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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소처럼 술을 마시다가,
게시물ID : soju_58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탄의사수
추천 : 2
조회수 : 123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1/06 05:18:35
너무 많이 마신게 아닌가하며 의구심을 갖는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빈 병들을 세어보고 나서야 얼마마시지 않았다는 걸 깨달으며 피식 웃는다. 그의 친구는 왜 갑자기 쪼개냐며 별 이상한 놈 다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술잔에 다시 술을 따른다.
7/10 정도, 혹은 8/10 정도로 차오른 술잔에는 투명한 액체가 일렁이다가 곧 그 파동마저 멈춘다.
"아무튼 그 새끼는 시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레테의 강이나 스틱스 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그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술자리는 죽음을 이야기하기엔 대화의 분위기속에 음울함이 다소 결여되어 있었다.
"글쎄, 그래도 결국엔 용서하게 되지 않을까."
"좆까라그래. 시발, 야, 추노에도 나오지? '물에 빠진 건 구해도, 계집에 빠진 건 못 구한다.'어? 알지? 존나, 야. 나도 여자친구가 소중하고, 열심히긴 해. 근데 그 새낀 너무 심했어."
"그럴까나..."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술잔을 비우고 친구도 그가 잔을 드는 것을 보며 한잔을 비워낸다. 소금덩어리인 계란말이를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은 그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가 풀린다. 그 계란말이를 만든 친구도 한 젓가락 입에 넣다고는 더 심하게 인상을 찌푸린다.
"이건 계란...젓갈 정도로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아, 내가 생각해도 소금 너무 많이 넣었다."
그는 대답없이 또 술잔을 채운다. 어째선지 잔을 채우는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언제나, 모든 술자리에서, 그가 술을 채울 때의 눈빛은, 수정체 안에 슬픔을 담고 있다가 잠시 밖으로 내비치는 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슬퍼보였다.
"사랑과 로맨스는 다른 거지?"
"야, 로맨스는ㅡ"
그의 친구에게서 로맨스의 어원과, 그에 부여된 환상성이 수업시간의 교수가 강의하듯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에 대해서는 대충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 이야기에 대한 논박을 몇마디, 하려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그의 친구가 실을 다 뱉어낸 실패처럼 멈춰지고 나서야 그는 다시 입을 연다.
"그래, 그럼 궁극적으로 사랑의 목적은 종족번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
"그건 또 아니지. 솔직히 현대사회에서는 그렇게만도 생각할 수 없어. 아까 말한대로, 인간의 감정은 학습되고 구조적인 시스템의 영향을 받잖아. 사고체계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이 원하는 사랑이라...하하.하하하하하하."
"크히히히히. 웃기지."
"지랄맞네."
"똥이야 히힉, 오줌발사!"
그와 그 친구는, 너무나도 씁슬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또 한번 나눴다. 마지막 잔이 완전히 마른 뒤에서야 친구는 대충 상을 정리하고 그는 담배를 한대 피러 화장실로 향했다. 딱. 가벼운 정전기에 가스가 닿아서 일으킨 불꽃에 말보로 레드의 끝을 가져다대고 한번 빨아들이면, 그의 담배 끝에도 불이 옮겨 붙는다.
"그래도...자유의지는 최소한의 인간성이라고..."
친구에게 하려던 말을 한참 뒤에서야 혼잣말로 되뇌이던 그의 담배가 어느새 다 타버려 짧게 줄어 있었다. 그렇게 한대를 더 태우고, 방으로 돌아오니 친구는 이미 따듯한 곳을 점령한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이불을 하나 더 펼처서 친구의 몸을 덮어주고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그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를 찾아 폴더를 뒤적이다, 지아의 속상해서를 발견하고 재생한다. 몇시간이나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가 오유에 들러 베스트게시판을 뒤적인다. 딸칵. 클릭해서 펼쳐진 화면의 어떤 것도 그를 웃게 만들진 못했다. 그는 다만 가벼운 미소를 짓다가 이제 잘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다.
페이스북에 들러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안부에 답장해주고, 다시 오유에 들러 술 한잔 했어요 게시판을 클릭한다. 하나하나 읽어보다가 술취한 김에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고,
마지막에 글쓰기 버튼으로 마우스를 옮긴다.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도 뭔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건 블로그나, 미니홈피나, 페이스북에도 쓸 수 있는 것이란 걸 잘 알지만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심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혼잣말을 길게...늘여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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