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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 유병언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가?
게시물ID : sewol_237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빵나무
추천 : 1
조회수 : 16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01 13:01:32
출처 - http://inbusan.tistory.com/1102
 
 
출생과 신앙을 갖게 된 배경
 
유병언 회장은 일본 교토에서 자영업을 하던 한국인의 아들이다. 소년 시절 대구에서 자랐다. 1968년 이미 태권도가 5단이었다고 한다. 무술을 통해 전경환씨와 친분을 맺은 게 계기가 되어 사업을 하는데 도움을 받게 된다. 정동섭교수는 CBS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구원파의 실체를 이야기 해 주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밝혔다.
 
딕욕(Dick York)이라는 자칭 선교사는 1950-60년대 한국에 들어와 '정통 기독교에는 구원이 없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정통 교회의 교리를 부정하고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유병언과 박옥수는 딕욕 선교사의 수제자였다. 권신찬은 같은 시기에 화란인 독립 선교사 케이스 글래스(한국명 길기수)에게 영향을 받고 침례를 받았다. 1965년경 권신찬 씨와 유병언은 외국 선교사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독자 노선을 걷는다.(정동섭 115)
 
초기의 유병언은 겸손과 섬김으로 무장된 사람이었다고 한다. 대구 제일 모직 여공들과 대구 근교 복성동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했다. 대구공성운동장 맞은편에 있던 유씨의 집 칠성예배당을 본거지로 삼았다. 그는 모든 사람을 겸손하게 대했으며, 사람들은 유병언을 유형제로 불렀다.(116)
 
 
구원파 본산은 대구에 있는 대구 대명 중앙교회이다. 현재 대구 대명 중앙교회는 여전히 존재한다.(대구 남구 안지랑로1024) 딕욕과 단절한 권신찬 유병언은 대명중앙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설립한다. 권신찬은 1996년에 죽었다. 이들과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이요한은 1983년 헌금을 사업에 이용하는 유병언을 반대한다. 그러나 유병언과 추종자들은 이요한을 집단 구타하고 결국 이요한은 대한예수교침례회를 만들어 또 다른 구원파를 이끌고 있다. 현대 이요한은 서울중앙교회를 이끌고 있으며,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115)
 
교인들이 증가하자 유씨는 자신감을 얻고 서울 인천 안양 등지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 그는 예배가 아닌 구원 받은 성도들의 교제가 메시지의 중심이었다. 교제가 기도이며 예배라는 잘못된 교리를 만들어 전파했다. 이때부터 그는 겸손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서울 약수동의 성동교회에서 그들의 교리에 미혹된 선교사 3명과 한국인 목사 2명에게 목사 안수를 받는다. 1969년부터 한국 평신도 복음 선교회라는 단체명을 사용했다.(117)
 
1970년대 초반에 유씨는 미국 국제복음주의동맹선교회에서 설립 운영하던 극동방송에 부국장으로 취임한다. 당시 이곳에 장인이었던 권신찬이 방송목사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미국인 국장의 기존행정체제를 무시하고 자기만의 거만한 행정가로 군림한다. 특히 장인이었던 권씨는 <은혜의 아침>이란 설교방송에서 기존 교회의 예배와 십일조 헌금 직분제 등을 비판하고 율법적인 것으로 몰아갔다. 결국 많은 충돌이 일어나자 구원파 소속 교인들을 모두해고하게 된다.
 
사업가로 변신, 전두환 전경환씨와 관계
 
74년 이후 유병언은 사업가로 변신한다. 부도직전에 있던 부실기업인 삼우 트레이딩을 인수하여 사장에 취임한다.(1984) 이 때 유씨는 자신을 목사라 부르지 말고 사장이라 부르라고 말한다. 이 때는 영적 산아 제한론을 펴 의사 대학교수 연예인 정부고관 부유층을 구원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씨가 주도하던 삼우트레이딩과 주식회사 세모는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라고 주장한다. 송재화 씨와 1987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으로 숨진 박순자, 같은 해 이혼당한 강 모 여인이 주로 사업에 필요한 방대한 자금을 담당해 개발실로 공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18)
 
유씨는 자신이 사업을 새마을 운동 사업의 성공사례로 선전했고, 오공시절 전두환은 그의 업체로 종종 방문했다. 성공적인 중소기업 사장으로 TV에도 자주 출연했고, 신문 등에도 얼굴이 자주 나왔다. 당시 새마을운동 본부장이었더너 전경환 씨는 오대양 사건이 있기 14개월 전인 198668일부터 그해 말까지 4차례에 걸쳐 대전에 있는 오대양 본사를 방문 격려했다.(118)



