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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뉴코어 001~011
게시물ID : readers_235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muw
추천 : 1
조회수 : 2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1/13 22: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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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수험생활 하면서 머리 속으로 구상하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많아서
수능 끝나고 하나씩 적어내려가고 있습니다.
 
 
 
 
 
 
 
 
 
 
 
 
001

나는 죽었다.

실내를 가득 채운 검은 연기는 목 구멍을 쥐어 삼키려는 듯 덤벼든다.
아무리 숨을 내쉬어 봐도 더운 고통은 가슴을 옥죄어온다.
아무리 숨을 들이켜 봐도 채워지지도, 퍼지지도 않는다.
끊임 없는 콜록거림, 그래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눈물이 흐른다. 소리도 들리지 않아.
덥다. 뜨거워.

희미하게 생각이 난다.
불이 났어. 화재 경보음이 울렸고, 나는 신경 쓰지 않았어.
창 밖으로 검은 연기가 보였을 때, 그제서야 나는 뛰었어.
계단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막 소리를 질렀어.
아이는 울었고.
숨이 안 쉬어.
아니, 숨이 안 쉬어져. 뜨거워.

오래 된 건물이야. 상가 건물.
나는 3층이었지? 4층이었나?
계단을 오르면 노란 간판 피아노 학원이 있는 그 층.
개중에 나름 규모 있는 서점이 있고, 나는 펜을 고르고 있었지.
그리고 화재 경보음이 울렸고, 나는 신경쓰지 않았어.
창 밖으로 검은 연기가 보였을 때, 그제서야 나는 뛰었어.
계단에는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지?
... 그리고 나는?



002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아.
뜨고 싶지 않아. 졸려.
생각도 하기 싫은데, 계속 떠올라.
계속 또렷해진다.
눈을 떠야만 할 것 같다.


처음 보는 공간.
나는 침대에 누워있고, 하얀 침대. 포근하다.
바로 앞에는 꺼져 있는 티비. 조용하다.

생각해보니 조금 어둡다.
방에 불은 꺼져 있고, 창을 통해 복도의 빛이 흘러온다.
시계도 없고, 밖을 향한 창도 없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이 몇 시 인지 알 수가 없다.

내 팔에는 주사 바늘이 꽂혀 있다.
바늘, 튜브, 주사. 시선을 옮겨보니 무색 액체가 담겨있는 봉투. 영어가 적혀있다.
그제서야 다시 보니 전체적으로 하얀 인테리어의 방. 여기, 병원이었구나.

나 살았구나.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003


안심이 됐는지, 방심을 한 건지.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일어날 힘이 없어.
일어나기 싫은 건가?
그냥 이러고 있어도 될 것 같아.



004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온다.
생각해보니 소란은 아니야.
그냥 도란도란.
사람이 있네. 다른 사람이 있어.
눈을 뜨고,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아.
의사일지도. 엄마일지도, 아빠일지도, 오빠일지도.
어쩌면 친구들일지도 몰라.

나 괜찮다고, 멀쩡하다고, 말해줘야지.


"나아..."

목소리가 안 나온다. 입안이 말랐어. 입도 생각만큼 안 움직였다.

"아, 일어났나."
"깨어났네요."

남자 목소리 하나, 여자 목소리 하나.
둘 다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
눈을 떠야지. 누군지 봐야겠다.



005


"눈도 떴네요. 맥박도, 호흡도 정상 수치 확인됐었습니다. 한동안 호흡이 약간 힘들 수는 있는데..."
"아~ 이거 미안하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데려왔어야 했는데... 조금 틀어져 버려서. 이틀이나 늦어졌네."

고개를 돌린 내 눈 앞에는 의사 가운을 입은 한 명의 여성과, 정장 차림, 큰 키의 남자가 서 있다.
이틀이나 늦어졌다고? 이틀? 이틀 동안 누워있었단 말이야? 내가? 하며 그의 얼굴을 좇아 고개를 올려 들었다.

"아, 늦어졌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걱정했다는 말이네. 이틀이나."라며 그는 웃었다.

"여긴 어디 병원인가요? 엄마는 어디 계시나요?"

"아... 여긴 '어디' 병원이라기 보다는, 그냥... "
라며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그는 팔짱을 끼고 조금 과장된 듯, 고민하는 행동을 하다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빠르게 사후 보고부터 시작하지."



006

그가 문을 향해 손짓을 하자, 흰 가운을 입은 여자는 방을 나갔다. 그리고 들고 있던 태블릿을 켜고, 화면을 향해 눈을 옮겼다.

"이번 사고는 깔끔했네. 건물은 완전 붕괴, 원인은 건물 노후로 인한 가스 누출. 부상자 23명, 사망자 40명. 그리고... 실종자 1명.
누구 잘못일까? 소화기구를 점검 및 배치하지 않은 건물관리인? 정기 검사에서 설비 노후를 찾아내지 못한 배관사? 실내에서 과도한 난방기구를 사용한 점주들?"

"이번 사고라는 건?"
나는 말을 더 듣지 못하고 질문했다.

“아 당연하지. 자네가 당한. 어땠나? 자연스러웠지? 사실 이런 스케일 작은 일들이 은근히 더 문제 될 게 많아. 이번만 해도”

나는 또 한 번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잠시만요. 그, 불이 당신 때문에 났다는 얘긴가요?”

“음… 화재는 내가 낸 거지. 나 ‘때문에’ 난 건 아니고. 원래는 깔끔하게 저층만 태우려고 했는데 조금 일이 꼬여서 자네도 조금 다쳐버렸어. 사과하지.”

