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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4 -
게시물ID : panic_231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7
조회수 : 9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0 22:19:33

(3회에 이어)


 -괜찮아?

 정아는 비좁은 골목길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냥 봐도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

 정아의 몸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말을 쏟아냈다.

 -그래, 나 귀신이야! 하지만 너 해치지 않는다고! 진짜야!

 침묵이 흘렀다. 정아는 여전히 보도블록만 쏘아보고 있었다.

 -그냥… 괜찮냐고. 괜찮으냐고.
 “이, 이, 이런… 화, 화, 환청.. 까, 까지, 드, 드, 들리네…!”
 -환청 아냐! 

 정아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하긴 내가 살아있었을 때 귀신이 눈에 보이고 그 말소리가 들렸다면, 나는 그런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정아가 다시 골목으로 들어왔다. 헌데 뒷걸음질이었다. 나는 얼른 골목 밖으로 나가보았다. 저만치 앞에 낯익은 승용차가 서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내렸다. 그 사이, 정아는 대문을 열어놓고 사는 다가구 주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애의 이마에서 땀이 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얼마 뒤 골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그 자식네 운전기사였다. 그는 욕을 내뱉으며 골목 가장 안쪽까지 대충 훑어보고 나갔다.

 -이제 나와도 돼.

 정아가 집에서 나왔다. 나는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얼른 말을 꺼냈다.

 -듣기 싫어도 이 말은 들어야 돼!
 “모, 모, 모, 몰라…!”

 애써 외면하며 빠른 걸음으로 가버리는 정아. 나는 그애한테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했다. 

 그 사이 집으로 간 줄 알았던 그 자식은 노래방 안에 있었다. 청소년 우대가격이 없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애들 사이에선 비싸서 안가는 곳이었다. 선곡에 맞게 최신 뮤비가 딱딱 나와주는 모니터 위쪽엔 예약곡 번호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자식은 노래 대신 소파 위에 작은 다트판을 세워놓고 다트를 던졌다. 노래 반주가 방 안에 가득 차있었지만 다트가 꽂히는 순간의 소리는 완전히 묻히지 않았다. 다트판에는 A4지에 인쇄한 누군가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가만 보니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묘하게 그 자식을 닮은 것이… 순간 나는 그 자식을 새삼 쳐다보았다. 사진 속 중년남자를 본 것은 다름아닌 그 자식의 집에서였다. 진한 향수냄새를 온 사방에 흘리고 다니던 배불뚝이 아저씨. 바로 그 자식의 아빠였다.

 다트는 그 자식의 것과 꼭 닮은 입술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양쪽 눈동자는 이미 벌집이 되어있었다. 그 자식은 다트를 던질 때마다 외쳤다. 개자식, 씹새끼, 죽어버려!

 나야말로 그 욕들을 그 자식한테 고스란히 던지고 싶었다. 그럼에도 살기 가득한 눈으로 다트를 던져대는 그 자식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자식은 자기 아빠 얼굴에 왜 그런 짓을 하는 것일까.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래도 그 자식은 다트질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그 자식네 집으로 갔다. 그 자식이 집에 없는 건 알았지만 잠깐 볼 게 있었다. 주방에는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 그 자식의 아빠와 처음 봤을 때 가정부인줄 알았던 그 자식의 엄마가 있었다. 

 아줌마는 많지도 않은 밥을 세 수저 이상 연이어 먹지 못했다. 아저씨는 아줌마가 애써 발라놓는 생선살을 주저없이 집어먹으며 계속 뭔가를 요구했다. 물. 목적어만 있고 주어와 서술어는 없었다. 아줌마는 잘 훈련된 시종처럼 민첩하게 생수를 대령했다. 나물. 집어먹는데 팔을 뻗어야 하는 반찬은 꼭 아줌마를 시켜먹었다. 얼마 안 보고 있었는데도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저씨는 그렇다 치고, 이 아줌마는 왜 이렇게 찍소리도 못하고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해주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팔자걸음으로 2층에 올라온 아저씨는 방문을 걸어 잠그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이교수. 나야.”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스스럼없이 반말을 하고 있었다.

 “라운딩 한 판 어때? 어, 오늘. 좋아, 그럼 거기서 보자고.”

 아저씨는 원래 진짜 용건이 이거였는지 전화가 끊길세라 얼른 말을 덧붙였다.

 “왜 그 지난번 걔네들 있잖아? 쭉빵이 귀요미들. 또 보고 싶은데. 자네 제자들이라 그런지 뭐가 달라도 다르던데… 오늘도 부를 수 있겠지?”

 그 두툼한 입술에서 ‘귀요미’란 말이 나오는데 ‘웩’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럼 지금 자기네 노는데 대학생 누나들을 데려오라는 말인가? 기가 차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아저씨를 배웅하는 아줌마는 시선도 맞추지 못했다. 손질이 잘 된 양복을 차려입은 아저씨는 나가면서 어디 다녀오겠다는 말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줌마가 묻는 일도 없었다. 잘 다녀오시라고 말하기 전에 뭔가 말을 삼키는 것을 나는 목격했지만 말이다.

 이런 큰 집에 일하는 사람이 안보이는 것도 이상했다. 아줌마는 앞치마를 벗지 않았다. 내가 귀신이 아니었다면 이 아줌마가 이 집 가정부라고 단정 지었을 게 틀림없었다.

 못 볼 것을 본 것 같아 그만 나가려는데 그 자식이 들어왔다. 현관에서 아줌마를 본 그 자식은 아줌마의 앞치마와 물 떨어지는 고무장갑을 보더니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고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아줌마는 아들이 방금 전 사라진 계단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나는 정말 묻고 싶어졌다. 아줌마, 왜 아무 말도 못해요?

 그 자식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옷을 벗어 이리저리 내던지며 혼자 막 성을 냈다. 자기가 식모야? 그렇게좀 살지 말라니까 왜 만날 그 모양이야! 그러더니 침대 위의 베개를 집어 샌드백처럼 두들겨댔다.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젠 진짜 이 이상한 집에서 벗어나려는데 거실에 벗어놓은 앞치마가 보였다. 아줌마는 방에서 옷장을 활짝 열어놓고 옷을 고르고 있었다. 내가 아줌마들 옷은 잘 모르지만 우리 엄마것보다 좋아보이는 게 많았다. 그 중 여러 벌을 꺼내어 자기 몸에 대보더니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화장이 진해질수록 지금껏 내가 본, 단단히 주눅 들었던 아줌마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강한 인상의 새로운 사람이 되어갔다. 머리를 말아 올리고 옷을 차려입자 아줌마는 누가 봐도 있어 보이는 사모님이 되었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아줌마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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