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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6 -
게시물ID : panic_231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7
조회수 : 9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0 23:14:28
 

 (5회에 이어)


 “그… 그 귀, 귀, 귀신이… 누, 누군데…?”

 이 타이밍에서 정아가 빤히 쳐다보자 그 자식이 엉덩이를 급히 뒤로 뺐다. 혼자 보기엔 아까운 광경이었다. 정아가 연습장을 아무데나 펼쳤다. 그 자식의 눈이 동그래졌다.

 「몰라 그것까진」
  “하… 그래도 뭔가 보, 보이는게 이, 있을 거 아냐?”

 답을 쓰기 전 ‘네가 참 딱해 보인다’는 느낌으로 한숨을 쉬는 정아의 연기는 죽여줬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우리 또래의 남자아이 같다는 느낌은 들어」 

 나는 그 자식의 눈에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며칠 전. 

 옆 반에서 분신사바를 진지하게 하고 있는 2인조를 발견했다. 그리고 매일 지켜보았다. 점심시간엔 꼭 판을 벌이고 구경꾼도 서너명은 늘 있어줬다. 볼펜 하나를 맞잡은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착각하는 힘으로 볼펜을 움직였다. 나는 혼자 막 웃다가 둘 중 한 사람의 손에 내 손을 넣고 힘을 주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었다. 그런데 연습장에 삐뚤빼뚤 그려지고 있던 동그라미가 조금 진해졌다. 나는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 번 시도해보았다. 동그라미의 모양이나 진하기가 더 분명해졌다. 나는 복도를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심봤다!!

 그리고 때가 왔다. 바로 지금.

 “…왔어요?”

 손 주인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에요, 여자에요? 여자면 나한테, 남자면 쟤한테.”

 나는 손을 움직였다. 손 주인과 마주 앉아있는, 동그란 안경이 제법 귀여운 여자애 쪽으로.

 “그럼 나이가 몇 살? 초딩이면 1, 중딩이면 2…”

 설명을 다 듣기 전에 3을 썼다. 구경하던 아이들이 흥분했다. 우와, 고딩인가봐! 만날 어린애 아니면 할아버지였잖아? 되게 신기하다. 누군가 말했다.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봐봐. 

 “어떻게 죽었어요?”

 안경 쓴 여자애가 물었다. 

 “사고?”

 나는 직선을 그렸다. 

 “그럼 병?”

 역시 직선.

 “그럼… 자… 살?”

 동그라미를 그리자 손 주인이 놀라서 볼펜을 놓으려 했다. 구경꾼 중 하나가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야, 하다 말면 귀신 붙어! 나는 그 말을 한 애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미안하지만 아무리 붙을 사람이 없어도 걔한텐 별로 붙고 싶지 않았다.  

 “집이 어디야? 대충 써봐.”

 나는 위아래로 훑어보는 일을 계속 했다.

 “귀신한테 반말을 쓰면 어떡해…”
 “우리 또래라며?”

 삐뚤빼뚤 동 이름을 쓰자 다섯 남짓의 아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구경꾼이 불어났다. 목소리 큰 애가 자기 쪽으로 연습장을 돌려 글씨를 읽었다.

 “○○동? 아무리 봐도 ○○동인데? 그럼 요 옆 동네 말하는 거 맞아? 요?”

 이번엔 동그라미를 빠르게 그렸다. 손 주인이 무섭다고 징징댔다. 나는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하, 하나만 더… 그럼 언제 주, 죽었어…요?”

 올해 연도를 쓰자 안경 쓴 애가 비명을 질렀다. 구경꾼이 더 늘어났다.

 “그럼 학교도 이 동네 다녔어…요? 어디…”

 반말녀는 계속 쓸 만한 질문을 날려주었다. 나는 그 애를 향해 한껏 웃어보이고는 열심히 손을 움직여 썼다. 
 
 '이 학교'

 한꺼번에 여러 명이 비명을 질렀다. 안경 소녀가 볼펜을 내던지고 울음을 터뜨렸다. 손 주인은 정신이라도 놓을 태세였다. 몇 명이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댔다. 혹시 저번에 죽은 애 아니야? 진짜 옆반애면 대박인데?! 다들 구라치고 자빠졌네. 구라는 무슨, 이 학교라고 쓰는 거 내가 봤는데! 야, 그러다 너한테 귀신 붙는다?!

