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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11 -
게시물ID : panic_232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7
조회수 : 103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01/11 22:04:50

 (10회에 이어)

이럴 때 찾아갈 곳이라곤 정아밖에 없었다. 정아는 내 얘기를 듣더니 의견을 냈다.

“내, 내가, 서, 선생님한테 저, 전화를 할게. 내, 내 번호 아, 안 뜨게. 그래서, 아, 아무도 도와주지 말라고 마, 말할게. 저, 정말, 그, 그 누구도 도와주면 아, 안된다고, 그, 그렇게, 마, 말하면 조, 좀 나, 낫지, 아, 아, 않을, 까?”

담임이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히 예상 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역시나 담임은 ‘대체 누군데 이런 얘기를 하느냐’며 집요하게 물었다. 

“어, 어차피 이, 익명으로 거, 걸었는데 니, 니, 이, 이름을, 마, 말할 걸 그, 그랬나?”

정아는 저녁도 건너뛰고 함께 걱정을 해줬다. 

-아니야. 나는 담임이 내 일에서 손 떼면 좋겠어. 내 이름을 말했다간 더 파고들 거야.

하지만 담임은 정아의 경고를 무시했다. 아니, 자기의 소신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 교장실로 불려갔다. 교장쌤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몇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설명해보세요.”

담임이 안경을 벗고 사진들을 눈앞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런다고 그 안에 찍혀있는게 다른 사람이 될 리는 없었다. 

“이 여학생이 입고 있는 건 교복이 분명하고, 교복을 입었다는 건 학생이자 미성년자라는 얘기겠지요?”
“교, 교장선생님… 이, 이건 무슨 오해가…”
“오해라고 하기엔 사진에 찍힌 상황이 너무나 명백한데요. 세상에 선생이라는 사람이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사진 속에서 담임은 어떤 여자애를 안다시피 한 채 키스를 하고 있었다. 긴 생머리의 여자애는 옆얼굴만 겨우 드러나고 있었다. 그 사진으로 여자애를 수배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사진을 찍은 이는 일부러 담임이 부각되는 사진만 추려 우리 학교로 보낸 듯 했다. 교장쌤은 담임의 해명을 그저 변명으로 여기고 있었다.

“집에 다 왔을 때 여자애가 길에 앉아있었어요… 수, 술 냄새가 났습니다! 일어나라고 깨워도 반응이 없길래 일으켜 세우는데 갑자기 입을 맞춘 거예요! 피할 틈이 없었습니다! 저도 당한 거예요! 교장선생님, 믿어주세요! 믿어주십시오!!”

교장쌤은 담임을 결코 쳐다보지 않았다.

“그 말을 증명하고 싶거든 증거를 가져오세요. 그럼 얼마든지 믿어줄 테니.”

사진 속 여자애는 담임의 뺨도 때리고 있었다. 담임은 결백하다고 거듭 소리쳤지만 교장쌤은 의자 등받이를 내보인 채 꼼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담임은 너무나 간단히 ‘제거’되었다.



담임이 여자애를 발견하고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나는 그저 보고만 있었다. 담임한테 들어가든 여자애한테 들어가든 어느 쪽이든 들어가서 통제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희미해지면 어떡하나 그 걱정뿐이었다. 그 사이 상황은 끝나버렸다. 나는 어느 모텔에 처박혀 술만 퍼마시고 있는 담임 옆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편해지려고 하는 짓일 뿐, 담임한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담임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정아한테로 갔다. 

-미안해.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있어서.

정아는 잠옷 차림이었다.

“마, 마지막?”

나는 아차, 싶었다. 얼른 말을 바꿨다.

-아, 아니, 이번만 부탁하겠다는 뜻이야…
“뭐, 뭔데.”

나는 최대한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려 애썼다.

-내일… 조회시간에 뭔가 보게 되면 폰으로 동영상좀 찍어줘. 찍기 힘들면 녹음만이라도… 

정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뭐, 뭘… 어, 어떻게, 하…려는 거야?”
-그리고 우리집에 보내주면 좋겠어…
“마, 말해봐.. 뭐, 뭘 하, 하려는, 건데.”

나는 내 말만 했다.

-미안해. 너 말곤… 없다…
“야아!”

정아는 ‘야’ 소리만큼은 더듬지 않았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미리 인사할게. 고맙다… 친구… 

정아는 내 손을 잡지 않았다. 나는 정아의 등만 묵묵히 바라보았다.

“마, 말도, 아, 안해, 주면서, 무, 무슨 친구…”

나는 정아 앞으로 가서 마주 섰다.

-나도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래… 
“쳇......”

정아의 정수리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나는 이내 시선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 다 들어줄게… 난 어디 가서 소문 낼 데도 없잖아.

정아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나는 잠자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 근데, 그, 그 애가, 가, 갑자기, 소, 소리, 치는 거야… 내, 내가, 자, 자기를, 커, 커닝했다고… 나, 난.. 끄, 끌려, 나왔어, 시, 시험 보다가… 아, 안봤다고, 아, 아무리, 말해도, 소, 소용, 어, 어, 없, 었어… 아, 아직도, 그 애가, 우, 웃던 게, 꾸, 꿈에, 보, 보여..’

나는 정아를 말더듬이로 만든, 정아의 중학교 동창한테 다트를 던져주고 학교로 왔다. 오늘은 보충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교장쌤이 TV에 등장해 ‘남은 방학을 멋지게 보내라’ 따위의 하품 나는 소리를 할 게 틀림없었다. 그 자식은 오늘도 어김없이 담임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TV가 켜지고 학생주임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교장쌤이 화면에 나오기 직전이 내가 움직일 시간이었다. 나는 그 자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이렇게까지 하게 만든건 바로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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