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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좋게 취직했습니다! 워홀러의 기쁨
게시물ID : emigration_23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삐아
추천 : 13
조회수 : 2904회
댓글수 : 44개
등록시간 : 2016/12/19 03: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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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집안에서 나고자란 26세 여징어입니다. 이제 곧 한국나이로 27세가 되는군요 !! 

첫 직장(강남 모 방송공사) 다니면서 잦은 해외출장에 지치고 
그 와중에 협력사 이사한테 성추행당한거 문제제기한 후 계약기간 만료되서 나왔구요 
석사를 조기졸업해서 한학기 번 셈이었는데 이 기간은 여행으로 보냈습니다 (동대학 진학이고 휴학이 없었어요)
근데 몸이 그렇게 튼튼한 편은 아니라서 한번 기어나왔다가 집에와서 보급 / 회복 을 네번정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여행러의 최후가 늘 그렇듯 돈이 떨어져서 구직을 시작했습죠 
두번째 직장은 광고회사였습니다 
하필 여기서도 성희롱 일삼는 이사새끼 눈에 들어서 .... 취직했는데 
쓸데없는 일에 휘둘리고 성희롱 (첫 직장에선 하루 참았다 얘기했고 여기서는 회의하다가 당했는데 그 자리에서 문제제기함..) 한 것 때문에 
제 의사랑 상관없이 본부이동 당하고 스트레스받다가 쓰러진 후 
회사를 때려치웠습니다 ! 

막연히 해외취업 꿈꾸면서 석사 마쳤고 
이대로 해외 학교로 지원해서 석사를 한번 더 하냐 박사를 또 할거냐 (최종목적은 '취업' 이지만 한국에서 나고자라 바로 취업루트 타기 쉽나요 ㅠ) 
회사는 두번이나 때려쳤지 .. 말이좋아 직장이지 첫 직장은 프리랜서 계약 (방송사가 주로 하죠 4대보험 안들어줘도 되고 자르기 쉬우니)이었고 
두번째 직장은 시용기간 3개월 끝나갈 때쯤 본부이동을 당해서 시용기간을 또 가지던 참에 이렇게 된거라 그냥 인턴이라 보는 게 맞고 ... 
동기들은 시용기간 끝나서 정직인데 난 뭔가 싶은 것도 있고 .. 딱 정체성 고민하기 좋은 시기였습니다 

제일 큰 고민은 역시 그것이었죠 나이는 많아지고 ... 해놓은 건 없고 .. 게다가 제가 석사를 했지만 사회과학 전공입니다 ㅠ ... 기술 무 ^^.. 
해외취업 하고싶다고는 하지만 종종 .. 저를 상처입히는 아버지 말이(아버지는 종종 제게 너같은 건 사회부적응자라고 상처를 주곤 했어요) 
사실은 아닐까. 나는 어느 사회엘 가나 녹아들지 못하는 뾰족돌은 아닐까 하는 생각.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어떡하냐는 생각과 혹시 내 착각(나는 특별하다는, 난 이 사람들 아니라도 같이 일할 곳 찾을 수 있다는-)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건 아니냐는 의심이 충돌하고..자괴감이 들고 괴롭고 뭐 그런 시기(두번째 직장에서 고통받던 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평생 혼자 살아가야징! 제 성격에 뭐 첫눈에 반한 사랑 이런건 꿈도 못꾸겠고 개썅마이웨이로 평생 살겠다고 인생계획을 세워놨는데 
얘는 뭔가 다른겁니다. 저는 갖고싶은게 하나 생기면 미국 이태리 일본을 뒤져서라도 가지는 집요한 사람이라 .. 
나는 니가 좋다고 했더니 얘도 제가 좋대요. 2주 만나다 얘는 파리로 돌아가게 생겼는데 ... 딱 얘가 집에 가기 4일 전 시점에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적은 나이도 아니니 당연히 .. '얘는 프랑스에서 왔고 우린 그저 2주 만났으니 난 실컷 좋아하다가 팽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까칠하고 차갑다는 소리 듣는 제가 이렇게까지 흐물흐물 녹을만큼 좋아하게 됬는데 이 감정에 집중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제 통장에는 400여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버지께 '자 여기 사회 부적응자의 돈맛 좀 보십시오!!'하면서 등록금 빌린 것을 일시불로 갚기 위한 것이었습죠 
저는 종종 아버지와 
'여자애 공부 너무 시켰다고 내 욕하고 다니시는 건 아버지가 내 등록금을 빌려주셔서 그런겁니까 빨리는 아니어도 갚겠습니다' 
'그런거 아니다 아무튼 갚지마라' 
이런 식으로 싸우곤 했는데 ....그래서 이 400만원은 아버지가 빌려준 500만원이 될때까지 절대 손대지 않을 작정이었으나
당시 저는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어머니께 도움을 청했음

