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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1)
게시물ID : readers_238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쁘지효
추천 : 1
조회수 : 4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1/31 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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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아이. 

 나이는 5세 전후, 외동에 부모는 맞벌이 부부, 손톱에 잔뜩 낀 때와 여자아이 머리끄댕이를 잡아끄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아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악동, 집엔 날뛰는 강아지 한마리가 있고 저 아이 또한 강아지 못지않게 날뛰리라.

 지금도 예쁘게 차려입은 유치원 선생의 치마 속을 들추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내 추측이 맞다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 뭐하느냐고? 

 활자 속에서 현대까지 살아남아 난도질 당하는 셜록을 추종하는 셜로키언? 뭐 반쯤은 맞다만 탐정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반대다. 추리소설에 등장은 하지만 그 역할이 반대인 것이다.

 교묘한 트릭도, 눈 돌아가는 복잡한 살해방법이 아닌, 간단히, 그러나 실속있는 범죄를 저지르는 흔적 없는 범인, 그게 내 역할이다.

 나는 킬러다. 

 킬러란 전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직업이고, 전문적이라 함은 일을 하면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뭐, 돈을 벌기위해 생면부지의 사람을 죽인다는 점에선 강도 살인과 다를 바 없다. 차이점이라곤 보수의 값어치와 쓰잘데기 없는 내 자존심뿐이다.

 사실 청부살인이란 일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보듯 총칼이 난무하는, 하드보일드 액션은 결단코 아니다. 그저 굳은 결심과 실행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수있는, 그저 그런 일이다.

 사람이란 생각보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을 살리기보다 죽이기가 쉬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살리는데엔 십수년간 경험을 쌓은 의사 선생이 필요하지만 죽이는데엔 그저 실연당한 남자 한명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세상을 가진 나이라는 20대인 내가 연금도, 주휴수당도 노후보장은 커녕 노후까지 살아있을 수 있기나 싶은 이 길에 뛰든 이유는. [양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생활고에 지친 그녀는 그만 어두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는 이유라고 해두자.

 사실과는 몇몇 다른 부분들이 많다만 - 특히나 성별에서 - 사실대로 다 말해버릴 수 없는 직업이니 부디 감안해주길 바란다. 나 하나 뿐만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을, 악행으로 엮인 내 의뢰자들 문제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같은 -패스 시리즈처럼 감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이란 감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감성이 있어야 의뢰자가 왜 피해자를 죽이고 싶은지 공감할 수 있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감성이 살아있어서일까? 오늘 나는,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1.

 170cm의 키, 마음대로 조절가능한 60kg대의 몸무게, 별다른 특징없는, 오히려 착해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얼굴. 손질안한 덥수룩한 머리에 면바지에 큰 스웨터를 입고있는 청년.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수십번씩 스쳐지나갈 인물상 중에 하나인 나는, 횡단보도 너머에서 노란 유치원복을 입고 있는 유치원생들 중 한명을 관찰하고 있다.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연기를 하며.

 오늘 밤 불타오르기 위해서인지 나풀나풀거리는 꽃치마를 입은 유치원 선생의 치마속을 들추려다 실패해 한차례 호되게 혼난 타겟은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는 그새를 못참고 옆 짝궁의 쌍갈래 머리를 쭉쭉 잡아당기고 있다.

 전생에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아직 5살 남짓한 아이에게 살해 의뢰가 들어왔다. 난감하기 짝이없다. 지난 몇년간의 의뢰 중 어린아이는 처음인 것이다.

 살해 목적은 층간소음.

 저음파 우퍼고 뭐고 강력한 대응을 해봐도 소용이 없어 나를 고용한 모양인데....... 차라리 의뢰비를 윗층에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다. 재앙은 미묘한 점에서 온다지만 그래도 소음 때문에 사람 하나를 죽이다니. 어디 무서워서 살겠는가?

"누구 하나 죽어나가면 조용해지겠지. 특히 밤이고 낮이고 뛰어다니는 녀석이 죽으면 말이야."

 분노에 찬 목소리가 말했다. 핏발이선 두 눈으로 짐작해 보건데 제대로 잠도 못잔 모양이다. 이런 점에선 이번 타겟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순없다.

 어찌 됐든 난감한 참이다. 어린 아이라니. 죽이는건 어렵지 않다. 다만 그 과정과 후폭풍이 문제일뿐.

 어린이집은 각 방마다 CCTV가 설치되어있고 어딜 가던 미모의 유치원 선생이 쫒아다닌다. 맞벌이 생활으로 자식을 잘 돌보지 못해 값비싼 유치원을 보낸 모양인데, 경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5살 아이가 혼자 돌아다닐 일은 없고 어딜가던 부모나 선생이 대동한다. 부모도 어지간히 바쁜 모양인지 도보로 걸어다니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무래도 킬러생(生) 최악의 적을 만난듯 싶다.

 부아아아아앙

 그렇게 타겟을 관찰하던 중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옆에서 무언가가 뛰쳐나간다. 평소같으면 어지간히 급한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신호등이 진즉에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었음에도 기다란 검정 세단이 기필코 교차로를 건너려는지 있는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고 횡단보도를 덮치고 있다는 점이다.

