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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있는가? [서프 펌]
게시물ID : sisa_236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법천지
추천 : 5/6
조회수 : 405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06/08/18 11:34:30
<<< 우리가 근본적으로 다른것 >>>
 
글쓴이 : 격암

한국에는 두 가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들이 과연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가아닌가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한국인의 가능성을 믿으며 한국사회라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믿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이 뚜렷하게 다른 행동양태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바로 전시작전권문제입니다. 한국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도 전시작전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마치 세상에 전시작전권이라는 것을 다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디 많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전시작전권을 가지지 못하는 나라가 과연 독립국이라고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독립국을 자처하는 나라 중에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들은바가 없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인데 아직도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걸 받는 것을 거부한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작전권 돌려주지 말라고 데모도 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한숨을 쉬고 낯 뜨거워 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어느 나라나 미친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미친 사람들이 미디어를 주도하는 나라, 최대 야당을 지배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제가 듣는 것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욕심은 가득한데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존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우리가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의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걸 돌려준다니까 공포에 떨면서 우리를 쳐다보는 베트남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건 노예근성 이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인을 노예의 지위로 떨어뜨리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화를 내지 않기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미국인 친구를 보기가 부끄러워집니다. 

북한이 두렵다고들 말합니다. 좁다란 한반도에 세계최고의 무력이 쌓여있으니까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보다 수십 배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도 두 배는 됩니다. 그런 북한이 두려워서 자주국을 포기하고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맡겨둬야 한다면 우리는 언제 자주국이 될 수 있다는 말인지. 세계를 한국이 지배할 만큼 강해져야 자주국이 되나요?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존심을 잃고 나면 그저 짐승같이 아무 목표도 없는 존재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한국의 상품과 한국의 문화와 한국의 전통에 자부심이 없는데 한국이 스스로 서기보다는 남에게 공짜나 바라고 기대려고만 하는데 한국이 선진국이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말이 안 되지 않는가요? 

여기 한 가문이 있는데 이집안 사람들은 항상 남의 집안사람들만 부러워하고 그 집안사람인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 집안의 잠재력을 믿지 않습니다. 남의 집안사람이 들어와서 이리저리 명령을 해도 그게 당연한거라며 그런 관례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집안이 융성한다는 이야기가 말이 될까요? 

우리는 왜 희망 없는 시절에 목숨을 살라 독립운동을 하고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 이야기를 할까요. 그들이 우리에게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 한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제일야당이 전시작전권은 돌려받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답니다.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어떻게 크겠습니까. 그들은 나라 따위는 언제라도 팔아먹을 이완용을 키우려고 하는 건가요? 

그들은 같은 입으로 사회지도층이라는 말을 하기를 즐겨합니다. 뭘 지도한다는 말인가요. 한국인은 노예라는 사실을 한국인은 못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가르쳐 주고 싶은 건가요? 화가 나고 분노에 잠이 오질 않습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한국사회에 대한 자부심은 우리가 이뤄 온 것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내립니다. 즉 한국인들이 우수해서 한국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 같은 외세에 의해서 발전했다거나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이병철이나 정주영 같은 특정 인물들이 무지한 한국인들을 이끌어서 한국이 발전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손쉽게 친일파나 숭미파가 돼 버리고 맙니다.

그들이 한국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혹시 그들의 뿌리가 친일파라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은 한국인을 보려고 거울 앞에 서서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일그러진 인간상을 보며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본래 그렇다. 한국인의 피가 본래 그렇다고 말하는 겁니다. 

본래 세상에 도둑만 가득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도둑놈이고 세상 사람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실은 자기가 이기적인 것을 정당화 하고픈 것뿐입니다. 내가 착취하는 것을 인간은 본래 착취하고 이기적으로 살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인간들의 총합이 사회라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런데 시장논리운운하며 기득권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인간들에 의해 우리사회는 점점 더 이기적인 인간이 정상적인 인간을 대체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정상이고 그게 바람직한 인간이며 당연한 인간모습이라는 주장이 점점 더 득세 하는 것 같습니다. 

기득권이 열심히 그렇게 바람을 넣고 있습니다. 연예계며 책이며 하는 것들이 모두가 '쿨'한 풍조를 선전하고 개인주의를 당연시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기득권을 지키는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너도 이기적이고 나도 이기적이므로 내가 너를 억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안 들키면 탈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사면될 수 있고 법망을 피할 수 만 있다면 사기를 치는 것은 인지상정이 됩니다. 남의 아들딸 무시하고 내 아들 딸만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됩니다. 더하여 이기적인 니들끼리 뭉쳐서 기득권인 나를 대항할 수는 없다는 절망의 선고까지 때릴 수가 있습니다. 그 개인주의의 세계적 중심지인 미국에서 조차 워렌버핏이며 빌게이츠 같은 거부들이 전 재산을 사회 환원에 쏟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합니다. 쿨해지고 개인주의를 숭상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로 소개됩니다. 