 청소시간이 되자 우리 반 아이들도 이 얘기로 쑥덕대고 있었다. 사실 우리 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예 내가 나타났다고 떠드는 애들도 있었다. 복도 창문을 닦는 척 그 자식의 똘마니들이 모여 집단으로 인상을 쓰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식. 겉으론 아무 일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숨소리가 보통 때보다 거칠어졌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종례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간혹 내 자리를 흘끗 보며 몸서리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자식은 책가방을 매다 말고 비어있는 정아의 자리를 보더니 중얼거렸다. 재수없어… 

 운동장 스탠드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아이들이 포착되었다. 분신사바를 하고 있었다. 써클실 여기저기서도 분신사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며 그 판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내가 나타나주길 바라는 그 애들의 바람을 결코 들어주지는 않았다.

 다음날도 학교 여기저기서 분신사바 판이 벌어졌다. 하지만 우리 반은 예외였다. 애들이 모여 떠들 기세라도 보이면 그 자식이 어김없이 핏발 선 눈을 부라렸다. 나는 꾹 참았다. 얼른 밥을 먹어치우고 교실 아닌 곳에서 판을 벌일 ‘우리 반 애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확신했다. 

 점심시간이 20분쯤 남았을 무렵, 굳게 잠겨있는 옥상문 앞 공간에 여러 명이 모여 앉았다. 백이면 백, 분신사바를 직접 하는 애들은 왜 죄다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이번에도 두 명의 여자애가 펜을 잡은 가운데 구경꾼이 이 둘을 에워쌌다. 그 중엔 면봉도 끼어 있었다. 나는 그의 이마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마구 퉁겼다.

 분신사바가 시작되고, 나는 살아있을 때 말 한번 나눠본 적 없는 여자애의 손에 내 손을 넣었다. 종이에 동그라미가 그려지자 다들 긴장하는 눈치였다. 다른 여자애가 주저하며 물었다.

 “왔…어요?”

 당연하지.

 “혹시요, 우리 반에 ‘걔’ 알아요? 저번에 죽은…”

 당근. 모를 수가 있나.

 “걔가 진짜 우리 학교 안에 있어요…?”

 누군가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시간을 끌다 부지런히 펜을 움직여 썼다. 


 '나야, 괴물'

 누가 먼저 비명을 질렀는지 아는 이는 나뿐일 것이다. 여자애건 남자애건 소리를 마구 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 중 몇 명이 복도를 질주하며 공포감을 퍼트렸다. 내가 손을 빌렸던 여자애는 층계참에서 주저앉더니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면봉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을 팔짱을 낀 채 그저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 우리 반 주변에 다른 반 아이들이 모여들고, 우리 반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자기네 반으로 날랐다. 그렇게 얻어들은 애들이 또 다른 곳으로 날랐다. 곧 우리 반 주변 복도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우리 반과 바로 붙어있는 다른 두 반에도 같은 교복만 입었을 뿐 처음 보는 애들이 찾아와 호기심을 채웠다. 엉엉 울거나 여전히 흥분에 못이겨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애들 주변은 접근조차 힘들었다. 담임이 달려오고 다른 반 담임들도 달려왔다. 신청곡을 틀어주는 방송이 중단되고 학생주임이 등장했다. 지금 모두 각자 자기 반으로 돌아가세요! 당장!

 분신사바 현장에 있었던 애들은 수업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담임 대신 교단을 지키던 그 자식은 비어있는 면봉의 자리에 자꾸 시선을 주었다. 면봉이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학교를 떠난 것도 결국은 염탐을 시킨 그 자식 때문이었다. 교실 모니터에 교장쌤이 등장했다.

 『이 시간 이후부터 교내에서 분신사바를 하다 걸리는 학생은 벌점 5점에 처합니다. 근거없는 헛소문이나 유언비어를 교내에 퍼뜨리는 경우에도 벌점 5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는 벌점이 총 10점이 되면 사회봉사활동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건 다들 알고 있겠지요? 그리고 오늘 일을 인터넷에 올리는 학생은 벌점 10점과 아울러 그 이상의 엄한 징벌에 처하겠습니다.』

 벌점의 위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나서는 아이들은 아까의 소동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운동장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얘기를 엿듣는데 기분이 남달랐다.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생각보다 빨리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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