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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그 때 그 시절
게시물ID : sisa_1576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깻잎.
추천 : 11
조회수 : 6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03 01:41:00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를 보고 다시 돌이켜 보는 그때 그 시절.


74년에 나왔던 긴급조치는 5년 후 박통이 죽고나서야 해제가 되었고, 무심결에 박정권을 비판하다가 잡혀 들어갔던 시민들은 징역형과 자격정지 조치로 삶이 만신창이가 되었지요.
 
지금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런 엄혹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당시 20대였던 박근혜 본인도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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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1974년 1월 8일 시행)
 
 1.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1,2,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5.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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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의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분석 보고서’는 74년 1월8일 긴급조치 제1호가 선포된 뒤 79년 12월8일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될 때까지 2159일 동안 이 나라에서 벌어진, 상상을 넘는 인권탄압의 실상을 남김 없이 보여준다.
 
1140명이 연루된 전체 사건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일반 시민이나 교사·학생·종교인 등이 술집·거리·학교·교회 등에서 당시 정권과 유신체제를 비판하다 처벌받은 게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282건 (48%)에 이르렀다.
 
비누 행상을 하던 김아무개씨는 77년 5월 동네 부녀자들에게 “이북 김일성이가 내려올텐데, 비누 한 장 팔아주면 축원을 하겠다”고 말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꼬박 살아야 했다.
 
두 달 뒤 막노동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박정희 대통령은 종신 대통령도 아닌데 주민등록법과 민방위 조직을 만들어 국민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종신 대통령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말한 죄로 징역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
 
정아무개씨는 1974년 1월 동네 이웃들에게 “삼선개헌과 긴급조치 등은 다 새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 현 정권이 무너지는 징조로 보인다”며 “현 정부가 부정부패해서 공화당과 박 정권이 망한다.
군대 가면 중동전쟁에 나가서 죽는다”고 말했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붙잡혀간 정씨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7년형이 확정됐다. ‘유언비어 날조’ 혐의였다.
 
한양대생 3명은 74년 4월 긴급조치에 항의해 중간시험 거부를 ‘모의’하다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체포됐는데, 이들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농민 박아무개씨도 그해 5월 이웃에게 “박정희가 여순반란 때 부두목으로 가담했는데 운이 좋아 대통령까지 됐다”고 말했다가 끌려가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던 최아무개 교사는 수업시간에 “유신헌법은 장기집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제도로 간접선거를 하는 것은 나쁜 제도”라고 말했다가 징역 8개월을 살았다.
 
최아무개 교사는 “박 정권은 독재다. 기업주들이 노무자들을 혹사하고 자기 권리를 못 찾을 때 전태일이 분신 자살한 후 대우 개선을 해주었다. 정부에서 비료값을 60%나 올려 농민들은 살기가 더 힘들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는 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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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의 퍼스트레이디께서 예능에 나와서 본인도 힘들었다고 하시니 뭐라 위로해 드릴 말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가슴이 뻥 뚤린 거 같았다고 하는데 자기 아버지로 인해 죽은 그 많은 사람들의 가족은 어떨까요. 그로 인해 망가진 사람들의 삶은요.
여지껏 박근혜가 윗세대의 표를 받아온 주요 요인 중 하나죠. 어린 시절에 엄마 잃은 불쌍한 공주님.

김근태 고문이 그 시절 고문 후유증으로 죽은 게 불과 며칠전인데 그 단초를 제공한 사람들이 TV 예능에 나와서 동정심을 사려는 꼴을 보니 할 말이 없습니다.

박근혜 개인을 봐야지 박정희랑 너무 엮는 것도 일종의 연좌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보다도 박근혜는 박정희와 떨어뜨려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처음 정치에 뛰어들 때 부터 아버지를 엎고 나왔고 대구에서 유세할 때 "제가 누군의 딸입니까!"를 외친 사람입니다.

웃긴 건, 
"영부인 유고 이후 실질적인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고로 정치적 역량에 대한 검증은 이미 충분하다)
<->
"유신 체제에는 대학생인 딸로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로 독재에 책임이 없다)
고 그때 그 때 자기 유리한 데로 말한다는 겁니다.

변명할 여지 없이 박근혜는 독재 정권이 퍼스트레이디였습니다.

박정희의 독재에 대해 사과를 한 적도 없습니다. 거부했습니다.
박정희가 축적한 재산을 고스란히 가지고 그 시절의 향수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박정희의 딸로 표를 얻고 있습니다.

박근혜를 박정희와 떼어놓고 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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