무슨 말인지, 무슨 일인지, 어떻게 된 일인지. 두서 없이, 그리고 끊임 없이 묻는 내 질문에 그는 침대 하단의 레버를 돌려 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처음처럼 웃는 낯으로,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한 것처럼, 그렇게 설명을 시작했다.

‘조금 길어질텐데.’ 라고 말하며 뜸을 들이던 그는 조금 불편해 보이는 다리를 이끌어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내게 물었다.
 

007

아무래도 사고에 관심이 가장 많이 가는가 보군. 가장 먼저 얘기하면, 나는 자네를 데리고 와야 했어. 아무도 걱정하지 않게. 의심하지 못 하게.
그걸 위해 지난 몇 번의 실험을 통해 ‘적절한 실종’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지. 잠깐 기다려보게.

자, 적절한 실종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사회가 납득할 것’이지. 가장 좋은 방법은 ‘사고’야.
사람들은 큰 사실 하나를 접하면 작은 사실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예를 들어, 도심의 건물이 하나 ‘뻥~’ 하고 터지면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고, 그룹을 만들고, 싸움을 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 아니, 지워지지.
강한 집단은 안정을 추구해. 그들에게 이런 ‘이벤트’는 불안정이고 비정상이야. 거슬리는 혼란이 되지. 그들은 없애려 하고 비우려 할 거야.
그런 와중에, 사람 한 명 한 명 신경 쓸 수 있을 것 같나? ‘사고’는 자네 한 사람을 실종 시키기엔 가장 안전한 연막이었지.

그래, 자네 말 대로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있지. 가족, 친구, 지인.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은 ‘가족이 인정할 것’이야.


008
내 동생이 죽었다.

사고가 났다. 집 앞 상가 건물에 불이 났다.
처음에는 동생이 있었으리라 생각도 못했다.

불이 났다는 걸 알리려고,
이 흔하지 않은 사건을 알리려고,
동생에게 문자를 넣었을 때, 동생은 받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을 때, 동생은 받질 않았다.
소름이 돋았다.
손이 떨렸다.
상가를 향해 달렸다.

상가 앞에는 소방차와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눈물을 흘렸고, 고함을 쳤다.
안타까운 눈으로 상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들것에 실려있었다.
그리고 내 눈은 동생을 찾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다른 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침에 볼일이 있어 나간다고 할 때, 목적지를 묻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끊임없던 연결음이 어느 순간 ‘전화기가 꺼져있어…’하는 목소리로 바뀌었을 때 까지도,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면 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009
무허가 개인 난방 기구에서 시작된 불씨는 노후한 배관을 통해 새어 나온 가스와 만나 폭발했다고 한다. 불길은 건물 전체를 뒤덮었고, 23명의 부상자와 33구의 시체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시체 대부분은 신원이 확인 되었다. 내 동생, 미래는 부상자에도, 사망자에도 없었다.

건물이 무너진 탓에 아직 모든 건물 내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순간적인 폭발 사고라 진원지에 가까울 수록 시체의 신원 확인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동생, 미래는 부상자에도, 사망자에도 없다. 미래는 틀림없이 살아있을 것이다.


010

‘가족이 인정하기’는 까다롭지. 가족은 살아있든, 죽어있든, 제 눈으로 봐야 인정할 수 있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실종’이 ‘사실상의 사망’으로 느껴진다면, 그들에게 ‘실종’은 ‘잠정적인 생존’일 수 밖에 없네.

그래서 그들의 인정을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들 스스로 무뎌지게 해야 해.

혹은,
그들의 말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게 해야 하지.

왜냐하면, 가족에게는 절대 지워지지 않거든.



011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생각이 따라가지 못했다.
이해가 쫓아가지 못했다.
말을 놓여버릴 것만 같아, 물어야 했다.

“무슨 소리예요? 그러니까, 저를 데려오려고 사고를 냈다는 건가요?”

“그렇지. 자네 때문에 낸 사고야. 얼마나 섬세한 방법이었는데.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 수백 번의 사전 실험, 수천 번의 예비 조사. 개개인이 부각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많은, 동시에 빠르게 식을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적은 사상자 수. 효율적이고 깔끔한 화재 범위. 그 밖에도 피해자 간에 적당히 적은 연관 관계와 명확한 사고의 책임자. 이 밖에도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요소를 고려한 올해 최대의 최소 규모 계획이었네. 그만큼 안전하게, 조용하게 자네를 실종 시킬 필요가 있었어.”

“그러니까, 저를 데려오겠다고, 여기에, 사고를 냈는데, 그럼 사람들은 그 것 때문에 죽고 다친 건가요?”

“그건 사소한 문제야. 사소할 수 밖에 없지. 사소하게 만들었으니까. 가장 적게 죽고, 죽어도 가장 영향이 적을 사람들만 죽었네. 그야말로 최소, 최저의 손실이야.

단적으로, 사고 일은 2월 17일, 수요일 오전 10시 36분 이었지. 평일 이 시간대에 상가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 것 같나? 가정주부, 취업 준비생, 방학 중인 학생, 소수의 가게 점원. 게다가 그 상가 건물은 충분히 낡았어. 더욱이 가까운 거리에 대형 아울렛도 있고. 왜 건물 관리가 안되고 있었다고 생각하나? 사후 대책은 찬찬히 나오겠지만, 지금은 하얀 도화지가 필요한 상황이었지.”

“그래도 그건”

“필요했을 뿐이야. 부탁이야. 내 설명을 들어주게. 자네는 이해하게 될 거야. 왜 자네가 선택됐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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