한국의 정기는 쇠약해져 있고 움츠러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촛불집회같은 시민의 목소리조차 이리저리 차단되어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이리저리 막혀지고 다시 네이버같은 포털이 지배하는 구조로 재편되어 버렸습니다. 인터넷조차 자본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광장은 뻔뻔하게도 보수를 자처하며 노예근성을 자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집회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발적이었던 붉은 악마응원도 자본이 끼어들면서 불이 꺼져가듯 뭔가가 빠진 느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국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들로만 이 사회를 채울 수 있을까요. 그들을 박멸해서? 그들에게 똥물을 끼얹어서? 개혁이며 혁명이며 하는 것이 뭔가 하는 것은 바로 촛불집회가 가장 잘 보여줍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하나씩 촛불을 켭니다. 나 하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모두에 대한 사랑과 믿음 때문입니다. 촛불은 여기저기로 번져나가서 거리를 덮습니다. 노래가 시작되고 모두가 같은 리듬을 탑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감격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사랑을 경험하고 안도하고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누가 두 배 큰 촛불을 올렸다던가 누가 촛불을 조금 더 먼저 조금 더 높이 들었다던가 하는 것 때문에 혁명이 되고 개혁이 되는 게 아닙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더해 거리를 덮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민중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선전에 의해서도 아니고 광기에 끌려서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나의 불을 밝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희망과 미래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쉽사리 광기와 조작을 말합니다. 대중은 조작될 수 있고 조작된다고 믿는 사람은 개혁과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전여옥 씨가 그랬다지요 촛불집회를 보고 이게 돈 들여 모으지 않으면 가능하냐고 난 못 믿겠다고. 한국민중을 믿는 자와 안믿는자의 차이입니다. 노풍은 광기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그렇고 붉은 악마의 신들림도 광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한국민중을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프랑스혁명이니 미국의 독립운동사니 일본유신개혁사를 줄줄 외면서 프랑스민중이나 미국민중이나 일본민중의 위대성은 손쉽게 받아들입니다. 

세상을 뒤덮던 촛불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거리는 어둠으로 덮여있습니다. 아직도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촛불을 드는 의미 따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개싸움을 보고 싶어 모여들었거나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 멋져보여서 그러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가장 빛나는 촛불이란 대개 어린 아이나 쭈그렁 할머니가 어렵게 들고 나온 촛불입니다. 그 옛날 대선 때 노하우 홈페이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적셨던 글들이란 훗날 논객이라고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의 글이 아닙니다. 그들의 글은 케익의 장식처럼 장식일 뿐입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고백이 우리들을 울렸습니다. 케익에 몸통은 없고 장식만 있다면 흉한 꼴일 뿐입니다. 

인간적인 기본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논리 따지고 이론 따져서 진보를 외치고 개혁을 외치는 자들로 세상이 가득합니다. 진보와 개혁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고서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학공식풀기나 테니스 경기이기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더 강한 신뢰와 사랑에 대한 것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누가 누구를 이기는가아닌가에 대한 것이 아니고 누가 유명세를 타는가아닌가에 대한 것도 아니며 심지어 누가 옳은가 아닌가도 아닙니다. 

사랑과 신뢰를 전파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인간적으로 감동을 주는 겁니다. 그 모든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촛불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돌을 맞는 겁니다. 그게 김대중, 노무현이 걸어오고 서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단 몇 개의 촛불만이 모여 있어도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외치며 얼굴과 입에는 미움과 거친 욕밖에 있지 않다면 그런 촛불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을 것입니다. 나서지 않는 박원순 변호사가 왜 주목을 받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과연 지금 서프의 모습은 어떤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시대는 어둡습니다. 거리엔 사람이 없고 바람은 차고 매섭습니다. 한민족이 잘되려면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모두가 작던 크던 희생의 몫을 내고 제사를 올려야 복이 오는 법입니다. 한민족이 없고서야 나와 내 자식들의 미래가 없습니다. 모두들 내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민족을 위해 내가 바칠 수 있는 희생의 몫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기적인 인간은 쿨한게 아닙니다. 몹쓸 인간일 뿐입니다.

ⓒ 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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