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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sisa_1581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또깔라비★
추천 : 7
조회수 : 68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01/05 12:13:55
한 때 사회정의를 위해 앞장서 싸우다 이제는 변해버린 사람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변절자다. 배신자다. 더러운 새끼다 하며 욕을 한다. 다같이 한번 고민해봤으면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김근태 선생님에 대해 며칠째 고민하며 고통스럽고 가슴에 뭔가 얹힌듯한
불편함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미안함을 느꼈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 나는 김근태 선생님을 '잘 몰랐으니까' 내 이유는 그거였다.
변절자와 마지막까지 올바른것을 지키며 살다 돌아가신 김근태 선생님의 사이에 서서 며칠간을 고민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변절자에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그들을 지지할수는 없지만 비난하기엔 부끄럽다.
학창시절 내 짝은 왕따였다. 중학교 3년 동안 왕따를 당했는데,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과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한 반이 되었단다. 3주가 채 안되는 시간밖에 보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이면 자기
핸드폰을 놔두고 내 짝의 핸드폰을 가져다 쓰고 (학생요금이라는 것이 있던 때라 정액제로 묶여있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 짝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쓰곤 했다.
꼴보기 싫어 몇 번 못 하게 막고 욕을 하자 아니꼬운 표정으로 노려보기는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짝의 물건을 가져다 쓰지 않았다. 하루는 짜증이나 예사 말투로 (원래 말이 딱딱한 편이다.)
'야 싫다고 좀 해라. 니가 너무 가만히 있는것도 좀 그렇다.' 이런식으로 말했었다.
(오래전일이라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매번 나서는데 정작 본인은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있는것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던걸로 기억난다.
그러자 내 짝 왈 '너 맞아본적 없지? 싸움 잘하지? 그런 애들은 맞는애 마음 모르니까 그렇게 말한다.'
그러고는 그들을 바라볼 때 처럼 나를 바라보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상에 엎드렸다.
뒤통수를 한대 맞는 기분이었다. 불쾌했다. 짜증났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이 짧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애써 외면했다. 보상을 바란건 아니었지만 화가 났다. 나는 참 속이 좁은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그 아이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도와준것이 아니라
내가 비겁한 모습인 것이 싫어 나섰던 것 이다. 그러니 그 아이의 입장에서 고민하지 않았고,
그러니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 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고 사과해야할 언행이다.
이 얘기를 왜 했는고하니, 그 짝에게서 느낀 나의 감정과 변절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느꼈을 감정에서
나의 입장이 겹쳐보였다.
내가 누구를 돕기 위해 내 인생을 다 바쳤다고 하자. 누릴 수 있는 명예, 돈, 평범한 행복을 포기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실제 민주화 운동을 한 많은 분들은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꽤
잘 살았을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 많은 사람은 김근태 선생님만큼은 아니어도 참 힘들었을 것 이다.
몇 번 말이나 하고 싸워준 나도 그렇게 화가 나고 서운했는데, 큰 피해 본 것도 없는 내가 그렇게
황당했는데. 인생을 다바치고 고통받은 이가 자신이 도와준 이에게 비난받고 외면당할때의 기분을 어땠을까.
시간이 지나 내가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 나를 위해 싸워주지는 않아도 나를 알아주기는 바랄 것 이다.
정치를 하기 위해 싸운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그들을 위해 고통을 당하고 싸우다 다시 그들을
돕기 위해 정치를 하려고 나섰으니 표 하나 찍어주는 정도를 바라는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심정일 것 이다.
당신이 누구를 위해 매를 맞고 대신 싸워줬는데, 상대방에게 좋은 소리는 못들어도
'응?니가 그런일 했었냐?' 라면서 자기를 매일 괴롭히고 나를 때린 놈을의 친구의 편에 선다면..
당신은 인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들까?
나라면 참 화가 날 것 같다. 그리고 허무해질 것 같다. 한 두번 때리고 맞는 문제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내 인생을 다 걸고 싸웠는데 그런 대우를 받는다면 아마 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내가 너무 속이 좁고 비겁하고 많은걸 바란거라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사과하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허무해질 것 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너희를 위해 싸워도 , 앞으로 계속 싸워나가기 위해 정말 어려운것도 아닌, 표 하나 찍어달라는
부탁조차 외면한다면..아니 내가 싸운 것 조차 평생 많은걸 버리고 싸운 것이 결국 내가 돕고자 한
이들에게는 하루 몇 분 고민하거나 알아보고 선거장에 발을 옮길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 이었다면..
