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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동명왕이 아니다??
게시물ID : humordata_3522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빛눈앙
추천 : 11
조회수 : 1156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06/09/19 16:44:03
방금 친구에게 이런 문자가 와서 알아본 결과 정말 그렇네요.. 잘못된 역사 지식은 바로 잡아야 할듯해서 오유에 올립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서도 '고구려 세운 동명왕♬' 이러는데.. 암튼 주몽은 "추모왕" 동명왕은 부여의 건국시조라 하네요^^ 우리는 고구려의 시조를 동명성왕(東明聖王)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서 중 하나인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시조를 동명성왕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추모)과 동명왕은 다른 인물이다. 고구려의 시조는 추모왕(鄒牟王)으로, 광개토태왕릉비에 기록되어 있다. 후대 사가들이 쓴 기록과 고구려인이 남긴 기록중 어느게 더 고구려 역사의 진실을 알릴까? 바로 고구려인들이 남긴 기록 즉 광개토태왕릉비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왕은 부여의 건국시조이다. 이제부터 왜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왕이 동명성왕으로 둔갑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왕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아닌 부여의 시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추모왕과 동명왕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인데 어느 시점부터 고구려 사람들에 의해 한 명의 영웅이 된 것이다. 서기 60년경 쓰여진 후한 시대 왕충의 『논형』< 길험편>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북쪽 이민족의 탁리국에 왕을 모시는 여자 시종이 임신을 하자 왕이 죽이려고 했다. 그러자 여자 시종은 계란 같은 큰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임신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아 돼지우리에 버렸지만 돼지가 입으로 숨을 불어넣어 죽지 않았다. 다시 마구간으로 옮겨 놓고는 말에 밟혀 죽도록 했으나 말들 역시 입으로 숨을 불어넣어 죽지 않았다. 왕은 아이가 아마 하늘 신의 자식일 것이라 생각하여 그의 모친에게 노비로 거두어 기르게 했으며, 동명(東明)이라 부르며 소나 말을 치게 하였다. 동명의 활솜씨가 뛰어나자 왕은 그에게 나라를 빼앗길 것이 두려워 그를 죽이려고 했다. 동명이 남쪽으로 도망가다가 엄체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고 동명이 건너가자 물고기와 자라가 흩어져 추적하던 병사들은 건널 수 없었다. 그는 부여에 도읍하여 왕이 되었다. 이것이 북이에 부여국이 생기게 된 유래이다" 『후한서』의 부여국 기록을 보면 부여를 건국한 시조 설화가 논형과 비슷하다. "색리국(索離國) 왕이 출타했을 때 그의 시녀가 임신하자 죽이려다가 계란만한 기(氣)가 들어와 임신했다 하여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 왕이 그 아이를 돼지 우리, 마굿간에 버렸으나 돼지와 말이 보호해 죽지 않자 어머니에게 주어 기르도록 하니 이가 바로 동명(東明)이다. 동명이 장성하여 활을 잘 쏘자 왕이 그 용맹함을 꺼리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도망하는데 고기와 자라들이 엄체수를 건너게 도와주어 무사히 건넌 후 부여에 도착하여 왕이 되었다" 이것은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고주몽) 이야기와 거의 모든 것이 같다. 그러나 이것은 고구려가 아니라 부여국의 건국 신화이다. 그리고 추모왕이 아닌 동명왕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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