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네요. 시간 참 잘가요. 기획했던게 애초에 1주일 집중 케어였기 때문에 오늘로 마지막 후기를...
감정 코칭이라는 용어 알려주신 분 덕에 지금 완전 폭풍 공부하네요 정보. 공감. 응원 모두 진심 감사합니다
5일 차. 오늘은 병원 가는 날입니다. 월요일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아이에게는 할머니 안온다는 조건으로 병원 가기로 하고 택시타기 진료과정 등 설명을 거듭했습니다. 근데 웬일인지... 처음으로 병원 대기실 미끄럼틀을 스스로 탔고 처음으로 진료의자에 혼자 앉아서 진찰받고 처음으로 택시에 혼자 힘으로 올라타 엄마 무릎 아닌 의자에 앉았어요 처음으로 꼬마곰 젤리도 사줘 봤어요
이런 평화를 누가 질투라도 했을까요? 저녁 준비시간이 길어지자 큰딸의 짜증이 슬슬 올라오네요 오늘의 감정놀이는 짜증이 뱉기. 스스로 달래게 해보자는 마음에 시도했습니다. 짜증이는 목구멍에 살아. 짜증이는 우리딸의 예쁜 목소리가 안나오게 방해하지. 짜증이가 막고 있으니까 뭘 하고 싶은 지도 말로 안나오고 짜증이만 자꾸 나오는 거야. 찡찡하고싶어지고 심술 나고... 그치? 우리 짜증이를 뱉어볼까? 잘 안나오면 엄마가 뽀뽀해서 대신 먹고 뱉어줄게. 후루룩! 퉤~~ 어때?
아이들의 짜증은 어른보다 그 이유가 작고 별거 아닌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싫다고 하는데 한 두번 연습하니까 진정되는 시간이 줄어드네요.
저녁 먹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조용해서 보니까 혼자 방에 들어가서 자네요. 이럴수가... 얘가 이런게 가능한 애였다니... 밤만 되면 안잔다고 난리인데 이렇게 엄마없이 스스로?! 동생 옆에서 스르르... 기적같은 하루입니다.
6일 차. 우리 딸은 뭘 잘 하고싶나요? 나는... 깡총 점프를 잘 하고 싶어요.
이 대답에 저는 눈물이 났어요. 큰애는 상담결과 자아가 흐릿한 아이라고 햇어요 자신이 누구인지 자아에 대한 탐색욕구가 작고 실제로 탐색이 된 내용이 없다고 그 날 저녁 혼자 고민해보니까 큰애는 늘 자신을 뽀로로라고 주장했거든요 상상속 뽀로로는 뭐든 잘 하고 크롱도 잘 보살피는 멋진 친구죠 하지만 큰애는 현실속에서 겁도 많고 친구나 새로운 장소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도 걸리고 몸을 크게 쓰는 운동도 잘 못하고 게다가 큰애는 동생을 매일 크롱이라고 하는데 이야기 속 뽀로로와는 다르게 자기는 크롱인 동생이 옆에 자는 것도 같이 장난감을 나눠 쓰는 것도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런 괴리감이 큰애에게는 좌절이래요 그래서 자신감이 없어지고 이야기나 케릭터에 집착하는 거 같더라구요.
큰애는 “나” 대신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해요 엄마 뽀로로는 물 마시고 싶어요. 하는 식으로요. 뭘 하고 싶냐고 물어도 불분명한 대답을 하거나 피했습니다. 말을 아주 잘하고 어휘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자신에 대해 설명하거나 감정. 욕구 등을 설명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이런 결론을 내린 무렵부터 우리 부부는 뽀로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고 인형도 살짝 숨겼어요.
그런데 드디어 나는. 깡총점프를. 하고. 싶어요.
오늘은 아침부터 이불을 모두 꺼내서 커다랗고 안전한 놀이터를 만들고 뛰어다니기 연습을 해줫어요 땀으로 범벅이 된 하루지만 애들은 숨이 넘어가게 웃었어요.
1인칭 주격 대명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네요.
7일 차. 모든 예민한 아이들의 엄마들에게는 아침이 제일 두려울거에요. 울면서 일어나면 안되는데... 오늘은 또 무슨일이 생길까... 아침에 먹을 간식은 충분하겠지? 어린이집 안간다고 하는 거 아냐?
