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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2 -
게시물ID : panic_231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7
조회수 : 9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0 21:57:37

 (1회에 이어)

 양호실에 실려 간 그애를 머리 위에서 지켜보며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해내려 애썼다. 사실 반 아이들이 그애를 살필 때 이름이 한 번쯤은 불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애는 딱 세 단어로 불렸다. 야, 벙어리, 아다다.

 나와는 대각선으로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애였다. 나는 뒷문 근처의 맨 뒷자리였고 그애는 창가 쪽 맨 앞자리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애는 자기 자리에서 거의 꼼짝하지 않았다. 내가 그늘에 숨어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양호선생님이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있을 때 그애가 눈을 떴다. 눈동자만 굴려 사방을 살피더니 급하게 눈을 가렸다. 나는 바깥 창턱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애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간 말도 붙여보기 전에 퇴마사부터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우리집은 텅 비어있었다. 무언가 음식이 상한 냄새가 현관에서부터 나를 맞이했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가스레인지 위에 놓여있는 국 냄비가 문제였다. 가족들이 없을 때 대신 치우고 싶었지만 냄비마저 나를 자유자재로 통과했다. 기분이 있는 대로 상했다.

 거실에는 빈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림잡아 스무 병이 넘어 보였다. 모두 초록색의 같은 술병이었다. 이건 아빠답지 않았다. 아빠는 술에 있어서만큼은 브랜드와 종류를 고집하지 않았다. 술 분야에서 만큼은 전문가라고, 아빠가 엄마한테 자랑하듯 말했었다. 그때 엄마는 그 신경을 보석에도 써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농담처럼 대꾸했다. 새가 모이 먹듯 밥을 먹고 있던 누나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이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다이아 반지를 사드리겠다고 큰 소리를 쳤었다. 그 말에 엄마가 소녀처럼 웃었던 게 언제였던가. 나는 먼지가 주인 행세중인 내 방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렇게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았다.

 집안을 독점하고 있던 오후가 물러가고 어둠이 그 자리를 채웠을 때 갑자기 어떤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서늘했다. 나는 그곳으로 이동했다. 어느 건물 옥상이었다. 누군가 의자 위에 올라 서있었다. 그 낯설지 않은 뒷모습이 옥상에 둘려진 철제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들…”

 나는 얼어붙었다. 이 목소리는!

 “아들…”

  엄마, 지금 뭐하는 거예요? 

 “미안하다… 아무 것도 몰라줘서…”

  엄마! 그 위에서 내려와요, 당장!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니..?” 

  엄마, 제발!

 “미안하다… 정말……”

  엄마!!!

 난간 저 밖으로 엄마의 몸이 기울어지려는 순간, 내 몸을 사정없이 관통하는 팔이 있었다. 

 “미쳤어? 엄마까지 이러면 나는 어떡해! 아빠는 어떡하고!”

 엄마 밑에 깔려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누나였다. 두 사람은 그 곳에서 한참을 껴안은 채 엉엉 울었다. 나는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내 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우리집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아빠가 구두도 벗는 둥 마는 둥 현관에 드러누워 흐느끼고 있었다. 그 한 옆에는 술병이 적잖이 담긴 마트 봉지가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비가 내리는 곳을 찾아가 빗줄기를 향해 얼굴을 들이댔다. 


 다음날, 나는 누구보다 학교에 일찍 갔다. 사실 아무 곳에나 갈 수 있으면서도 딱히 갈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생각난 곳이 학교 교실이라는 게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내키는 마음으로 가보고 싶었다. 사실 교실 창가 자리에 앉아보고 싶었다. 중학생 때 병이 생긴 뒤로 햇빛이 진하게 드는 자리엔 앉을 수가 없었다. 실내 체육관이 있는 고등학교에 와서야 체육 수업도 받을 수 있었다. 안그래도 허옇게 일어난 얼굴에 햇빛을 받으면 각질이 더 심해졌다. 전교에서 유일하게 챙 모자를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허락받은 학생이 나였다. 하지만 그 특혜가 나를 더욱 눈에 띄게 만들었다. 

 한 녀석이 교실에 오자마자 물티슈를 꺼내 그 자식의 책상을 닦았다. 길쭉한 얼굴에 몸도 마른 편이라 ‘면봉’으로 통하는 녀석이었다. 남은 물기는 자기 똥 닦을 때에도 쓰지 않는 고급 티슈로 닦아냈다. 세 명이 그 자식의 책상을 관리했다. 일주일씩 교대로, 물티슈와 휴지 값은 각자 알아서 부담했다. 그럼에도 그 자식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고맙다는 소리 한 번 안했다. 

 나는 그 자식의 어깨 위에 목마 타듯 올라앉았다. 칠판을 짚으며 열심히 설명하는 선생님과 눈높이가 맞으니 신기했다. 수업을 듣다가 지루해지면 조는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야, 정신 차려! 그래도 수업이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앞머리 뒤에 숨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애의 이름이 생각났다. 정아. 성은 글쎄...

 내가 손을 흔들까 말까 하는 고민하는 사이, 정아가 고개를 야멸치게 돌렸다. 나는 그 자식의 정수리에 한 팔을 괴고 턱을 받쳤다. 정아가 아주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만 쫓고 있던 그 자식의 눈이 정아를 향한 것은 그때였다.

 정아는 또다시 나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 마냥 고개를 홱 돌렸다. 그건 마치 ‘그래, 내가 너 쳐다봤어’ 하고 순순히 자백하는 것 같았다. 그 자식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나는 정아를 향해 손을 내저었지만 정아는 또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정아가 자기를 쳐다본다고 착각한 그 자식은 위협적으로 눈알을 부라렸다. 나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때렸다. 

 마지막 수업시간을 앞두고 정아는 교무실을 찾아갔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조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담임은 이유가 뭐냐고 묻다가 정아의 얼굴색을 보고는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한 여름에 걸리는 감기가 더 무섭긴 하지. 병원 처방전 복사해서 갖고 와라.”

 정아는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나 때문인지 땅만 보고 걸었다. 큰 길에 다다르자 돌연 택시를 불렀다. 어른들도 벌벌 떠는 모범택시가 왔지만 정아는 그냥 올라탔다. 나는 택시 천장에 올라앉아 부채꼴 간판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엄청난 속도의 바람이 나를 무자비하게 통과했다. 입에서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아네 집은 마당이 있는, 꽤 넓은 집이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 눈길이 간 곳은 방문 마다 위쪽에 걸려있는 작은 십자가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에서 어떠한 마력도 느낄 수 없었다. 2층에 있는 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아는 집안 어딘가에서 십자가와 묵주, 성경을 가져와 자기 주변에 늘어놓았다. 나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옷장 위에서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도무지 말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정아네 집에서 철수를 하고 나는 그 자식을 찾아갔다. 학교가 끝나고 그 자식이 가는 곳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 달 레슨비가 우리 아빠 월급하고 비슷한 비밀과외 교습소였다.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에서 보낸 자가용을 타고 강남으로 배달되는 일정이 일주일에 세 번. 지금이라면 고급 오피스텔에서 몰래 수업을 받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그 자식의 어깨에 올라앉아 과외수업을 구경했다. 그 자식은 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과외선생의 얼굴에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 집중했다. 하지만 책상 밑의 사정은 달랐다. 그 자식의 한 쪽 발이 맞은편 여자애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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