엄마도 굉장히 보수적이셔서 이게 어디 외국사람을 만나서!!!! 미쳤구나!! 몇대 맞을 각오가 되어있었는데 
생각보다 흔쾌히 '엄만 외국애도 괜찮은데 ? 보고싶으면 가야지, 돈 갚지말고 너 생활비로 써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엄마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냥 친구집에서 자고만 온다고 해도 엄청 화를 냈던 우리 정여사님이.. 

당시 쓰러지고 회사를 그만둔 후에 잠깐 건강 회복하던 시기라 출국 예상 시점까지 2달 안되는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프랑스 가서 쓸 생활비도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 제 출국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급하게 구했어요 

남은 고민은 프랑스어도 못하는 제가 파리에 가서 뭘 할 것인가 였는데... 
(저는 영/일본어밖에 못하고 프랑스어는 막연한 환상만 가질뿐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연인과 함께 학생비자냐 워홀비자냐를 고민하다가 
학생비자는 어학원 등록하기에 이미 너무 늦었고 현실적으로 .... 일단 영어 가능자 대상의 직업을 찾아보다가 
정 안되면 3달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방법을 찾자. 다만 어찌될지 모르니 워홀비자는 받아두자고 얘기가되어서 ! 

저는 프랑스어도 못하는 주제에 프랑스에서 직업을 찾아보겠다는 미친 포부를 가지고 이틀 반(반은 비자 인터뷰때문에 그 임시 일자리에서 반차냄) 
만에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비자수속을 마친 후 워홀 비자를 받습니다. 그땐 왜 그리 확신에 차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파리에 오기까지의 일들입니다. 나머지는 뭐 .. 한달 반정도 일하다가 4일만에 대충 짐싸서 파리로 왔지요... 
한달정도 남친쓰와 해후를 나누고 나서 로컬 직업을 구하던 중 프랑스 게임회사에서 한국어 가능한 스탭을 구하길래 (영어-> 한국어 번역일) 
지원을 했습니다. 처음엔 CDI 직업이라고 했고 장기로 일할 사람을 구한다고 했는데 (흑흑 엄청 설렜는데) 
아무래도 제가 워홀비자이다보니.. 면접 두번 인사부 논의 거친 후에 1월부터 10월(제 워홀비자 끝나는 날)까지 계약해서 일하는 것으로..! 
거짓말같이 취직이 되었습니다 ! 1월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어요. 

평생 혼자 제 길만 가고 저만 볼 줄 알았던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 보수적인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둘 때 결사반대 하지 않으셨던 것, 그리고 평생 참한 것을 미덕으로 삼아 제가 데이트만 해도 걱정에 잠 못 이루시던 어머니가 프랑스행에 흔쾌히 조력자가 되어주신 것, 체제비에 보탤 수 있게 한달 반동안 출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잡았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스어도 못하는 제가 프랑스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모든 게 거짓말 같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로 연결됬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다못해 그냥 미친 결정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꿈같습니다. 못내 떨리고 .. 감사만 해도 모자란 나날들인데 이제 두달 지나니깐 저는 여기에서도 손님이고, 한국 집에 가도 손님인 것 같아서 .. 그렇다면 나는 뭐지? 이런 느낌이.. 향수병이 스멀스멀 저를 노리는 시기네요 요즘 ... 너무 감사하고,... 어디에라도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뭐든지 저 혼자 하게 되어서 요리도 세탁도 청소도 혼자 사는 날들도 못내 낯설지만 거의 27살이 된 요즘에서야 진짜 제 인생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벅찹니다. 

(* 아,... 아버지께는 당연히 정교히 설계한 거짓말을 하고 왔습니다.. 제 평생 이렇게 오래 (일주일 이상) 집밖에 있었던 것은 처음이네요 아버지 죄송해요 !! 빠른 시일 내에 사회부적응자의 등록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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