그런 생각도 들고 결국은 그런 고민이 들 것 이다. 어차피 내가 이런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나만 괴롭다. 나라도 잘 살자..
인간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그럴 것 이다. 나처럼 아무일도 안하고 팔짱끼고 있던 비겁자는
잃은 것이 없으니 되찾고자 싶은것도 없겠지만 인생을 바쳐 싸웠던 이는 잃었던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고
싶을 것 이다. 그들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서운하고 슬플 수 있다.
그냥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한 번이라도 불이익을 감수하고 남을 위해 싸워본적이 있는가.
그들이 느낄 회한과 배신감과 허무함과 좌절감, 분노에 대해 당신의 인생에서 단 10분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본적이 있는가. 변절자라고 욕하고 비겁자라고 손가락질 하기 이전에
정의를 위해 싸운 이들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적 있는가. 그들이 변절하기까지 겪었을 수 많은
갈등과 고통에 대해 단 몇분이라도 공감해본적 있는가.
당신은 그들에게
'내가 싸워달라고 한 적 없는데 나선건 너이니, 끝까지 그길을 가라.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말아라.
단 나는 앞으로도 너를 위해 눈꼽만큼의 관심도 도움도 주지 않을 것 이다. 그러나 그래도 너는 싸워라.
그렇지 않다면 너는 더러운 변절자고 배신자고 니가 비난한 그들과 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무관심이라는 손으로 그들의 등을 밀지는 않았을까.
누군가가 대통령이 됐을 때 나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저 사람이 도덕적 감수성이 결여된 싸이코 패스라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은 싸이코 패스다.
내가 잘살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준 범죄자를 지지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가 저 사람과 다를것이 무엇이냐'
아쉽게도 그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인상을 확 구기며 '말이 심하다.'
'너는 그렇게 잘났냐' 라고 말한다.
내가 모 대통령 시절에 '정치인들이나 몇 몇은 힘들었지만 서민들은 잘 살게 됐다.' 라는 평에 대해
"나 혹은 나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고문받고 죽어가도 괜찮다는 이야기냐,
결국 '나만 아니면' 누가 피해봐도 괜찮고 '나만 잘살면' 누가 피해봐도 괜찮다면,
그게 우리가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는 정치인들과 한ㅊ도 다름없음이 아니냐."
이런 질문을 하면 다들 인상을 구기며 '너 잘났다' 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자신의 비겁한면, 부끄러운면 추악한면을 지적당하면 싫어한다.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말들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한다 그런 자신의 비겁한 모습은.
하지만 또 아무도 듣지 않을 말이라도 하고 싶다. 정면으로 직시했으면 한다.
내가 아닌 남의 고통을 내것인것처럼 단 10분만, 아니 5분만 가슴으로 앓아보기를.
나의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모습을 단 5분만 직시하기를.
내가 그렇게 비난하던 이들은 결국 나의 무관심을 자양분으로 자라난 열매임을.
그리고 당신이, 내가 놀고 먹고 즐기는 시간중 단 10분의 시간조차 빼지 못 하고 뒤늦게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면..이제라도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5분이다.
여전히 나는 변절자와 배신자를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이나 갈등은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왜냐하면 나는 '싸우다 전향한' 사람이 아니라 한 번도 싸워본적도 없는 비겁자니까.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적어도 정면에서 자신이 아닌 많은 이들에게 덮칠 파도를 온몸으로 막는 이와
함께 파도를 맞아주진 못 해도, 뒤에 서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파도로 인해 젖은 몸을 닦아 줄 수 있는.
약하고 작지만, 그리고 비겁하지만 부끄러움을 아는 손과 마음을 가진 인간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질 때 뒤에 숨어있던 이들이 모여 작은 용기를 모아
함께 손을 잡고 파도를 맞을 수 있는 사회가 오리라고 믿는다.
- 평생을 정의를 위해,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덮칠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서주신 김근태 선생님을
기리며. 앞으로 다시는 당신과 같은 이를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비겁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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