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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수정'실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게시물ID : history_236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법산
추천 : 15
조회수 : 1027회
댓글수 : 44개
등록시간 : 2015/10/10 02:34:19

조선왕조실록의 대단함은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들 아실겁니다.
실록은 모든 왕에 대한 내용이 현재까지 잘 갖추어져 있는데,
기존과는 조금 다른 이름이 존재하는 왕의 기록이 몇 개 있습니다.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
경종수정실록


일반 ㅇㅇ 실록, 혹은 ㅇㅇ군 일기라고 기록되어진 실록과 다르게,
누가봐도 다시 수정되어져 쓰여진 실록이란 것이 짐작되는 실록들입니다.

이런 수정실록이 만들어진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실록은 왕이 살아있을 때 사관이 왕 옆에서 적은 기록(사초)을 토대로 왕이 죽은 후 편찬되어집니다.

이때 실록을 편찬하는데 가장 영향력을 많이 발휘되는 건 당대의 집권 세력인데,
사건의 기록 자체는 사초를 기반하기에 왜곡되어질 여지가 별로 없더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는 당연히 그 집권세력의 입김이 가장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선조실록의 경우 북인이,
현종실록의 경우 남인이, 
숙종실록의 경우 노론이, 
경종실록의 경우 소론이 실록 편찬의 주체가 됩니다.

그런데 그 후 실권이 북인에서 서인으로, 남인에서 서인으로, 노론에서 소론으로, 다시 소론에서 노론으로 옮겨감에 따라
새로운 집권 세력 입장에선 기존에 편찬된 실록 내용 중 상당수가 도저히 동의가 안 되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졌겠지요.

대표적인 예로 광해군 시대에 편찬된 선조실록의 경우 
율곡 이이를 뇌물을 사양치 않을 정도로 염치가 없고 언사를 잘 꾸미며 자기 의견만 옳다고 하는 허명이 있는 인물이라 말하고, 
권율의 경우 겁도 많고 성품도 별로고 위엄도 없는데도 우연히 행주대첩에서 공을 올려 능력도 없이 원수라는 중임을 얻게 되었다는 식의
지금 들어도 도무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식의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인조반정 후 서인이 집권하면서 이런 내용을 보게되고, 대북파 이외의 인물에겐 가차없는 평가를 내리는 선조실록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실록을 없애버리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반정이후 대북을 모조리 쓸어버렸던 서인도 대북이 편찬한 선조 실록은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대신 새로운 실록을 하나 더 만들었고, 그게 바로 조선왕조실록 최초의 수정실록입니다.

수정실록이 가지는 의미는 이것입니다.
비록 내 기준으로 도저히 마음에 안 드는 기록이 있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하겠다.
다만 우리는 또 다른 시각으로 본 내용이 있으니 우리 기록도 참고하고 비교하여 후대는 판단하라. 는 것입니다.

같은 인물, 같은 사건이라도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어떤 방향에서 보았느냐에 따라 해석은 천차만별이 됩니다.
아마 이번 국정교과서가 논란이 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이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국사 교과서와 왕조실록이 같은 위치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일을 배우고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 현재에 더 옳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끔 하자는 그 목적 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백년 전 우리의 선조는 본인이 보기 싫어하는 기록을 없애기보다는, 
서로 비교/판단할 수 있게 기존의 실록은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시각의 실록을 만들어 후대의 우리가 두 가지 기록을 모두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당연히 현재의 우리는 더 넓은 시각으로 당시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요.

현대의 우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 서술이라하여 모든 내용을 일률화하는 것 보다는, 
서로의 서술을 인정하고 무엇이 더 맞는 기록인지 개개인이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옳바른 방법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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