 허벅지에나 닿을까? 붉은 그 무언가가 튀어나감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성큼 걸음을 내딛는다.

 '쯧, 어린이들은 손을 좀 들고 건너주면 좋겠는데.'

 신호등만을 뚫어져라 보고있는 운전자는 앞이 기다란 보닛 덕에 아이를 보지 못했는지 여전히 엑셀레이터에 발을 올리고 있다.

 찰나의 순간, 운전자의 눈빛과 내 옆에서 튀어나간 아이를 번갈아 본 내 몸이 제멋대로 튀어 나간다. 수많이 맞이한 죽음이 또 한번 코를 스치자 이미 무언가의 허릿춤을 틀어쥐고 아스팔트를 한바퀴 대차게 구른 참이다. 보도 위 모든 사람이 내게 집중한다.

 이런, 난감하다.

2.

 "야이 씨%^!!@#$!!"

 검정색 고급 세단 운전자는 마음만큼은 고급이지 못한지 욕을 한사발 날리고는 끼익- 소리 한번 내지않고 매끄럽게 횡단보도를 빠져나간다. 다행히도 나나 아이나, 어디 다친 곳 없이 무탈하다. 아끼던 스웨터에 먼지가 잔뜩 묻은 것만 빼면.

 "괜찮아?"

 검정 에나멜 단화에 무릎까지 오는 하얀 양말, 빨간 코트에 밝은 갈색 머리의 아이, 소녀라고 하기에도 앳된 아이는 핏줄마저 비칠듯한 하얀 피부가 새파랗게 질린 채 손가락만 바들바들 떨고있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동등하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죽음이란 개념도 안 잡혔을 어린아이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두려움에 질린 새파란 두 눈동자가 휭- 휭- 쏘다니는 자동차들 대신 내 뒤편을 연신 힐끔거리는 점은 당연하지 않다.

 약간의 석연찮음을 느끼며 우선 잔뜩 겁에 질린 아이를 진정시키려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인다. 요즘엔 이런것도 성추행이라지만 추행이라면 조금 전 아이를 구할때 이미 했다.

 "이름이 뭐야?"

 도리도리

 어깨까지 닿는 단발을 치렁이며 조심스레 고개를 내젓는 아이. 어지간히 부모에게 교육을 잘 받았나보다. 나이는 타겟과 얼추 비슷한 다섯살 전후.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 이 나이대 아이들이 홀로 다닐일은 드물다.

 "부모님은 어디계셔?"

 또 한번의 도리질.

 이쯤 되면 구해준 이쪽이 다 난감해질 지경이다.

 "음... 그럼 부모님 전화번호라던가, 목걸이라던가 가지고 있는건 있어?"

 아이들은 길을 잃을 때를 대비해서 집 전화와 이름등이 적힌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법이다. 요샌 기술이 발달해 GPS나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사이렌 소리를 울리는 것도 있단다.

 잔뜩 경계를 하는 아이를 향해 상대방의 방심을 노리는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날려보지만 먹통이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문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기만할 뿐이다. 이질적인 새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우리 경찰서로 갈까?"

 하아... 제발로 경찰서로 가야하다니 이런 외통수도 없다. 그러나 이것도 소용없는지 아이는 내 두눈을 똑바로 보며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다.

 이건 불가항력이다.

3.

 "와- 고양이다."

 붉은 코트를 입고있는 아이가 발바닥이 시커면 양말로 집으로 들어간다. 이게 뭐하는짓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살인 청부 업자의 아지트에 어린아이라니! 하지만 괜찮다. 언제 급습할지 모르는 경찰들을 대비해 집 정리는 잘 해두는 편이니까.

 난데없는 침입자에 야옹! 하고 자고있던 갈색 고양이가 깜짝 놀라 펄쩍 뛴다.

 코리안 숏헤어, 속칭 길고양이나 도둑고양이로 불리는 이 요물은 나와는 철저히 계약관계에 놓인 녀석인데 저 아이처럼 여자들은 고양이를 보면 긴장을 풀기 때문이다.

 건장한 남성이 생면부지의 독신여성의 집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데, 그 방책으로 마련한 것이다. 저 고양이는 현관문에 달린 안전고리 틈을 귀신같이 비집고 들어가는 요물이기 때문이다.

 "갸아아아앙!"

 고양이가 질색을 하며 볼을 부비적대는 아이에게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러나 아이들의 잔혹성은 때론 무서운 것이어서 쉽사리 빠져나올수 없다.

 한차례 비명을 지른 고양이가 아이 얼굴에 체크무늬를 그릴 작정으로 발톱을 세우고선 나를 쳐다본다.

 '대체 무슨 봉변이냐?'

 어쩔 수 없이 나는 아껴뒀던 조각만한 참치 캔 하나를 품속에서 꺼낸다.

 '딜?'

 세로로 눈을 잘게 뜬 고양이가 손에 든 참치 캔을 보더니 발톱을 쏙 집어넣는다.

 "냐하아아앙"

 아이가 고양이의 배를 급슴함에 고양이가 기분좋은 비명 소리를 내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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