 
오대양 사건

오대양 사건은 1987829일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에 있는 오대양() 구내식당 천장에서 32구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이다. 다른 말로 오대양집단자살사건 [五大洋集團自殺事件]으로 불려 진다. 그러나 자살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 부검을 맡았던 의사에 의하면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지만 무슨 일인지 세차례에 걸친 검사 모두 자살로 결론 지었다. 바로 이부분이 배후세력이 존재하지 않느냐는 의혹이 있는 것이다.
 
1988년 3월 30일 동아일보는 전경환씨가 오대양 사건의 배후도 지원하고 있다는 기사를 낸바 있다. 당시의 대부분의 매체들은 전경환씨가 오대양 사건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도 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자살로 결론 지었다고 한다.


교인들의 헌금과 모금으로 사업을 일으킴
 
1) 신용협동조합을 이용함

유씨의 사업은 대부분이 교인들의 헌금에서 왔다. 부인 명의로 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자금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의 회사를 살리는데 사용했다.
 
1991년 엄기영 앵커의 방송에 의하면 대구보전신협동조합의 세모의 지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을 보도했다. 대구보전신협동조합은 78년 대명 중앙교회 신도 50여명이 출자해서 설립했다. 당시 총자신이 463백만원 대출금인데 대출금 36억원 정도가 대출금이란 이름을 세모로 흘러 들어갔다. 이것을 볼 때 보전신협은 세모의 자금을 대는 역할을 한 셈이다.
동영상 링크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1/1850212_13443.html
 
2) 헌금과 모금을 이용함

[유 사장은 사업을 시작한 후 오늘까지 사업경영의 무리로 인하여 발생하는 적자 요인 무리한 사업 확장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자금을 교회의 헌금에 의존해 왔다. ... 1975년경부터 지방교회으 십일조는 서울로 끌어올렸고, 대전 문화동 꽃동네 모금 운동, 병원 짓기 모금 운동, 수양관 건린 모금 운동 등 각종 돈 끌어 모으는 운동을 전개하여 왔다. 유 사장이 여러 차례에 걸쳐 여러 명목으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성도들을 기만하여 끌어 모아 거의 사업에 전용하였지만 그 내역을 밝힌 방도는 없는 것이다. 이 내용은 유병언의 상습 사기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을 통해 사실로 판명된 내용이다.](정동섭 p.191)
 
 
한편 주식회사 세모의 경산공장 직원 45세대도 경산 계양 주공아파트에서 모두 외부와 거의 접촉을 끊은 채 폐쇄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엄기영 앵커)
 
과천에서 (주)세모가 짓다 그만둔 우정병원의 경우만 봐도 진정한 기업 경영 정신이 없는가를 그대로 보여준다.(http://www.ilyoweek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67) 부의 축적만을 위한 경영이 결국 화를 부른 것이다.


3) 노동력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
 
정동섭 교수는 당시 40만원 받던 시절 자신은 1/10에 불과한 4만원을 월급을 받으며 일했다고 주장했다. 즉 교인들을 회사의 직용으로 채용하여 노동력 착취 방법을 동원해 개인의 부를 축적한 것이다. 오대양사건 3차 검사가 이루어진 1991726일 연합뉴스 기사에 의하면, 경산에 있는 세모의 직원들은 경산 주공 아파트에서 단체로 거주했고, 대부분이 구원파 신도 였다고 보도 했다. 경산시 계양 아파트 113동과 107동을 구입해 집단으로 살았다고 한다. 주민들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71681


1991년 유씨의 사기를 다룬 경향신문의 일부
각종 신문매체가 유씨의 사기와 부동산 투기 등을 다루었지만 너무도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 되었고, 수천억대의 사업가로 변신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는 큰소리 치고 있으며,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아무런 대책도 사죄도 없다.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

저자
정동섭이영애 지음
출판사
죠이선교회 | 2010-12-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구원파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참된 희망을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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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의 정체

저자
편집부 지음
출판사
월간현대종교 | 2009-01-1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머리말] 본 자료집은 세 분파의 구원파에 대해,(1)설립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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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정동섭의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에서 상당 부분 옮겨 왔으며, 신문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수집된 것임을 밝힙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정동섭 교수의 책과 월간 종교의 <구원파의 정체>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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