요 며칠 이런 생각으로 눈을 떴던거 같아요 아이에게 하나하나 맞춰줘야하는 걸 생각하면 마음의 짐이 되는 거죠
감정 다스리기 연습이 딱 일주일 채워진 오늘 큰애는 스스로 울지않고 일어나서 동생 손을 잡아줬어요 안녕 크롱~
충분한 잠이 가져다 주는 꿀같은 아침 인사... 그동안 큰애가 늦게 일어나면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안자려고 한다해서 일찍 깨워서 대충 준비해서 보냈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애는 이제 곧 낮잠이 없어지는 월령이 되더라구요 낮잠을 위해 억지로 아침짜증을 만들 필요가 없구나... 어린이집 그까짓거 쫌 늦게 보내자. 아이 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이젠 더이상 피하지 말자.
큰애는 오늘 마트가기 전 동생 분유 먹이는 동안 혼자 옷을 골라입고 양말을 꺼내 신으며 기다리고 엄마 손을 잡지 않고 계단도 내려가고 혼자 길도 건너고 생선코너 아주머니가 비닐에 넣어준 생선도 받아 챙기며 눈도 마주치고 고맙습니다 인사도 하고 자기가 앞장서서 집까지 왔습니다. 길에서 뽀로로 노래 대신 거미노래 코끼리노래 등등 아는 동요 메들리도 해주고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하루...인가보다 했는데 저녁 준비하는 동안 또 어김없이 짜증이 올라온 큰딸이네요.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 옆에서 두마디 짜증내다가 갑자기 입술로 투래질을 했어요. 푸루루루루 푸푸! 짜증이 뱉기. 스스로 진정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시간도 단축되고 눈물도 없는 감정 조절. 엄마. 나 배가고파서 그랬나봐요. 이제 괜찮아요. 반찬 만든거 보여주세요. 그래? 혼자서 진정했어? 아이구 우리딸! 마음을 스스로 토닥토닥 했구나! 기특해라. 그래 그럼 우리 이제 반찬구경도 하고 맛도 볼까?
아이에게 사준 감정동화책에 이런게 나오더라구요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튼튼해져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요. 어른들이 말하는 자존감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서 잘 써놨네요. 남편은 요즘 밤마다 그 동화책을 꺼내 봅니다. 혼자 힐링한다고...ㅋㅋㅋㅋ 자기전에 어린이집 가방에 감정동화책 한권 넣고 꾸역꾸역 지퍼을 잠그는 큰딸. 도와줄까? 아니. 내가 할래. 어린이집 가서 애들이랑 같이 볼거래요. 이제 준비가 된 걸까요? 아직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건 어려운 일이 생겨도 우리딸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거에요.
지난 1주일 무슨일이 있어도 예외없이 어린이집은 보내오다가 중단하고 집에서 케어했던 이유는 저는 나름대로 비상사태라고 생각했기때문이에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혼자 놀다가 갑자기 울었다고요. 왜 우냐고 하니까 몰라요. 그냥 눈물이 나요. 그랬대요.
저는 가벼운 조증과 극심한 우울증을 오가는 조울증을 가지고 있어서 상당기간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이나 상담에 의존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명상과 요가, 병에대한 공부 등으로 스스로 치료했습니다. 조울은 유전가능성이 높은데 저의 경우는 아빠가 조울증이세요 자수성가형의 성공한 사업가이시지만 동시에 혼자 낚시를 가야만 하는 그렇게 세상과 가끔 단절해야 안정을 찾는 분이세요. 그 흔한 골프도 안치시구요. 친목질은 극혐이시래요.
저는 우리 애들한테 이런 면에서 빚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앞으로 격을 험난한 파도치는 바다에서 길을 잃고 자기 몸 하나에 의지해 표류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댓글로 추천해주신 어떤 책의 서두에서 그러더라구요 예민한 아이의 마음은 닻을 내리지 못하는 파도위의 배라고... 지금은 제가 아이의 닻이 되어주고 나중에는 스스로 아이가 닻을 내려 이겨낼 수 있게 되기까지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