 생명을 부여했던 미의 여신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매달 아름다운 소년들의 심장을 바쳤고, 박제로 만들어 전시했다. 그들은 모두 신화를 위한 제물이었고, 역사 귀퉁이에 살인마 예술가 누구누구씨의 피해자로 김모군, 이모군으로 기록될 몇 글자의 활자일 뿐이었다. 그도 그렇게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죄책감은 크게 없었다. 신화와 역사가 섞이던 시기의 인신공양은 당연한 것이었고, 예술적으로도 완결되어있던 작품이었다. 박제된 인간들을 보며 예술이라고 떠드는 수많은 세상들을 기만하는 순간은 별 감정을 보이지 않는 그가 가끔 보이는 희열이었고, 오락이었다. 죽이는 순간의 팔딱거리는 심장과 공포에 질린 소년들의 가녀린 감정보다도, 좆도 모르면서 입으로 떠들고 있는 수많은 가면들에 대한 기만에 더 큰 가치가 있었다.

서론이 너무 길고, 동화임에도 내용이 질질 늘어질 것 같아 이 이야기를 묘사하는 3류 이야기꾼은 빠르게 끝을 맺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만든 에피타이저일 뿐이다. 의미 없는 이야기이다.

결국 그는 피그말리온이 되었다. 인간의 크기로 플라스틱의 재질로 이루어진 피규어라는 존재가 드디어 그와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침대에 눕혀 함께 잠이 들던 그 순간 갑자기 깨어난 그 조각상, 또는 피규어라 불리는 그 존재. 불타는 듯한 감정과 영혼을 자제할 틈도 없이 하룻밤은 너무나 짧았고, 사랑의 움직임은 길었는데, 어쩐지 아침은 오지 않았다. 사랑의 교감 끝에 잠이 들면, 다시 밤이었고, 그들의 성적인 장난들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적어도 그는 행복했다. 그녀의 행복은 서술하는 내가 알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알 바도 아니다. 그들의 바깥은 계속 밤이었고, 끝나지 않았다.


피그말리온의 마지막 조각상,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저기 두 조각상, 참 아름다워 보이지? 유작이 명작이네, 역시"
"제목도 피그말리온이네. 조각에서 깨어나는 듯한 갈라테아랑 그 손길을 받는 피그말리온-"

뒷말은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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