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23일(현지시각) 중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3에서 A1으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2011년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한 단계 올린 지 6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렸다. 무디스가 중국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1989년 이후 처음이다.
무디스는 이날 성명에서 “중국의 부채가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재무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신용등급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A1은 일본과 같은 등급이고, 한국(Aa2)보다 두 단계 아래다. 무디스는 “중국 경제 전반의 레버리지(차입)가 향후 몇 년간 더 늘어날 것”이라며 “앞으로 개혁이 레버리지 증가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막을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정부가 진행 중인 개혁 조치가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바꿔 나가겠지만, 경제 전반의 과다한 부채를 단기에 해소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봤다.
중국 정부는 6% 이상의 경제성장률 유지에 매달리면서 일관되게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는데, 이 과정에서 은행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설명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몇 년간 중국 경제를 성장시킨 동력은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었다”며 “이런 마중물 정책 때문에 신용대출이 늘고 부채가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008년 160%에서 지난해 말 260%로 뛰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국가부채가 많다. 특히 기업부채는 GDP 대비 약 166%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급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차입 감소를 위한 각종 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나 가시적인 효과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경제가 과도한 부채로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금융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는 2015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3월 무디스가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배경이기도 하다. 늘어난 부채는 경제성장률도 주춤하게 만들었다. 무디스는 향후 5년의 잠재성장률이 5%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2010년 10.6%, 지난해 6.7%에 비하면 급속한 하락세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성장 잠재력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할만한 대목이다. 대신 무디스가 등급전망을 ‘안정적’으로 다시 상향조정한 것은 추가적인 등급 강등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의 구조개혁이 잘 진행되면 금융리스크를 어느 정도 상쇄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무디스의 이번 신용 등급 하향 조정에 대해 중국 정부는 즉각 성명을 내고 “전혀 근거 없다”며 반박했다. 중국 재정부는 “중국이 직면한 어려움을 과대평가하고 중국 정부의 노력은 과소평가했다”며 “올 1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이 6.9%로 전년 동기 대비 0.2%포인트 올랐고, 주요 경제지표는 예상을 웃돌았으며 경제구조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토퍼 볼딩 중국 인민대 HSBC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중국에 심리적 타격을 주겠지만, 중국의 부채는 외국인이 아닌 중국 정부과 공기업이 대부분을 지고 있기 때문에 큰 흐름에서 보면 국제적 파급은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의 대외채무는 GDP의 12%로 국제 기준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때문에 부채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보다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중국 금융시장은 한때 출렁였으나 곧 안정을 되찾았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장중 한 때 전거래일보다 1.3% 하락하며 3000선이 위협받았으나 최종적으로는 0.07% 오른 3064.07에 거래를 마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상하이지수의 마지막 반등은 중국 정부의 개입 덕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위안화 가치는 전일 대비 0.14% 떨어졌다. 중국 인민은행은 달러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6.8758위안으로 고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